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에 아인슈타인 되라는 한국, 부모님들 눈뜨세요”
열등생이 미 명문대 부학장 돼
“결국 교육이 문제이자 솔루션”
“저는 불량품이었죠, 한국의 평가 관점에서는요.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맞았어요. 제가 하위 1%였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이 친구이자 동료로 보여요. 주위에서 하위 1%라고 우겨도 내가 관심 있고, 내가 좋아하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돕고 싶습니다.”
폴 김(52·김홍석)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최고기술경영자(CTO)는 한국에서 보낸 초·중·고 시절 반에서 60명 중 58등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곤 한다. 자신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의 잠재력이 과소평가되고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햄버거도 주문하기 힘든 영어 실력으로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중국 식당과 세차장 아르바이트, 컴퓨터 수리 등으로 학비를 벌어가며 컴퓨터공학 학사와 교육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강연차 모국에 왔던 그와 연락이 닿아 지난 5일 화상과 이메일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와 입지전적인 인생 역정, 실리콘밸리의 모태인 스탠퍼드대의 교육, 미래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이 아닌 대학의 CTO는 생소합니다.
“스탠퍼드 교육대학원에도 CTO 직함이 없었어요. 제가 합류하면서 테크놀로지 개발을 비롯한 혁신을 하겠다고 CTO를 직접 만들었죠. 그전에 미국 최대 온라인 대학인 피닉스에 스카우트돼 CTO를 지내면서 버추얼 강의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고요. 기술뿐 아니라 학생 창업 지원 프로그램, 전문가 영입 같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21세기에는 직업을 만드는 창직과 창의 창작 창업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먼저 실천을 하신 거네요.
“10년 전에 존재하지 않던 유튜버가 직업이 된 것처럼 10년 뒤에는 현재의 직업들이 사라질 수 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고, 직업에 학위가 필요한 시대는 지났죠. 제가 한국에 남아서 대학에 못 가게 됐다면 대신 발명을 하거나 창업을 했을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어디서든 남들 따라서 많은 사람 중 하나인 n+1이 되는 일은 안 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양’ ‘가’만 받던 열등생이 미국에서 A학점의 우등생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우등생이라는 말은 좀 그래요. 스탠퍼드에는 다 제가 명함도 못 내밀 사람들뿐이에요. 노벨상 수상자 정도는 돼야죠(웃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하고 싶고, 제 역량을 불평하기보다 그걸 바탕으로 새 역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뭘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결과가 안 나와도 그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오렌지 맛을 만들었는데 레몬 맛이 나왔다면 레몬으로 새 아이스크림을 만들든 친환경 청소제를 만들든 역발상을 하는 성격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미국 학생이 1시간 공부하면 10시간을 하겠다는 각오로 공부했다지만 노력만으로 가능한 성취였을까 싶어요. 혹시 타고난 머리가 좋았던 건 아닌가요.
“저는 생각이 느리고 이해하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남들이 로켓을 타고 순간이동을 할 때 저는 열차를 타고 털털거리는 철로를 천천히 가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한 번 더 보고 더 시간을 들여서 비슷하게 해낸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긴다고 하지만 하루의 3분의 1은 자는 데 보내고, 3분의 1은 배우고 일하는 데, 3분의 1은 쉬고 즐겁게 노는 데 보내는 공식을 활용하면 사실 시간이 없지 않아요.”
-하루에 8시간을 논다고요?
“이 공식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셋 중 한 가지 이상을 잘못하고 있고,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물론 일하는 것과 노는 게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죠. 제가 오늘 점심에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영어 공부 솔루션을 개발해서 전 세계 800만명의 유저를 확보한 회사 사람들을 만났어요. 밥 먹으면서 앞으로 협력해서 어떻게 시스템을 더 발전시킬지 얘기했어요. 일이면서도 재미있으니까 노는 건지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의 태도는 확률을 이긴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들의 몰이해 때문에 자존감을 잃기 쉬웠을 텐데 어떻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나요.
