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 3전 4기…해외서 난민 돌본 의사, 왜 청진기 놓았나

김민주, 위성욱 2022. 11.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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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지자체장에게 듣는다]

■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은 최근 취임 100일이 지났다.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등 자치단체장은 4년간 펼칠 주요 사업의 틀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살림살이 계획을 듣고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특히 행정의 주민 밀착도가 훨씬 높은 시장·군수·구청장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북한에 대비할 잠수함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선친께서 ‘의사가 돼 병약한 어머니를 살펴드리면 어떻겠냐’ 하시더군요.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난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모습. 사진 김해시

경남 김해에 살던 17살 소년의 진로는 이런 아버지 말에 결정됐다. 소년은 예ㆍ본과 과정만 6년이 걸린단 사실도 모른 채 의대에 입학했다. 여자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학비를 댔고,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개원한 병원이 자리를 잡자 시민단체인 열린의사회에 가입해 아프가니스탄과 몽골·시리아 등지를 십수년 떠돌며 난민을 돌봤다.

고향 청소년 자살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자치단체에 이 문제 대책을 건의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해보겠다”며 나선 선거에서 내리 세 번 낙선했다. 3전4기 끝에 지난 6월 ‘민주당 성지’로 불리는 김해에서 보수정당 깃발을 걸고 당선됐다. 홍태용(57ㆍ국민의힘) 김해시장 인생 이력이다.


베테랑 의사는 왜 청진기를 놓았나


홍 시장은 1999년 국내 최대 규모 민간국제의료봉사 단체인 열린의사회에 가입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스리랑카·아이티·에티오피아 등을 돌며 난민을 돌봤다.

10년 넘는 세월 세계 각지를 오가는 동안 그는 잠시 청진기를 놓은 적도 있다.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에서였다. 아프가니스탄이 미국과 전쟁을 한 뒤 소요사태로 민간인 피해가 극에 달하자 열린의사회가 이곳을 찾았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열린의사회' 해외 의로봉사 참여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 김해시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아프간 난민촌에 도달했을 때 발목 잘린 남성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족 식량을 구하려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난민촌엔 아사 직전 아동이 많았다. 홍 시장은 “청진기를 대도 아주 약한 심장박동만 느낄 수 있었다. 의술이 아니라 당장 먹을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의료단장이었던 그의 제안에 따라 이튿날부터 봉사단은 진료 대신 식량 사수에 나섰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밀가루를 구하고 빵을 구울 시설을 찾았다. 청진기 대신 밀가루와 빵 자루를 목에 건채 정신없이 3일을 보낸 의사들은 난민촌을 보호하던 평화유지군 장교가 폭탄에 사망하면서 도망치듯 아프간을 떠나야 했다. 홍 시장은 “누군가에겐 진료보다 빵이 절박하고, 의사가 아닌 배달부로 뛰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삶을 버리는 시민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이후 그는 고향 김해 현안 해결을 위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이를 위해 의료와 교육·문화 분야 전문가를 모아 2008년 김해생활포럼을 만들었다. 포럼은 지역 현안을 진단하고 전문가 의견을 모아 김해시 등에 조례 제정 등을 제안하는 역할을 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지난달 31일 집무실에서 시정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해시
이때 홍 시장은 지역의 높은 자살률 문제를 고민했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해시민은 135명, 자살률(10만명당 극단적 선택을 한 인구 비율)은 31.5명이었다. 경남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고, 전국 자살률(24.7명)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특히 청소년 자살 문제에 주목해 심층적인 원인 분석과 상담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그는 “직접 뛰어보겠다”며 2010년 경남도의원 선거에, 2016년과 2020년 총선(김해갑)에 출마했지만 내리 낙선했다.

홍 시장은 “당선 후 데이터를 살펴보니 읍ㆍ면보다 대규모 아파트 등이 밀집하고 경제ㆍ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신도시 지역 청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이를 예방하고, 학생 우울ㆍ불안감 등을 사전에 감지해 관리할 수 있는 학사 과정을 제도화하기 위해 교육기관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판 3전4기, 맘카페를 공략하라


김해에서는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4번의 선거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시장직을 독식했다. 그런데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온 이후엔 2010년부터 4번 연속 민주당이 이겼다. 홍 시장은 앞서 3번의 ‘낙선’ 경력만 있는 보수정당 후보였는데도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현직이던 허성곤(더불어민주당) 전 시장을 꺾었다. 비결을 묻자 뜻밖에 “맘카페를 공략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구 55만명인 김해시는 장유·율하 등에 신도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들어서며 젊은층이 몰린다. 신도시 조성으로 유입된 주민 사이에선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인 맘카페가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게 홍 시장 판단이었다. 그는 “선거 기간 맘카페 운영자와 회원 등을 직접 만나 의견을 경청했다”고 했다.

그 결과 홍 시장은 신도시를 중심으로 ‘스테이션L(L은 lady의 약자)’을 만들고 있다. 접근성 좋은 빈집을 김해시가 사들여 육아와 놀이 기능을 갖춘 공동보육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청년 모임공간인 ‘스테이션G’(G는 Gimhae의 약자)도 “아파트와 학교·식당 이외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조성하고 있다.

홍태용 김해시장(앞줄 오른쪽)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앞줄 왼쪽)을 만나 국가스마트 물류플랫폼 김해 입지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해시

홍 시장은 가덕신공항 배후도시인 김해에 동북아 물류 플랫폼을 조성하는 것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그는 “김해는 부산신항과 가깝고 KTX가 드나든다. 지척에 가덕공항이 건립되면 기존 소규모 물류창고 체질을 개선하고 스마트 플랫폼을 조성할 만큼 수요가 예상된다”며 “정부가 지난 6월부터 국가 스마트 물류플랫폼 구축 용역에 나섰는데, 이를 반드시 김해에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유 소각장 증설, 해법 찾아갈 것”


훼손된 구산동 고인돌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홍태용 김해시장. 사진 김해시
홍 시장은 장유 소각장 증설 문제를 놓고 ‘공약 번복’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서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후보 때 증설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가 이 문제를 질의했고, ‘기존 추진 과정에 불합리한 문제가 있다면 당선 이후 의견 재 수렴 절차를 밟겠다’는 취지로 답했다"라며 "증설을 반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현행 소각로 용량 문제로 하루 60t의 쓰레기가 쌓이는 등 쓰레기 대란이 임박했다”며 “소각장 영향권 내 주민 건강을 위해 친환경 처리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위성욱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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