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키움 “모두 잘했다” 서로에게 박수

이정후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의 타구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넘어갔다. 2-2 균형을 깨는 솔로홈런. 더그아웃에 돌아온 이정후는 TV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일곱 개를 펼쳐 보였다. 꼭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키움은 8일 KS 6차전에서 3-4로 역전패하며 2승 4패로 포스트시즌을 마감했다. 2014년과 2019년에 이은 세 번째 KS 준우승이다.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진 못 했지만 키움의 가을 야구는 투혼으로 가득했다. 올가을 준플레이오프(준PO) 5경기를 시작으로 플레이오프(PO) 4경기, 그리고 한국시리즈(KS) 6경기까지 총 15경기를 치렀다. 준PO에서 KT 위즈를 3승 2패로 꺾었고, PO에선 정규시즌 2위 LG 트윈스를 3승 1패로 물리쳤다.

살얼음판 같은 접전이 이어지며 지칠 대로 지쳤지만, 키움은 KS에서도 정규시즌 우승팀 SSG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팀을 위해 참고 뛰는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더그아웃에서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받고 있다”고 했다.

키움의 ‘가을 영웅’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등장해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PO 3차전에선 9년 차 외야수 임지열이 대타로 나와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터트렸다. KS 1차전에선 8년 차 내야수 전병우가 9회 역전 홈런과 연장 10회 결승타를 때려냈다. 또 올 시즌 내내 불펜에서 뛴 왼손 투수 이승호는 4차전 선발 투수로 깜짝 등판해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에이스 안우진, 간판 타자 이정후, 외국인 투수 듀오 에릭 요키시와 타일러 애플러까지 간판급 선수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일당백’을 해냈다. 이정후는 6차전을 앞두고 “다같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조금만 더 힘내서 마지막에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지는 단단했지만 키움은 고비마다 수비 실책에 발목을 잡혔다. 3차전에서 유격수 김휘집의 실책 이후 2점 홈런을 맞아 역전을 허용했다. 5차전에서도 유격수 신준우의 실책 이후 2점 홈런을 내주며 끝내기 패배의 빌미를 줬다. 6차전에선 1루수 전병우의 송구 실책과 2루수 김태진의 포구 실책이 실점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눈앞으로 다가온 승리의 기운을 번번이 수비 실수로 떠나보냈다.

그래도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키움 선수들은 6차전이 끝난 뒤 라커룸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는 박수를 나눴다. 홍 감독은 “1년 동안 고생한 선수들이 다함께 축하하고 웃으며 등을 두드려줬다. 몇몇 젊은 선수들이 눈물을 보였는데, 이정후가 의젓하게 다독이기도 했다”며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모두 함께 잘해냈기 때문에 웃으면서 마무리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선수들이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함께 달려왔다. 그게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인천=배영은·김효경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