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판 국회 도어스테핑?…與 "든든하다" 野 "관종·망나니"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장관 두 사람의 행보가 확연히 대비된다. 한 사람은 고개를 숙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목소리를 더 키웠다. 전자는 실언 논란과 경찰 책임론이 불거져 코너에 몰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고, 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한 장관은 이번 참사 국면에서 주무 부처인 이 장관 못지않게 여론의 시선을 강탈하고 있다. 그에게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이번 참사로 코너에 몰린 정부의 장관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침없는 태도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당권 주자보다도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이한 것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가 법무부가 아니라 국회라는 점이다. 한 장관이 국회에 출석할 때면 출입구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나누는 풍경이 매번 연출되곤 한다. 국민의힘 TK(대구·경북) 지역구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용산 도어스테핑’을 한다면, 한 장관은 국회에서 ‘여의도 도어스테핑’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여야 의원들이 말을 아꼈던 국가 애도 기간에도 각종 민감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참사 초기 야당이 ‘국정조사’ 카드로 여당을 압박했을 때가 그랬다.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참석차 국회를 찾은 한 장관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띄웠고, 여권에선 “한 장관이 여당에 프레임 전환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장관은 당시 “(검수완박) 법 개정으로 대형 참사 관련 검찰 수사 개시 부분이 빠졌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에 한계가 있다”고 민주당을 저격했다.
한 장관의 발언 다음 날 여당은 “국정조사보다 검찰이 대형 사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검수완박법을 개정하는 것이 먼저”(정진석 비대위원장)라고 곧바로 호응했다. “검수완박 책임까지 국민의힘에 돌리는 민주당은 ‘양심 완박’이냐 ‘기억 완박’이냐”(양금희 수석대변인), “민주당이 검수완박으로 그렇게 만들더니 경찰 수사를 못 믿겠다는 건 뭐냐”(장동혁 원내대변인)며 당의 스피커들도 거들었다.
한 장관은 참사와 관련된 또 다른 예민한 쟁점에 대해서도 기다렸다는 듯 발언을 쏟아냈다. 7일 민주당의 ‘이태원 특검’ 주장에 대해서는 “초동 수사 단계부터 특검이 수사하는 건 진실 규명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사고 사망자’와 ‘참사 희생자’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번졌을 때는 “저는 피해자이자 희생자라고 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다가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해 야당의 공격을 피해갔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과는 어김없이 격한 설전을 벌였다. 7일 저녁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한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한 장관이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김어준 씨나 황운하 (민주당) 의원과 같은 ‘직업적인 음모론자’들이 국민적 비극을 이용해 정치 장사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답했다. 이에 예결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해 정회됐고, 한 장관이 자정쯤 유감을 표명해 가까스로 개의됐다.
한 장관의 공격적 태도에 야당은 발칵 뒤집혔다. 이날 밤 민주당 의원들의 텔레그램 단체방에서는 “이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취지의 성토가 쏟아졌다고 한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정부·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할 시기에 한 장관의 야당 의원의 감정선을 노골적으로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황 의원은 8일 “한 장관을 즉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하고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소영웅주의와 ‘관종’(관심 종자)에 매몰된 한 장관이 틈만 나면 튀는 발언으로 그 천박함을 이어가던 중이라 놀랍지도 않다”고 발끈했다.
하지만 한 장관은 8일 국회 예결위에 출석하면서 “사과는 허황된 음모론을 퍼뜨린 사람이 해야죠”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이날 오전 법무부 대변인실에서는 “(한 장관의 유감 발언은) 예결위 파행에 대한 유감을 밝힌 것이지, 발언 내용을 취소하거나 사과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한 장관을 두고 여야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한 친윤계 의원은 “우리가 볼 땐 위기 순간마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는 든든한 아군”이라며 “한 장관이 다소 날 선 태도를 보인 점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그의 주장 자체가 틀린 적 있느냐”고 말했다. 반면 야당 중진 의원은 “닥치는 대로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과거 논란에 휩싸인 추미애 전 장관보다도 더 비호감”이라며 “한 장관이 정권 몰락의 주원인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 장관을 향한 여권 내부의 신중론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미 한 장관의 각종 발언은 장관이 아닌 정치인의 워딩”이라며 “한 장관이 보수 지지층을 열광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 이면에는 윤 대통령의 30% 초반대 지지율 난조가 있지 않나”고 꼬집었다.
손국희ㆍ김준영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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