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잡스⑥-홍보] K리그 양송희 프로 “축구란 좋은 사람이 되고픈 동기부여”
축구팬에서 구단 홍보, 토트넘 리테일팀 거쳐 연맹까지
20년 전 온 국민이 붉은 물결을 일으켰던 2002 한일 월드컵. 그때 한 중학생 소녀에게 축구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고교 진학 후 K리그 열성팬이 된 소녀는 ‘축빠’로 성장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아예 구단에 입사해 축구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양송희 프로의 이야기다.
양송희 프로는 지난 2013년부터 약 5년간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홍보팀에서 근무했고 이후 사표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양 프로는 퇴사가 아닌 한 단계 더 도약을 위한 졸업이라 말한다.
2018년에는 외교부 영국 청년 교류제도에 발탁돼 1년간 런던에서 생활할 기회를 얻었다. 직접 이력서를 넣어 발품을 팔았고 그렇게 토트넘 홋스퍼가 운영하는 리테일 스토어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런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토록 꿈꿨던 프로축구연맹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을 두고 양송희 프로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꿈을 향해 달려온 땀과 노력이 분명한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2022시즌 K리그 일정이 모두 종료된 11월초. 서울 축구회관 인근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양송희 프로와 만났다.
Q :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 저는 양송희이고요,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된 업무는 미디어 대응과 각종 미디어 행사,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 등 대외 업무입니다. 매주 기자들을 대상으로도 ‘주간 브리핑’을 열고 있는데 연맹의 정책이나 K리그의 알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주된 주제입니다.
Q : 홍보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 매력이라면 축구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업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홍보팀에 있다 보면 저의 답변이 공식적인 발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연맹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담당자 분들이 계시지만 대외적으로 발표할 때에는 홍보팀을 거쳐요. 따라서 연맹의 전반적인 업무를 얕지만 넓게 알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라 생각합니다.
Q : 연맹이나 구단에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답하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A : 현재 연맹에서는 답변하기 곤란한 무거운 사안들은 팀장님께서 대부분 대응을 하시지만, 예전 구단에서 일을 할 때에는 홍보 담당자가 저 한 명이었습니다. 그럴 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전화벨 울리는 게 무서웠어요. 어떤 질문일지 알잖아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했던 것 같습니다.
Q : 최근 진행했던 홍보 관련 업무 중에 ‘이것은 정말 잘했다’라는 것이 있을까요?
A : 연맹에 입사하자마자 코로나19가 찾아왔고 리그 개막이 늦춰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어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팬들에게 읽을거리라도 제공하기 위해 매일같이 아이템 회의를 했고 쥐어 짜내듯 수많은 보도자료를 쏟아내게 되었어요. 선수들의 데이터를 보면서 별별 아이템들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동명이인 축구 선수는?’ (역대 K리그 공인구, 형제 K리거, K리그 선수들의 시그니처 세레머니 등) 같은 것들이요. 입사 후 몇 개월을 그렇게 보냈더니 자연스레 조직에 녹아들게 됐고 업무 파악도 한결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Q : 대표적인 축구 성덕(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사람. 일명 성공덕후)입니다. ‘성덕’이 되고픈 수많은 축구 매니아들이 축구와 관련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A : 강력 추천 드리는 직업은 축구 구단 입사입니다. 선수와 동료가 되어 승리할 때 함께 기뻐하고, 패했을 때는 같이 슬퍼하고. 그러한 소속감을 느낄 때가 행복했습니다. 현재 연맹에 몸담고 있어 그때의 기분을 가질 수 없지만 그리울 때가 많아요. 때문에 지금도 축구장 출장을 가면 꼭 구단 직원들의 표정을 봐요. 동고동락하는 모습들이요. 축구팬이라면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Q : 인천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연맹을 거치면서 세 가지 커리어를 쌓으셨어요. 일을 하면서 보람됐던 순간을 되돌아보자면?
