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레드웨이브' 쓰나미 될까…상공하공이냐, 상민하공이냐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미국 의회 권력을 재편하는 8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프랭크 매코트 고등학교에는 투표를 위한 뉴요커들의 발걸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날 투표소 앞에서 만난 크리스티나 그레이씨는 상의에 붙인 ‘투표 완료(I voted)’ 스티커가 잘 나오게 셀피부터 찍었다. 오랜 민주당 지지자였다는 그레이씨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너무나 많은 범죄에 분노하고 있다"며 "나는 늘 민주당을 찍어왔지만 이번엔 달랐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타일러 존스씨는 "경제가 좋지 않다"면서도 "그건 전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냐. 미국이 가야 할 방향,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이 입은 파란색(민주당의 상징색) 패딩 조끼를 가리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11·8 중간선거에서 개표 초반 당초 예상대로 공화당의 우세가 확인되면서 향후 정치적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게 됐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의 남은 임기 국정동력에 제동이 걸리며 선거 후 최우선 입법안으로 꼽아온 낙태권 성문화 등의 무산이 확실시된다. 이번 선거가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미니 대선’ 성격을 띤 만큼 2024년 대선 가도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
◇하원은 공화당 우세, 상원은?
선거일인 8일(현지시간) 밤 현재 개표 초반 분위기를 살펴보면 공화당의 우세가 확인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공화당은 4년 만에 하원 다수당 탈환이 유력시되고 있다. 일찌감치 예상됐던 시나리오대로다.
이제 관건은 경제 심판론에 힘입은 공화당이 상하원을 다 장악할지 또는 민주당의 막판 세력 집결로 ‘상민하공(상원 민주당-하원 공화당)’ 구도로 찢어질지 여부다. AP 통신은 "여러 면에서 공화당의 우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레드 웨이브(Red Wave·공화당 열풍)가 물결이 될 것인가, 쓰나미가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에머슨리서치가 CNN 등에 공개한 출구조사에서는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10명 중 7명 이상이 현 미국의 상황에 불만을 품고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른바 ‘심판론’이 확인됐다. 또한 절반에 가까운 46%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이 국가를 해치고 있다고 답했다. 표심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는 인플레이션(32%)을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낙태(27%), 범죄(12%), 총기정책(12%), 이민(10%) 순이다.
다만 이러한 레드 웨이브로 막판 진보 세력 표심이 집결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선거 당일 밤 가장 뜨거운 질문은 ‘상원을 장악할 정당이 어디인가’지만, 바로 답을 얻지 못할 수 있다"며 "정확한 개표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적 변화 불가피… 韓 여파는?
의회 권력 재편 시 정치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진보와 보수가 대립해온 낙태권 성문화는 공화당의 반발로 무산될 전망이다. 대신 이민, 범죄 등 공화당 관심 법안이 대두할 것이란 관측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일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현지 전문가들은 공화당 주도로 일부 법안 폐기를 추진할 수도 있으나, 대통령 거부권 등으로 완전 폐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정치적 움직임도 강화될 수 있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를 겨냥한 조사 움직임이 예고된 상태다. 앞서 CNN방송은 이달 초 제임스 코머 하원의원(켄터키)이 선거 다음날인 9일 재무부에 헌터 바이든과 관련한 의심스러운 은행거래 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곧 80세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자칫 대권 도전마저 쉽지 않은 구도로 치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유세 캠페인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변곡점'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예고대로 오는 15일 플로리다주의 자택 마러라고에서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며 이날의 레드웨이브를 기회로 삼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이날 투표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국가가 많이 나빠졌다"면서 "길을 잃었고 자신감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미국의 중간선거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느 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든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 기조가 이어지면서 계속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에서 관심이 큰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의 경우 중간선거 이후 개정 기대감이 제기돼왔으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인프라 감축법을 비판해온 공화당조차도 자국 전기차 산업 육성과 공급망 강화엔 동의를 표하고 있어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기보다는 공화당이 반발해온 세금, 재정지출 위주에 그칠 전망이다. 한국으로선 대미 협상 역량에 힘을 모아 일본, 유럽 등과 함께 동맹국으로서의 입장을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아울러 북한 이슈의 경우 북핵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기존 기조를 지속하는 가운데 공화당의 강경 노선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뉴욕증시에 미치는 여파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됐다. 중간선거는 통상 주식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등이 예년보다 더 부각되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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