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오페라 고집은 '그들만의 잔치' 될 수도"
[최미향 기자]
▲ 김수범 지휘자 . |
ⓒ 최미향 |
지난 4일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공연을 선물했던 김수범 지휘자를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서산으로 내려오면서 음악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가까이하지 못하는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악기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싶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암보(악곡을 외는 것)로 지휘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김수범 지휘자는 "'인생은 덧없이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거울삼아 오늘도 메마르고 건조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아름다운 선율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김수범 지휘자 . |
ⓒ 최미향 |
"우리 부부는 4년 전, 강북에서 살다 처가가 있는 서산으로 내려왔다. 서울 지역이었지만 강북에서 강남까지 자동차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지금 서산에서 강남까지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이동 거리도 비슷하다.
서산으로 내려오니 일단 움직이는 데 시간을 잡아먹지 않아 좋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며 양질의 삶을 살고 있다. 예술가의 삶을 살기에는 서산이 최고의 자연환경이 아닐 수 없다."
- 어릴 때부터 부모님 덕분에 성악과 악기를 배우게 됐다. 당시 얘기를 들려달라.
"우리 가족은 모두 음악을 했다. 친척들이 "딴따라 가족"이라고 놀려도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연희대(현재 연세대)를 다니신 인텔리셨다. "교육은 끝까지 밀어준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셨다.
당시 음악에는 조금 일가견이 있었던 나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성악을 했고 중학교 때는 입상도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성악 하는 아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남자가 악기를 해야지"라며 트럼펫을 권유하셨고, 나는 악기를 다루면서 군기가 센 밴드부에 들어가기도 했다. 공부가 곧 악기연주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 김수범 지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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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했던 때다(웃음). 부산시향 객원 단원으로, 울산시향 정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음악의 본고장 비엔나로 유학을 갔다. 트럼펫으로 입학하여 유럽과 한국 전역에서 협연을 했다. 지휘과에 청강생으로 갔다가 지휘자에게 발탁되어 지휘를 공부하게 됐고, 재학 도중 체코 버드와이져 시립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3년간 역임할 수 있었다.
매월 10회 정도 지휘를 하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 그 당시 비엔나 대우자동차 지사장님께서 공식 후원사로 후원을 해주신 기적도 있었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웃음이 난다. 유명한 음악가도 아닌 내가 대우자동차 사장님을 불쑥 찾아가 스폰서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약간 건방졌던 것 같다.
'10여 년 전에 세이지 오사와 지휘자와 한국 대표 지휘자는 동급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지휘자는 그냥 한국에 지휘자로 계시고, 세이지 오자와는 비엔나 필하모니 지휘자가 되어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그러자 지사장이 왜냐고 물었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이지 오사와는 일본 대표 기업인 소니가 후원했고, 우리나라는 이미 유명해진 사람에게만 후원을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찍 재능 있는 예술가를 후원해야 합니다.'
얼마 후 대우자동차는 버드와이져의 공식 후원사가 되었으며, 덤으로 나의 수입도 늘어났다. 이때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 간판에 소니가 크게 걸려 있었던 때였다. 지금도 그 당시 대우자동차 로고가 있는 나의 공연 포스트를 보면 그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 김수범 지휘자 . |
ⓒ 최미향 |
'음악은 예술 중에서 가장 느끼기 쉬운 분야다, 그냥 온 세포로 느끼면 된다.' 이 말은 지난 9월 에우테르페 앙상블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때 강조해서 말씀드린 음악 감상 방법이다.
처음 협연자도 없이 심포니로만 공연한다니까 주변에서 '우리는 시민 수준이 너무 낮아 음악을 이해할 줄 모르니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또 '음악회에 어떤 복장으로 가야 하느냐?' '박수는 언제 쳐야 하느냐?' '나는 연극이나, 뮤지컬, 팝스 오케스트라가 좋더라' 등 공연 전에 많은 분이 거부감을 가졌다.
하지만 공연 후 관객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졌다. 많이 들어본 음악으로 감동적이었다며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렵다고 하는 건 이런 것이다.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데 꼭 드레스를 입고 가서 전·후식 스푼을 격식에 맞게 사용하고, 여성분께 의자를 빼 주는 등 모든 것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기 맛을 아는 것은 꼭 격식을 갖추고 호텔에서만 먹어야만 가능한가. 이런 알 수 없는 이론을 갖다 붙인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이다."
- 그렇다면 클래식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일부 음악가들이 자신들을 위한 음악을 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 독일어 오페라만 고집하는 성악가들이 문제다.
독일에 가면 모든 오페라를 자국어로 번역해서 공연하는 곳이 있다. 독일 사람 중에 이탈리아어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우리와 비슷할 거다. 그런데 그들은 원어로 하는 곳과 자국어로 하는 곳 두 개의 오페라를 공연한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우리나라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를 노래하고 '나는 고퀄리티'라고 우쭐해 한다. 일테면 그들만의 공연 잔치로 끝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처음 뮤지컬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6개월 이상 외국 가수들이 원어로 공연을 하며 전석 매진을 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한국어로 번역해서 라이센스 비용만 주고 공연을 하였고, 모두가 보고 싶은 공연이 됐다. 수십 년이나 앞서서 정착한 클래식보다 '대중에게 다가간 쌍방향 교류'가 더욱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의 경우는 어떤가. 관중이 외면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그래 너 잘났다. 난 무식하니 안 갈래"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서산 공연 때는 다들 좋았다고 한다. 이날,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면 안 되는데 감동을 받은 관중이 손뼉을 치니까 모두 따라 (박수)쳤다. 이를 제지하지 않고 지휘자는 뒤돌아서서 인사를 했다. 보통의 경우는 박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만 그러면 (박수)친 관중은 '아, 치면 안 되는구나!' 하고 그제야 머쓱하게 되고, 또 관중은 관중대로 '아 다음부터 오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에우테르페 앙상블 오케스트라 제4회 정기연주회’ . |
ⓒ 최미향 |
"자연과 가까이하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음악도 여유가 있고 영혼이 자유로워야 행복한 음악이 나온다. 그래야 템포도 자연스러워지고 모든 것이 좋아진다.
나는 20여 년 전, 유학하고 귀국했을 때 일주일에 10시간만 레슨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학교 수업을 포함하여 10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음악 하는 사람의 주 수입이 레슨이다. 교습을 하면 돈은 쉽게 벌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돈 욕심이 생겨서 온종일 레슨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돈돈돈'을 외치는 순간 영혼을 파는 것과 같다."
-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
"그동안 교육과 문화재단 대표 경험, 학교를 운영했던 노하우를 살려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 또 재능이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대여해주는 메세나 사업을 하려고 한다. 내 아내가 바이올린을 하니, 같이 외국에 나가 하나씩 사 온 악기들이 벌써 30대 정도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금액부터 몇 억, 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좋은 악기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어 자원 확보처럼 국익 차원에서 한 대씩 사오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재능 있는 학생에게 무상으로 대여를 할 생각이다. 지금도 외국 갈 때마다 여러 악기사를 돌아보고 귀국한다.
▲ ‘에우테르페 앙상블 오케스트라 제4회 정기연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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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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