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한국시리즈, 퍼펙트 우승에서 졌잘싸까지
[이준목 기자]
▲ SSG 감격의 우승 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를 승리해 우승한 SSG 선수단과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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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가을야구가 그 어느때보다 드라마틱한 명승부와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기며 성공적으로 종영했다. SSG 랜더스는 키움 히어로즈를 물리치고 재창단 2년 만에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11월 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SG는 윌머 폰트(7.2이닝 5피안타 2피홈런 1사사구 3실점)의 역투와 김성현의 결승 적시타에 힘입어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SSG는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 4차례 KS 우승(2007, 2008, 2010, 2018년)을 포함하면 이번이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동시에 지난 2021년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구단 프랜차이즈 역사를 이으며 SSG 랜더스로 재창단한 이후로 역사적인 첫 우승을 달성했다.
▲ 정용진의 기쁨의 눈물 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SSG가 우승을 확정지은 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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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는 지난해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연봉 27억에 영입한 데 이어, 올해는 다시 돌아온 에이스 김광현에게 역대 최고액인 4년 151억 원을 안기며 예우했다. 주축 투수들과 KBO 최초로 비(非) FA(자유계약선수) 다년 계약을 맺은 것도 화제가 됐다. 박종훈-문승원-한유섬 등이 모두 수혜자가 되며 SSG는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올 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급 클럽하우스를 완성하며 야구에만 집중할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SSG는 창단 첫해인 2021시즌은 6위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딛고 절치부심한 2022 시즌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지난 4월 개막과 함께 10연승 행진을 질주하며 선두로 치고 나갔고, 이후 페넌트레이스가 막을 내릴 때까지 단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KBO리그 역대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라는 대기록 달성했다. 정규리그 막판 2위 LG트윈스에 맹추격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결국 2게임차로 우승을 지켜내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키움과의 대결은 역대 한국시리즈사에 손꼽힐 만한 명승부였다. 정규리그 3위로 준PO부터 올라온 키움에 비하여 객관적인 전력과 상대 전적(11승 5패)에서 모두 우위로 예상되었던 SSG지만, 키움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SSG는 1차전에서 4시간 20분에 걸친 연장접전에서 전병우에게 10회 결승 적시타를 내주며 키움에 6-7로 패하며 기선을 빼앗겼다. 2, 3차전을 내리 승리하며 분위기를 가져오는 듯했지만, 다시 4차전을 내주며 시리즈는 2승 2패 원점으로 돌아갔다.
시리즈의 분수령은 5차전이었다. SSG는 5차전에서 키움 선발 안우진의 역투에 밀려 7회까지 0-4로 밀려 패색이 짙었다. 5차전을 내주면 주도권을 완전히 키움에게 내주는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SSG는 안우진이 내려간 이후 깨어난 타선이 키움 불펜진을 공략하며 8회 최정의 투런포로 추격에 나섰고, 9회에는 무사 1, 3루에서 대타로 나선 노장 김강민이 드라마같은 역전 스리런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5-4로 경기를 뒤집었다.
전날 승리의 여운을 이어가듯 6차전 역시 역전쇼가 펼쳐졌다. 이날도 SSG는 2회 초 키움에게 2점을 먼저 내줬지만 2회 말 곧바로 상대 실책 등을 틈타 2점을 뽑고 동점을 만들었다. 키움이 6회 초 이정후의 솔로홈런으로 다시 앞서가자 6회 말 김성현의 결승 2타점 적시타로 다시 리드를 가져오는 저력을 발휘했다.
