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그날을 복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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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누구도 이런 일이,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섰다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발생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총리는 지난 1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잘 안 들리는 것의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이태원 일대 치안의 '1차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시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을 관용차로 이동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55분을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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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시민이 서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다. 누구도 이런 일이,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섰다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발생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상상할 수 없음’이 사실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망령처럼 떠도는 안전불감증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우리는 또다시 목도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참사 후 벌어졌다. 참사 다음 날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눈과 귀를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첫 테이프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끊었다. 이 장관은 다음 날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뉴스를 듣고 있는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날 새벽 150여명이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의 발언이 이렇게 매정할 수 있나 싶었다. 백번 양보해 이 장관 본인의 입장에서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해도 갑자기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고통받는 유족의 감정을 고려하면 주워 삼켰어야 할 말이다. ‘국가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에 누군가는 몸서리쳤을 것이다.
이 장관은 그다음 날도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으로) 사고를 막기에 불가능했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해 또다시 귀를 의심케 했다. 이 장관은 본인의 말이 논란이 되는 게 매우 억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입 밖에 내지 말았어야 했다. 이 장관의 이 말에 누군가는 또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상황은 계속됐다. 이 장관 발언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섰다. 한 총리는 지난 1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잘 안 들리는 것의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릴 정도로 무거운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총리의 한없이 가벼운 행동에 눈과 귀를 모두 의심해야 했다.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경찰의 늑장 대응은 전 국민을 경악게 했다. 이태원 일대 치안의 ‘1차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시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을 관용차로 이동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55분을 허비했다. 결국 참사 발생 50분 후인 11시5분쯤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112치안종합상황실을 지켰어야 했던 류미진 총경은 참사 발생 1시간24분 뒤에 상황실로 돌아왔다.
정점은 14만 경찰의 수장이 찍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비극이 펼쳐지던 그때 충북 제천의 한 캠핑장에서 잠들었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밤 11시32분 경찰청의 문자 메시지와 11시52분 전화 보고를 모두 놓쳤다. 이튿날 0시14분 상황담당관의 전화를 받고서야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제때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면 비극의 크기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꽃 같은 아이들을 떠나보냈을 때 우리 사회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전 국민적 아픔을 겪게 됐다. 이제는 복기해야 할 때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하나하나 처절하게 기록해 내일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엔 반드시 확실한 국가 재난 대비 매뉴얼을 세워야 한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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