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위기를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아야” [2022 중앙포럼]

손국희 2022. 11. 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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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9일 “우리는 이번 경제 위기를 절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중앙포럼’ 개회사에서 “우리 경제는 어려울 때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위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회장은 “40년 만의 세계적 인플레이션 공격을 받고 있고, 나라 안팎에서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고 현 경제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혁신과 구조개혁’을 위기 돌파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홍 회장은 “경제의 고질병부터 고쳐야 하고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는 교육·노동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며 “이 과정에서 과도한 규제와 낡은 관행은 과감하게 개혁해야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전력투구해서 우리 경제의 혁신 역량과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중앙포럼'에서 “우리는 이번 경제 위기를 절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홍 회장은 정부를 향해서는 “위기 대응에 하루하루 바쁘고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그렇더라도 위기 이후를 내다보면서 냉철하게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인 2006년과 2009년 ‘중산층을 두텁게 키우자’는 기획시리즈를 집중 보도한 것을 언급했다. 홍 회장은 “사회 통합의 힘은 건강하고 두터운 중산층에서 나온다”며 “사회 취약층을 따뜻하게 보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그들이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중앙포럼은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과 도약 - 새 정부와의 대화’를 주제로 진행된다. 홍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해외 석학인 로렌스 서머스(전 미국 재무장관) 하버드대 교수와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이 ‘미국과 세계 경제의 장단기 전망 : 한국 경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제로 특별 영상대담을 진행한다.

이날 포럼에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참석했다.

다음은 홍석현 회장의 개회사 전문.

■ 이번 위기, 약한 고리를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님,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님, 추경호 경제부총리님,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님,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님,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님, 특별 대담을 하시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님과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님, 토론에 참석하시는 전문가들과 내외 귀빈 여러분,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JTBC가 후원하는 중앙포럼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40년 만의 세계적 인플레이션 공격을 받고 있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고강도 통화 긴축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아시아 등 신흥시장은 매우 강한 달러화 때문에 자본유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했습니다.

가계 빚 부담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금리를 계속해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시장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합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레고랜드 사태와 제2 금융권의 불안은 우리 금융시장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고금리·고물가에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은 더 고단해졌습니다.

우리 경제를 좌우하는 대외 통상 환경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위기 못지않게 악화일로입니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환율 상태에서 거듭되는 무역적자는 외환위기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내년 경제 사정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입니다. IMF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6%로 추정하고 내년에는 이보다 더 낮은 2%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서고, 이미 4년 전부터 재정적자가 이어져 재정을 동원할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고 있는 가운데 개방체제의 수출국가인 한국에게는 매우 불리한 국제정세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수위가 높아지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도 첨예합니다. 그 결과 미국 중심의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양분되는 디커플링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급망은 미국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끝난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경제에는 영원한 동맹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뀌어도 ‘바이 아메리칸’이라는 구호가 여전하듯이 국제사회에서는 국익이 우선시됩니다.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본능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줄줄이 도입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과학법’ ‘바이오산업행정명령’의 맥락은 모두 같습니다. 우방인 한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고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차를 제외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의 성장엔진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경제는 어려울 때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났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고물가를 극복했고,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냈습니다. 이번 위기도 못 넘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 삼아 우리의 약점을 보완하고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은 공급망이 격변하는 와중이지만 반도체·배터리·자동차·조선·석유화학에서 여전히 탄탄한 기초체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기초체력을 믿고 우물쭈물하면 다가오는 위기를 막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이 반면교사입니다. 일본은 1990년을 정점으로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사실상 ‘제로 성장’ 국가였습니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 근처까지 치솟아도 손을 쓰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한때 미국을 넘보던 일본 경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미국 경제학자 루디거 돈부시 MIT대 교수는 국제금융의 명저 『환율에 대한 기대와 환율 역학』에서 “환율은 결국 펀더멘털에 의해 결정된다”고 통찰했습니다. 돈부시의 이론대로라면 엔화 약세는 혁신은 없고 재정만 쏟아부은 ‘잃어버린 30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일본의 판박이입니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핵심 산업이 중국으로부터 쫓기고 미국의 보호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025년 한국의 기대수명은 84.1세로 일본의 84세를 앞지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하는 길은 명확해졌습니다. 혁신과 구조개혁입니다. 경제의 고질병부터 고쳐야 합니다.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는 교육·노동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합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규제와 낡은 관행은 과감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전력투구해서 우리 경제의 혁신역량과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과감한 선택과 실행이 필요한 때입니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숲 속의 갈림길 중 한 쪽 길을 선택했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했습니다. 한 번 선택을 하면 다른 기회를 놓친다는 은유가 숨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제학의 기회비용 이론과도 통하는 지혜입니다.

정부는 위기 대응에 하루하루 바쁘고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위기 이후를 내다보면서 냉철하게 정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고물가도, 고환율도, 언젠가는 꺾일 것입니다. 경기 침체와의 싸움도 끝이 날 것입니다. 20세기 말 디지털 전환시대를 준비한 미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초당적 협력으로 노동개혁에 성공한 독일은 유럽연합의 선도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그렇다면 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정부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합니다.

중앙일보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인 2006년과 2009년 ‘중산층을 두텁게 키우자’는 기획시리즈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중산층이 중요하고 우리 사회와 정치의 쏠림 현상을 막는 균형추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 중산층이 허약해지고 사회 양극화는 심해집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그랬습니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도 정치도 건강해집니다. 사회 통합의 힘은 건강하고 두터운 중산층에서 나옵니다. 사회 취약층을 따뜻하게 보듬는 데 그쳐선 안됩니다. 그들이 사회의 계층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2300년전 『정치학』에서 “불평등이 파쟁의 원인”이라며 “중산계급은 반란과 파쟁의 위협에 가장 덜 노출돼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주역의 가르침 중에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우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위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위기를 절대로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달하는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변하고 바꾸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 중앙포럼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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