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승은 문별... '두세계'의 실패가 더욱 아쉬운 이유
[이준목 기자]
▲ JTBC <두 번째 세계>의 한 장면 |
ⓒ JTBC |
보통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게서 래퍼가 담당하는 파트는 한 곡 중 7~8마디,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이돌 래퍼는 실력이 떨어진다' 혹은 '래퍼는 노래를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아이돌의 일원 혹은 래퍼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 보컬로서의 '두번째 세계'를 꿈꿨던 여성 아티스트 8인의 도전이 막을 내렸다.
걸그룹 래퍼들의 보컬 전쟁에서 마마무의 문별이 이변 없이 우승을 차지하며 10주간 여정의 막을 내렸다. 8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두 번째 세계>(아래 <두세계>)에서는 유빈, 신지민, 김선유가 탈락한 가운데 '톱5' 미미·엑시·주이·문수아·문별의 생방송 파이널 라운드가 펼쳐졌다.
<두세계>의 마지막 미션은 '뉴 월드(NEW WORLD)'였다. 자신의 레전드를 경신하려는 다섯 명 여성 아티스트들의 신곡 무대가 예고되며 기대감을 높였다. 파이널 라운드는 기존 누적 점수를 리셋하고, 글로벌 사전 투표 40%(4000점)와 생방송 문자 투표 60%(6000점)를 반영해 최종 우승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위에 등극한 아티스트에게는 JTBC 드라마 O.S.T 참여와 골든디스크어워즈 단독 특별 무대 등의 특전이 주어졌다.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한 오마이걸의 미미는 경연 프로그램에 임했던 본인의 심경을 담아낸 '디 오리지널(The Original)'을 열창하며 특유의 끼를 발산했다. 우주소녀 엑시는 무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마음을 생일에 비유하며 신곡 '벌스데이 파티(Birthday Party)'를 선보였다.
▲ JTBC <두 번째 세계>의 한 장면 |
ⓒ JTBC |
대다수의 예상대로 우승은 이변없이 문별이 차지했다. 최종 우승자가 발표된 뒤, 문별은 눈시울을 글썽이며 "멤버와 팬 여러분, 그리고 <두 번째 세계> 제작진 등 좋은 분들이 곁에 있어 살아갈 힘이 됐다. 앞으로 보컬리스트로서 좋은 노래 많이 들려드리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2위는 엑시, 3위는 미미, 주이와 문수아가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심사위원인 보이스리더들은 최선을 다하여 각자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진심어린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파이널라운드라는 기대감이 무색하게 <두번째 세계> 최종회는 0.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라는 초라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심지어 프로그램의 자체 최저 시청률이기도 했다. <두세계>는 첫 회에서 0.8%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고 이후 한 번도 1%를 넘기지 못하고 줄곧 정체 조짐을 보이다가 후반부인 7회 이후로는 연이어 최저 시청률을 경신하는 굴욕을 당하며 외면 받은 끝에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편성 대진운부터가 좋지 않았다. <두세계>가 방송된 화요일에는 공중파를 제외하고도 동시간대에 예능 1위를 차지한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를 비롯하여 댄스 서바이벌 엠넷 <스트릿 맨 파이터>, MBN <고딩엄빠2>는 이들 모두 시청률이 1.5%~2% 이상을 기록한 인기 프로그램들이었다.
JTBC는 <두세계>의 시청률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방영 후반부에 접어들며 편성을 기존 화요일 오후 8시 50분에서 오후 10시 30분으로 갑작스럽게 변경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인기가 없는 프로그램을 경쟁이 더 치열한 시간대로 옮겼다는 것은 <두세계>를 포기했다는 의미와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방송 시간대를 대체하여 새롭게 편성된 새 팔씨름 예능 <오버 더 톱>은 불과 2회만에 2%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두세계>를 더욱 초라하게 했다.
여기에 하필 최종회 파이널 생방송을 앞둔 시점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며 국가애도기간에 따라 대부분의 예능이 결방되며 편성이 꼬이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두세계>는 부랴부랴 9회를 일요일 오후 3시에 변칙 편성하고 파이널은 연기없이 예정대로 방송했다. 이는 <두세계>의 최종회 시청률 참패를 더 가속화시킨 원인이 됐다.
▲ JTBC <두 번째 세계>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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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계>는 평소 팀 내에서 가창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걸그룹 메인 래퍼들의 보컬 전쟁'이라는 콘셉트를 차별화된 요소로 내세웠지만, 아이돌 팬덤을 제외하면 시청자의 흥미를 끌만한 매력포인트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걸그룹 래퍼라는 기준을 따르다보니 멤버간 밸런스를 맞추는 데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마마무 활동을 통하여 이미 걸출한 실력과 막강한 팬덤이 구축된 문별, 최근 예능 대세로 떠오른 미미 정도를 제외하면 몰입도를 높일만한 화제성 있는 멤버들이 부족했다.
또한 출연자 대부분이 이미 <언프리티 랩스타> <퀸덤> <방과후 설렘> 등 유명 경연-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한번 이상 출연한 전력이 있었기에 식상한 느낌도 적지 않았다. 멤버들간 나이와 연차의 차이가 워낙 컸던데다, 시청자의 비판을 의식하여 각자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경연 프로그램 특유의 긴장감이나 라이벌 구도도 부각되기 어려웠다.
경연의 수준과 구성 자체도 기대에 못미쳤다. 멤버 개개인의 가창력과 퍼포먼스 자체는 준수한 편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서바이벌 경연에 걸맞는 선곡과 구성이라기보다는 매주 방영되는 음악방송에서도 볼 수 있는 특별무대 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른바 Mnet이나 TV조선 스타일의 치열하고 자극적인 서바이벌이나 화려한 대규모 퍼포먼스 경연에 익숙해졌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두세계>는 <내일은 국민가수> <퀸덤>의 하위호환에 가까웠다. 멤버들의 차별화된 서사와 캐릭터의 부재같은 단점들이 더 두드러졌다.
이러다보니 <두세계>는 방송 초반부터 일찌감치 '어우별(어차피 우승은 문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압도적인 질주로 인해 경연의 흥미와 긴장감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문별은 총 네 번의 경연 3라운드 프로듀서 매치를 제외하고 총 3개의 라운드에서 1,000점 만점을 기록하는 신화를 작성했고, 최종 1위까지 여유있게 거머쥐었다. 방영 내내 문별을 위협할만한 경쟁자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로 여러 가지로 아쉬운 완성도에 불구하고 해당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매력 발굴이나 도전정신이라는 측면만큼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했다. 우승자인 문별은 본래 보컬 출신답게 빈틈없는 실력과 독보적인 음색을 과시하며 '진정한 올라운더'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마마무로서가 아닌 솔로 문별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엑시는 프로그램 출연자를 통틀어 유일하게 매번 다른 콘셉트의 무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으로 '팔색조시'란 닉네임을 얻었다.
미미도 소속팀 오마이걸의 몽환 청순 콘셉트를 벗어나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이별 감성의 발라드곡에서부터 디제잉-현대무용-아카펠라-탭댄스 등 다양한 장르들을 자신만의 개성 안에 소화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문수아는 보컬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특유의 성숙한 허스키한 매력을 살린 보이스컬러를 각인시키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증명했다. 단체 팀 활동에서는 쉽게 보여줄수 없었던 여성 아티스트들의 색다른 개성과 숨겨진 잠재력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신선한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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