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의 존엄, 지구법학을 아시나요?

류제성 2022. 11. 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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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법의 급진적 책 읽기 20회 <지구를 위한 법학 강금실 외 7인>

[류제성(변호사)]

데카르트 이후 세계를 지배한 서구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은 자연과 문화, 우리와 타자, 주체와 마음의 분리라는 근본적인 이원론 위에 서있다. 이원론은 차이를 위계로 만들어 타자와 자연에 대한 억압, 차별, 지배 및 착취를 정당화했다.

지구와 대지는 살아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과 비인간동물 그리고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의존한다는 믿음,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동물과 자연도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은 미개하고 비과학적인, 그래서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지배가 초래한 기후-생태 복합위기라는 재앙적인 결과는 인류에게 지금껏 쌓아올린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상호의존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오래된 지혜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라는 새로운 법학을 낳았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지구법학은 2015년에 유엔 공식 문서에 등장한 후 법이나 제도에 한정되지 않고, 경제, 교육, 과학, 인문학, 철학, 윤리학, 미술, 미디어, 디자인과 건축, 신학과 영성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연구의 주제로 하고 있다.

물론 인권과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현재의 법학이 이룬 성취를 부인할 수는 없다. 지구법학은 이런 가치를 계승하면서 인간만의 존엄과 가치가 아닌 모든 존재의 존엄과 가치를 담아내자는 것이다.
 
 강금실 외 7인 <지구를 위한 법학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로>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지구를 위한 법학>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환경법학자, 헌법학자, 사회학자, 변호사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지구법학회 회원들이 쓴 지구법학 입문서다.

이들에 의하면 지구법학은 "인간은 더 큰 존재의 한 부분이고 공동체 성원의 안녕은 전체로서의 지구의 안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고", 그리고 "인간의 법과 거버넌스는 전체로서의 지구와 모든 성원의 안녕을 보호하도록 의도해야 한다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구법학은 이러한 지구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모든 존재의 권리를 강조한다. 지구의 모든 구성원이 존재할 권리, 서식지에 대한 권리, 지구 공동체가 부단히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한 토마스 베리의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법학은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고, 이 책 역시 제3장에서 자연의 권리를 설명하고 있다. 자연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미 이 시리즈 4화에서 다룬 바 있으므로 졸고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관련 기사: 강과 호수가 직접 법정에 설 수 있다면 http://omn.kr/1xr5b)

지구법학자들과 국제시민사회는 유엔이 세계 지구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Mother Earth Rights)을 공식 채택해야 한다는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1948년 유엔이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해 20세기 인권의 세기를 이룬 것처럼, 지구환경의 위기에서 세계 지구권 선언을 통해 지구공동체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2010년 국제 어머니 지구의 날에 볼리비아 정부의 주도로 발표된 세계 지구권 선언은 지구의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과 관련성, 모든 존재의 권리의 인정과 옹호, 살아있는 존재인 어머니 지구를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모든 생명과 연결된 지구법학의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달려있다. "지구에 존재한 모든 존재들을 대표하여 함께 지구적 결정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원동력이자 토대가 되는 것이다.

원주민 자결권 확대, 자연과 동물의 권리, 깨끗한 물과 공기에 접근할 권리 등을 규정해 칠레 역사상 가장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 칠레의 개헌안이 부결된 것을 보면, 지구법학의 구현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칠레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너무 늦지 않게 배우고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지구법학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와 법학자 우고 마테이가 함께 쓴 <최후의 전환>은 생태학의 기본 원리와 현대 과학의 새로운 시스템적 사고를 반영해 법질서를 생태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보살핌과 의무, 상호성, 참여 원칙을 조직 원리로 해 커먼즈(Commons, 아직 합의된 번역어는 없는 듯하다. 이 책에서는 사회 모든 성원에게 개방된 자연적·문화적 자원(공동체의 제도)의 공동 풀(pool)로 풀이하고 있다)를 핵심 단계에 두면서 자연을 멘토이자 모델로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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