A : 먼저 인천에서는... (잠시 머뭇거린 뒤)지금의 인천은 잘 하고 있지만 제가 있던 시절에는 아무래도 힘든 시기였어요. 매년 강등권을 전전했고 구단이 재정적으로도 힘들었고요. 특히 2015시즌에는 감독 선임 작업이 더디게 진행됐고 누구나 강등 1순위라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종 순위는 파이널A에 조금 못 미친 8위, 그리고 FA컵 준우승의 성과를 냈습니다. 힘들게 시작했지만 웃으면서 시즌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 태블릿PC의 바탕화면은 2015시즌 인천 선수단 사진이에요.
Q : 반대로 서럽고 화가 날 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 첫 취업(인천 유나이티드)을 했을 때 나이가 20대 중반이었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여성분들이 많지 않았어요. 원정 경기를 가게 되면 저를 구단 직원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고 너무 어리기도 해 무시를 당했던 것 같아요.
양송희 프로는 인천 구단에서 일을 한지 6년째였던 2018년 6월 퇴사를 결심했다. 이때에 대해 양 프로는 가장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정체된 느낌을 받아서였다고 되돌아봤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 운 좋게 ‘영국 청년 교류제도(YMS)’에 합격했고 운명처럼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양 프로는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는 축구팀 채용 공고란을 뒤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면접 끝에 토트넘 리테일 팀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Q : 토트넘에서 일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시죠.
A : 런던에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경기 전후 매장에는 마치 놀이동산에 줄을 서듯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왔어요. 스토어에 입장한 손님의 70%가 한국인일 정도로요. 손흥민 선수의 티켓 파워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저를 필요로 했던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의 시간은 값지기도 했지만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Q : 토트넘에서 근무할 때 스토어 직원 분이 "우리는 팬들이 축구경기만 보러오게 하는 것이 아닌 경험을 제공해야한다"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매우 인상적인 문구였어요.
A : 연맹의 업무가 행정 전반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팬들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구단 직원이라면 되새겨야할 말인 것 같습니다. 토트넘 구단의 스토어 이름도 TE, Tottenham Experience였어요. 단순히 유니폼을 파는 것이 아닌 최고 수준의 서비스도 제공해줬고요. K리그 구단들도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Q : 책 이야기도 해보죠. 책 제목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질러야 시작되니까’에요. 책을 쓴 동기가 있어요?
A :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잊게 되는데 기록으로 남기게 되면 언제든 그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갈 수 있거든요.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내가 경험했던 것을 책으로 내보자하는 마음이 있었고 마침 토트넘에서의 경험까지 더해져 책의 내용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Q : 최근 K리그를 보면 구단들은 물론 연맹도 SNS라던가 유튜브, 축구 크리에이터들과의 활발한 소통 등 뉴미디어를 통한 홍보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볼 때마다 콘텐츠 구성도 알차고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데 모두 홍보팀의 일이죠. 연맹 홍보팀의 점수를 매긴다면? 그리고 그 속에 양프로님 지분은 얼마나 될까요?
A : 연맹 홍보팀에는 이종권 팀장님과 우청식 프로, 그리고 저. 이렇게 3명이 있어요. 능력이 출중하신 분들이죠. 저는 무엇보다 우리 3명의 합이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잘 하고 있다면 바로 그러한 ‘케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속에서의 저의 지분은 33%?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아닙니다. 팀장과 우프로가 40%씩, 저는 20%로 정정하겠습니다(웃음).
Q : 덕업일치를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즐길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미를 갖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하필 취미가 축구입니다.
A : 저는 아직도 축구장을 갈 때가 가장 설레요. 심지어 하루 연차를 냈을 때에는 옛 직장인 인 사무국에 놀러가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수년간 밟았던 출퇴근길을 다시 다녀보기도 했어요. 집에서 가까운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자주 찾습니다. 최근에는 축구를 직접 배우기 위해 클리닉에 가입도 했습니다. 한참 모자라는 실력이지만 주변에서 조금씩 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나요. 다행히 아직까지 축구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Q : 끝으로 나에게 축구란?
A : 저는 축구를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동기부여’ 라고 생각합니다. 축구 관련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요, 저 역시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는 제게 ‘운명’과도 같습니다. 팬으로서 축구를 사랑하고 목표를 가짐으로써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제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축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밑거름이 되었음 하거든요. 먼 훗날 저에게 ‘그동안 잘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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