“제가 나이 오십에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보니 비행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자세계예요. 비행기의 자세만 쓰러지지 않으면 추락하지 않습니다.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내 태도를 바르게 잡고 있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거든요. 또 하나는 불편함, 불안, 두려움을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편안하면 발전이 없어요. 내가 뭘 하면 불안하고 두렵고 불편한지 찾아서 자꾸 도전하다 보면 그게 별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군요.”
-그런 태도와 가치관은 언제 확립된 건가요.
“작은 성공이 더 큰 성공을 가능하게 한다고 하잖아요. 미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다들 영어도 공부도 못하는데 왜 가냐고 했어요. 하지만 와서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입학하고 계속 작은 성공들을 이뤄나가면서 자신감이 생긴 거죠. 자신감이 생기니까 불안하고 두렵고 불편한 걸 찾아다닐 수 있고요. 제3세계 오지에 교육 봉사를 다니면 병에 걸리기도 하고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그렇지만 보람되니까 그런 불안과 불편함을 계속 찾아다니는 거죠.”
그의 말이 공허하지 않은 것은 그가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5년 멕시코에 집 짓는 봉사활동을 갔다가 학교가 없는 마을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2009년 비영리 국제교육재단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세워 모바일 학습 프로그램인 ‘포켓 스쿨’과 질문형 학습 솔루션 ‘스마일’,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천일(1001) 스토리’ 등을 진행했다. 스마일은 2016년 유엔 미래교육 혁신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20여개국 오지의 아이들을 만났고 내년에도 남미와 중동의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곧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옵니다. 수능만을 목표로 하는 한국 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표하셨죠.
“명문대 그다음을 못 찾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스탠퍼드를 졸업하고도 할 일이 없는 학생도 있고,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답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다음을 찾으려면 ‘무엇’을 ‘어떻게’보다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행복할 수 있는데, 더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똑같이 시작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길을 가게 되는 건 한국 교육이 그래서인 것 같아요. 저는 한국 교육의 영향을 별로 못 받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경우겠죠.”
-한국 교육을 가리켜 ‘박찬호에게 아인슈타인이 되라고 한다’고도 하셨는데요.
“부모님들이 눈뜨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타고난 관심과 능력은 모두가 다 다릅니다. 교육이란 관심 있고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잘하도록 돕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보람도 없고, 잘하지도 않는데 평생 같은 일을 한다면 행복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제 개인적인 신념은 우리 모두에게 숨겨진 능력이 여러 개 있다고 봅니다. 그 잠재력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거죠.”
-가정에서는 어떠셨나요. 자녀를 키우실 때 양육 원칙은 무엇이었나요.
“큰딸이 해군 장교이고 둘째 딸이 동물학을 전공한 대학 졸업반이에요. 대화, 자기주도력 개발,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주의이고요.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라는 거죠. 그리고 부모가 할 일은 인내와 기도입니다.”
-인내와 기도라는 말씀을 귀담아듣게 되네요.
“그리고 가능하면 봉사의 경험을 갖게 하고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많은 체험을 하게 하려고 했죠.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아이들이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를 지체장애자 센터에 보내는 걸 봤어요. 자연에 대해 배우고 봉사가 왜 필요한지, 자기 노력을 나누는 게 왜 좋은지 학습하는 거잖아요. 저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원 열 곳을 보내는 것보다 봉사의 기회 하나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게 부학장님의 핵심 주장인데,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요원해 보입니다.
“스탠퍼드 교수 중에 큰 방석에 누워서 수업하는 분이 있어요.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주제로 토론했는데 학생들도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대화하더군요. 질문 문화의 정착은 어렵습니다. 제가 한국 대기업 임원 워크숍을 한 적이 있는데 질문을 할 때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대요. 질문에 대한 두려움, 그게 현실인 거예요. 한국에 적용하려면 초등학교 1학년 교육부터 바뀌어야 해요.”
-지난달 NC문화재단 창의성 컨퍼런스에서 ‘이유 있는 혁신’을 주제로 강연하셨죠.
“마누 프라카시라는 인도 출신 청년이 50센트짜리 현미경과 50센트짜리 혈청 분리기를 만들었어요. 오지에서 질병을 분석하지 못하는 걸 본 게 계기가 됐죠. 반대로 피 한 방울로 25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던 엘리자베스 홈즈는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지성과 혁신에는 이유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열정이 생기고, 또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더 밝아지는 거죠. 그래서 교육의 목표는 똑똑한 사람을 길러내는 게 아니라 이유 있는 혁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이에요.”
