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기간에 대규모 진로특강?... 앞뒤 안 맞는 교육청

서부원 2022. 11.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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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광주광역시교육청의 '청소년 진로 특강' 유감

[서부원 기자]

#장면①

"추신수 선수가 이곳 광주에 온다고요?"

담임교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전 메이저리거 추신수, 그 추신수가 맞느냐며 재차 확인하는 아이도 있었다. 심지어 '가짜뉴스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뜬금없이 이곳 광주를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거다.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SSG랜더스의 주역인 추신수 선수를 보기 위해 아이들은 앞다퉈 서로 참가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자타공인 야구광인 몇몇 아이들에겐 무단결석을 감수하고라도 갈 만한 자리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들은 추신수의 통산 타율과 나이, 고향, 가족 관계, 심지어 연봉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력을 훤히 꿰고 있었다. 

#장면②

지난 4일, 광주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청소년 진로 특강'에 참가할 학생 명단을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교직원 중심의 연수에서 벗어나 청소년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취지다. 아이들의 진로 탐색 활동을 교육청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특별 강사를 초빙해 참여도와 만족도를 제고한다는 목적도 함께 적시했다. 학교별로 참가 인원을 할당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거다. 그러자면, 사회 지도층이나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테다. 

지금껏 교육청이 주관한 특강은 사실상 '강제 동원'이었다. 공문에 아예 '학교당 O명'이라고 명시해놓는 경우가 태반이다. 당일 행사장 입구에 출석부를 비치해서 참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의 실적 쌓기용 행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는 18일에 열린다는 '청소년 진로 특강'의 연사는 추신수 SSG랜더스 선수다. 아이들이 흥분했던 이유였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이 페이스북에 올린 '2022 청소년 진로특강 - 자신을 믿고, 미래를 꿈꿔라' 홍보 이미지.
ⓒ 광주광역시교육청
 
귀감이 되는 건 맞다... 그러나

'강제 동원' 관행에 대한 교육청의 문제의식에는 십분 공감한다. 다만, 무작정 유명 인사를 앞세우는 방식이 연수와 특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명색이 진로 특강이라면,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

어렵사리 모셔온 명사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고작 '보이즈,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 같은 거라면, 이 또한 행사를 위한 행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초청 강사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이라면, 진로 특강이라기보다 팬 사인회가 될 게 자명하다(이와 관련해 광주시교육청은 기사가 나온 뒤 '팬 사인회가 아니라 선물 증정 행사'라고 밝혔다 - 기자 주). 교육청이 앞장설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야구선수로서 추신수의 삶이 아이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경기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과 기꺼이 거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따뜻한 마음씨는 울림이 크다. 선수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교육청 스스로 강조했듯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한 동기부여'라는 특강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참가 신청서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졸라댄 아이들 대부분은 '추신수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고 선선히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목적이라는 거다. 

공문에 첨부된 특강 운영 세부 계획에도 팬 사인회 시간이 할애됐다. 총 2시간 중 1시간은 특강이고, 나머지 절반은 팬 사인회로 구성돼 있다. 추 선수와 함께 사진 찍는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행사를 진로 탐색 활동이라고 부르자니 남우세스럽기까지 하다. 

심상치 않은 코로나 확진자 수... 비대면 수업하라더니 강당 행사를?

더 큰 문제는 아이들 수백 명이 실내 강당에 한데 모이는 대규모 행사라는 점이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겨울로 접어들면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 불요불급한 행사라면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게 마땅하다.

최근 광주광역시의 코로나 확진자 현황을 볼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10월 말까지 하루 800명대를 유지하던 확진자 수가 11월 들어 1000명을 돌파하더니, 11월 7일 현재 1200명을 넘어섰다. 지금껏 잠잠하던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겨울철 독감마저 유행하고 있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기다. 독감 주사를 맞기 위해 조퇴하는 아이도 많을뿐더러 코로나와 증상이 비슷해 따로 신속 항원 검사를 받는 경우도 흔하다. 종일 부대끼며 함께 생활해야 하는 학교는 자칫 감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광주광역시교육청은 11월 셋째 주, 한 주 동안 학교마다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운영하라는 공문을 내렸다. 그래서 11월 14일(월)부터 18일(금)까지, 수능 당일을 제외한 나흘간 아이들은 집에서 수업을 듣게 된다. 수능 시험장으로 사용될 학교의 방역을 위한 조치다. 

그런데, 정작 등교하지 못하고 비대면 원격수업이 진행되는 18일 오후에 실내에서 아이들 수백 명이 모여 대규모 행사를 연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교 교실이 아닌 교육연수원 대강당은 바이러스의 안전지대라고 여기는 걸까. 교육기관이라면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특강 후 팬 사인회가 예정된 마당에 방역 지침이 제대로 지켜질 것 같지도 않다. 버젓이 담임교사가 보는 앞에서도 마스크를 턱에 걸거나 손목에 차고 다니는 아이가 적지 않다. 하물며 아이들이 처음 보는 다른 학교 교사와 교육청 직원들의 통제에 따를 리 만무하다. 

더욱이 2시 30분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아이들 수백 명의 오후 수업은 결강이 불가피하다. 교육청은 수업 결손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교사들의 연수나 출장을 퇴근 후인 저녁 시간으로 배치했다. 그럴진대 아이들의 수업 결손을 나 몰라라 하는 것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교육청에 바란다... 진정 학생 진로탐색 활동을 돕고 싶다면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지난 10월 12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광주시교육청 및 전남·전북·제주도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마 그러랴 싶지만, 무늬만 아이들을 위한 진로 특강일 뿐, 신임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을 빛내기 위한 행사라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운영 계획에 따르면 특강에 앞서 교육감이 격려사를 한다고 돼 있다. 유관 기관장들이 함께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직접 교육감이 행사에 참여해 격려사를 하고 강사를 소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 주무 부서의 과장이나 장학사가 대신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4일 하달된 건 두 번째 공문이었다. 애초 지난 10월 말부터 학교별로 참가 신청을 받았다는데, 홍보가 부족했던 탓에 7일부터 일주일간 추가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교육청에서는 대강당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환호성이 필요했던 거다. 그것은 '손님'에 대한 환대의 의미이자 애써 자리를 마련한 교육감의 위신을 세워주는 일이다. 

부디 교육청에 바란다. 진정 십인십색 아이들의 진로 탐색 활동을 돕고 싶다면, 지역사회의 역량과 학교 교육과정을 매칭시키는 일에 전념해달라. 각자의 진로 탐색 활동이 자신의 꿈을 발견함과 동시에 지역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키우는 기회가 되도록 애써달라는 뜻이다.

아무리 거물급 인사를 모셔온다 해도 일회성 행사에 그친다면, 아이들에게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다. 순간의 달콤한 추억이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대신해줄 리 만무하다. 사회가 온통 예능화하는 분위기 속에 교육청마저 줏대 없이 휩쓸리는 것만 같아 뒷맛이 개운찮다. 

사족. 특강의 부제는 '메이저리거 출신 추신수가 청소년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위대한 야구선수로서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가 건넬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다. 아이들은 그의 말보다 그의 안타와 도루와 홈런과 득점에 더 감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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