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역주행... 교과서에 '자유' 끼워넣기 강행
[윤근혁 기자]
▲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교육부가 교육과정 정책연구진 의견을 묵살하고 기존 초·중·고 교과서에 쓰인 '민주주의'라는 표현 앞에 '자유'를 넣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될 경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38개 나라 가운데 사실상 한국만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하는 것이라 국제사회에서 살아갈 한국 학생들이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용어로 개정? 헙법상 '민주'는 9번, '자유민주'는 2번 나온다
9일 오전 10시, 장상윤 교육부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 기자회견을 갖고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의 현대사 영역에 '자유'의 가치를 반영한 '자유민주주의' 용어 수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해서 제기됐다"면서 "이에 교육과정심의회 등 논의를 거쳐 관련 표현(자유민주주의)을 반영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한 배경에 대해 장 차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시된 헌법 전문, 역대 교육과정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행정예고안에 반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및 해설'을 다음처럼 바꿨다.
중학교 '역사'
'사회 전반의 민주적 변화와 과제를~' →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착 과정과 과제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민주화에 기반해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정착되고 → 민주화에 기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정착되고~
▲ 9일, 교육부가 만든 2022 교육과정 브리핑 자료. |
ⓒ 윤근혁 |
교육부는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과정 정책연구진의 의견을 묵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국회 교육위원 9명은 이날 오전 10시 기자회견에서 "교육부는 정책연구진도 반대하고, 오로지 차관이 주재하는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만이 동의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교육부 기자회견에서 오승걸 학교혁신지원실장은 "OECD (가입국 중 한국 제외 37개) 국가 중에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간 나라는 독일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36개국 모두 교과서에 '민주주의'라고 표기한다는 뜻이다.
▲ 교육부가 2018년에 만든 '외국교과서의 민주주의 용어 서술 현황' 문서. |
ⓒ 윤근혁 |
이를 감안하면 이번 교육과정이 통과되면 OECD 가입 38개국 가운데 교과서에 주되게 '자유민주주의'라고 표기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오마이뉴스>에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고 표기하는 선진국은 단 한 곳도 없다"면서 "'교육부가 연구진의 전문적 의견까지 묵살하고 만든 교육과정'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배운 한국 학생들만 국제 사회에서 혼란을 겪지 않겠느냐"라고 우려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헌법 전문에 사용된 것을 종합 검토했다"는 장 차관의 발언 또한 사실과 차이가 있다. 헌법 전문엔 '자유민주'라는 말과 함께 '민주'라는 말도 함께 쓰인다. 또한 헌법엔 '자유민주'란 말은 2번밖에 나오지 않는 반면, '민주'란 표현은 9번이나 나온다. 헌법 제1조1항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돼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닌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기업'이란 말 주변에도 '자유' 끼워넣기
교육부는 사회 교육과정에도 '자유'란 말을 넣도록 했다. 이번엔 '기업'이란 말 주변에 다음처럼 넣도록 했다.
초등학교 '사회'
기업의 사회적 책임 → 기업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기업이 이윤 추구 이외에 사회적 책임을 ~ →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및 사회적 책임을 탐색~
중학교 '사회'
경제생활에서 기업의 ~ →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
경제생활에서 기업이 ~ → 자유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
이와 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9일 논평에서 "시장경제가 정부의 개입 없이 자유경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수많은 국가 사례로 증명된 지금, '자유경쟁 시장경제'를 명시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면서 "친기업 기조의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교육부의 눈치 보기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교육부는 사회와 도덕, 보건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와 '성평등'이라는 기존 연구진의 제안 시안 내용을 뺐다. 성평등이란 용어는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 등으로 바꿨다.
이번 행정예고는 이날부터 오는 29일까지 20일간 진행되며 교육부는 교육과정심의회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오는 12월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 고시할 예정이다.
이날 장 차관은 이번 교육과정 행정고시에서 이주호 교육부장관 개입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장관이 확정 고시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장관 개인, 차관 개인의 의견을 반영해서 수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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