-말씀하신 두 사람 모두 스탠퍼드 출신이네요. 스탠퍼드 학생 5명 중 1명이 창업한다는 통계가 기억나는데요, 스탠퍼드가 창업의 요람이 된 학풍은 무엇일까요.
“스탠퍼드의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 존중, 과감한 혁신 도전, 글로벌 창업정신이라고 봅니다. 저희는 학생들이 스스로 디자인하는 수업도 있어요. 한 학기 동안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어떻게 평가를 받겠다는 제안서를 내고 사인을 받으면 그게 수업이 되는 거예요. 학교 커피숍에 가도 혁신과 창업에 대한 말이 들려요. 창의성과 혁신의 공기를 마시다 보면 동화될 수밖에 없죠.”
-교육대학원에도 창업한 학생들이 꽤 있겠네요.
“저희 대학원에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전체의 25% 정도예요. 데이터 사이언스처럼 교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요. MBA(경영학 석사)와 교육학 석사를 동시에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창업이 자연스럽죠.”
-실리콘밸리는 서로 공유·협력하는 사회이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인재를 뽑는다고 했는데, 한국 교육이 양산하는 게 자율성보다 시키는 일 잘하는 사람이고 팀플레이를 가르치지도 않죠.
“수동적인 사람은 정말 같이 일하기 힘듭니다.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기회를 학교에서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팀플레이도 익숙하지 않아서죠. 가만 보면 다 교육이 문제이자 솔루션이에요. 아이들이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길러야 할 역량은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의 ‘4C’와 다양성 존중, 긍휼한 마음입니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인 창의성과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실제로 퇴사를 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하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한국에서도 화제인데요, 평소 부학장님 신념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 아닌가요.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데 ‘What’s next?(다음은 뭐죠?)’가 있어야겠죠. 한국 젊은이들의 꿈이 건물주라고 들었어요. 건물주 되는 것, 좋죠. 그럼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으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다, 이런 얘기는 아쉽죠.”
-기업 컨설팅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립 온라인대학교 설립 프로젝트, 두바이의 미래대학교 설립에도 관여하고 있으신데, 두바이의 미래 대학이 궁금합니다.
“모든 학생이 창업을 하면서 졸업하는 창업 중심 대학입니다. 전체 교과 과정이 기업가정신 중심으로 디자인되는 디테일한 모델을 정립했어요. 원래 작년 두바이 엑스포에 맞춰 런칭하려고 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보류된 상태예요.”
-미래 대학이라고 해서 테크놀로지 중심이 아니라 교육의 콘셉트 자체를 바꾼 거로군요.
“미래의 학교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최대로 고려해 전체 일괄성 패키지가 아닌 개별 맞춤형 여정을 제공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고요. 반면 한국 상황은 개개인의 관심과 역량이 무시되는 ‘학교공장’을 운영하려는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은 다 같이 겪는 고난의 패키지 여정뿐이죠. 아주 오래됐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그저 따라갑니다. 잘못된 시스템에 충실한 건 잘못된 미래를 위한 교육을 열심히 시키는 것이에요.”
-이전 인터뷰에서 한국 교육정책이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간다고 평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시를 늘리고 수시를 줄이는 것,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없애는 것을 지적하셨죠.
“학교 설립과 운영에서도 자율성이 훨씬 더 보장돼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전문성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뿐입니다. 초·중·고에 대한 평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안전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자기 역량을 찾아 개발했는지를 기초로 하고, 대학은 얼마나 긍정적인 글로컬 임팩트를 주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에서 이상적인 교육 생태계를 만들 수 없으면서 계속 생태계를 소유하려고 하면 진화와 혁신이 없는 상태만 유지될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묘비명에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확인해보고 간 사람’으로 적히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그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꽃동네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축복입니다’라고 큰 바위에 써 있는 걸 봤어요. 저는 그 이상의 힘이 있으니 엄청난 축복을 받은 셈이죠. 그 축복을 의미 있는 일에 잘 활용하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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