불혹의 김강민, 내년 가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프로야구 SSG 랜더스 김강민(40)의 별명은 '짐승남'이었다. 외야 좌중간부터 우중간까지, 어떤 타구가 날아와도 맹수처럼 낚아채는 수비력 덕분이다. 홈플레이트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는 '레이저 송구'도 어깨가 강하기로 유명한 김강민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가을이 오면 김강민의 '야수 본능'은 더 무섭게 살아났다. 고비마다 중요한 홈런을 때려내고, 믿을 수 없는 '슈퍼 캐치'를 해냈다. 김강민은 오랜 기간, 명실상부한 'SK 와이번스(현 SSG)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다. 김강민은 이제 마흔이 넘었다. 주전 중견수 자리도 '리틀 김강민'이라 불리는 후배 최지훈(25)에게 넘겨줬다. 그라운드보다 더그아웃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도 야구의 신은 김강민을 위해 올가을 회심의 기회를 준비해뒀다. 20대의 김강민과 30대의 김강민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며 펄펄 날던 그 무대. '한국시리즈(KS)'다.
김강민은 지난 7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KS 5차전에서 2-4로 뒤진 9회 말 대타로 나와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을 때려냈다. KS 사상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었다. 에이스 김광현이 용수철처럼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펄쩍펄쩍 뛰었다. 간판타자 추신수와 최정은 울먹이며 "정말 미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감격했다. 한 SSG 팬은 소셜미디어에 "2050년 KS에서도 70세의 김강민이 끝내기 홈런을 치고 있을 것 같다"고 썼다.
SSG는 그 홈런의 여세를 몰아 8일 6차전까지 4-3으로 이겼다. SK에서 SSG로 간판을 바꿔 단지 2년 만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김강민은 기자단 투표에서 총 77표 중 42표를 얻어 KS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40세 1개월 26일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수상 기록도 세웠다.
김강민은 "수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이번 시리즈에서 안타를 3개 쳤는데, MVP를 받다니…"라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김강민이 친 3안타 중 2개는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홈런이었다. 그는 1차전에서 9회 말 대타로 나와 동점 솔로포를 쳤다. 연장 승부 끝에 패했지만, '가을 남자' 김강민의 저력을 다시 보여줬다. 5차전의 끝내기 홈런은 사실상 시리즈의 향방을 갈랐다. SSG를 긴장하게 한 키움의 투지와 기세를 노련한 김강민이 꺾어버렸다.
"평소 눈물이 없는 편"이라는 김강민은 이날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쏟았다. "앞선 네 번의 우승 때도 울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눈물이 많이 났다"며 "MVP가 돼서 운 게 아니다. 40대에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눈물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김강민은 1982년생이다.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다. 동기생 중 김태균과 정근우는 이미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대호는 올해 롯데 자이언츠에서 좋은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과 팀 동료 추신수만 여전히 현역 선수로 남아있다.
김강민은 "일단 내년에는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더 할 것 같다.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계속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마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라는 보람을 올가을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후배들과 함께 뛰자는 생각만으로 야구를 했는데, 이렇게 우승이라는 목표까지 이루니 정말 좋다"며 "더 노력하고 더 몸 관리를 잘해서 내년 한 시즌도 즐겁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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