특히 경기 후반에는 SSG의 '명품수비'가 그야말로 빛을 발했다. 승부처마다 실책 3개에 나오면서 실점으로 연결된 키움과는 정반대로, SSG의 수비는 철옹성이었다. 한유섬은 3회초 이정후의 우측 파울플라이 타구를 담장 앞에서 점프하며 잡아낸 것을 시작으로, 5회에는 최지훈이 박준태의 우측 파울플라이를 펜스 바로 앞에서 낚아챘다. 4대 3으로 역전에 성공한 7회엔 박성한과 최주환이 연달아 까다로운 타구들을 몸을 날려 잡아냈다. 외국인 선수 후안 라가레스는 파울플레이를 잡아내기 위하여 먼 거리를 전력질주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치열했던 한국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마지막 장면도 SSG의 호수비였다. 9회초 2사후 키움 이지영의 날카로운 안타성 직선타도 마침 라인에 딱붙어있던 1루수 오태곤의 다이빙 캐칭에 걸렸다. 경기 내내 마치 서커스 묘기를 보는 듯한 SSG 야수들의 신들린 수비는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SSG가 이번 시리즈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내내 강조한 수비의 중요성이 결실을 맺은 장면이다.
▲ 우승 감격에 눈시울 붉힌 추신수 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 SS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자 추신수가 눈시울을 붉히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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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과 동갑인 추신수는 국내 복귀 2년 만에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번도 들지 못 했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기쁨을 누렸다. 정규시즌에서는 왼 옆구리 미세 골절로 고전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6경기 타율 3할 2푼(25타수 8안타)에 6득점, 출루율 4할 1푼 4리의 성적으로 분전하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SSG의 에이스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이어 2022년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는 마지막 투수로 나서며 이지영을 잡아낸 뒤 마운드에서 동료들과 얼싸안고 환호했다.
정용진 구단주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선수단의 헹가래를 받으며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정 구단주가 자신의 SNS에 헹가래를 받는 사진을 올리며 "내년에도 이거 받고싶음, 중독됐음"이라는 글을 게재하자 팬들의 답글이 쏟아지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내년에도 SSG를 향한 통 큰투자가 이어질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야구전문가들은 SSG가 내년에도 핵심전력이 건재한 만큼 당분간 우승후보의 위용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을 호령했던 전신 SK의 뒤를 이어 '왕조 2기'를 기대하게 한다.
한편 준우승을 차지한 키움은 이번에도 비록 한국시리즈의 벽을 넘지 못 했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이 배출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상대인 SSG가 팀연봉 1위팀답게 '투자=성적'의 정석적인 모범사례를 보여줬다면,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고 프로야구 전체 팀연봉 9위에 불과한 키움은 '언더독'도 충분히 강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매년 전력 유출을 겪었던 키움은 올해에도 중심 선수였던 박병호(KT)와 박동원(KIA)을 이적시키며 중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구단 운영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키움은 예상을 깨고 시즌 내내 상위권에서 순위 다툼을 벌였다. 선발 안우진은 리그 최고 우완투수로 성장했고, 타선에선 이정후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팀을 이글었다. 젊은 투수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불펜 필승조의 구축,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의 후반기 활약도 돋보였다.
키움은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무려 15경기를 치렀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작년 우승팀 KT와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고, 플레이오프에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정규 2위 LG를 3승 1패로 격파하며 '업셋'의 주인공이 됐다. 홍원기 감독의 신들린 대타작전과 투수교체 타이밍이 승부처마다 빛을 발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막강전력의 정규 시즌 우승팀 SSG를 매경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투혼을 발휘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선수들의 체력저하로 인하여 시리즈 후반기로 갈수록 쏟아진 실책과 실투가 아쉬웠다. 거의 다잡았던 5, 6차전에서 2경기 연속 1점차 역전패를 당한 것이 통한의 순간이 됐다.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며 재창단한 이래 아직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키움은 2014년과 2109년에 이어 세 번째 한국시리즈 도전 역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키움의 놀라운 선전이 있었던 덕분에 SSG의 극적인 우승도, 올해 가을야구의 명승부들과 폭발적인 포스트시즌 연속 흥행 행진도 더 찬란하게 빛이 날 수 있었다. '졌잘싸'의 모범을 보여준 키움 역시 승자인 SSG 못지않게 박수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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