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대전환...째깍째깍
거래 활성화 위한 규제 완화책 속속 등장
집값 하락세가 심상찮자 윤석열정부가 본격적인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대폭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LTV 규제는 집값과 규제 지역에 따라 달랐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집값 9억원 이하분에는 LTV 40%를, 9억원 초과분에는 20%를 차등 적용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집값과 무관하게 50%로 단일 적용한다. 무주택자뿐 아니라 기존 주택을 처분할 예정인 1주택자도 대상이다.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풀렸다. 이 규제는 2019년 12·16 대책을 통해 투기 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 도입됐지만 재산권 제한 논란 속에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소송까지 제기된 바 있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 문턱도 낮아졌다. 정부는 분양 시장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2016년 8월부터 규제 지역과 관계없이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제한해왔다. 분양가가 9억원을 넘으면 분양가의 70%가량을 차지하는 계약금, 중도금을 대출 없이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분양가 12억원 이하 중도금 대출 가능
수도권 규제 지역도 추가로 해제하기로
집값이 급등하면서 웬만한 서울 아파트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서자 중도금 대출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두고 본 정부는 중도금 집단대출이 가능한 분양가를 9억원에서 12억원 이하로 완화했다. 어렵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지만 중도금 대출이 안 돼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내년 초 일반분양 예정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전용 59㎡ 분양가가 9억원을 넘더라도 은행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투기과열지구 내 청약 당첨자의 기존 주택 처분 기한도 2년으로 연장된다. 지금까지는 기존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는 입주 가능일 이후 6개월 내에 집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거래 시장이 침체되면서 단기간 내 주택 매도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기한이 늘어났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이슈다. 부동산 상황에 따라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할 건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파트 대출 규제를 대폭 푼 것은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집값 하락세가 심상찮은 데다 거래도 꽉 막혔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 건수 기준)은 9821건에 그쳤다. 1~9월 누적 거래량 기준으로 지난해(3만7306건)의 26.3%에 불과한 수준이다. 총 9510가구로 국내 최대 아파트 단지인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에서 9월 이뤄진 거래는 단 4건뿐이다.
이 역시도 대부분 이전 최고가보다 가격이 내린 ‘하락 거래’다. 부동산 정보 업체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9월 서울에서 거래된 513건 중 22.4%(115개)가 ‘최고가 거래’였다. 최고가 거래는 같은 단지, 같은 면적 아파트가 직전 최고가와 같거나 비싼 가격에 팔린 거래를 의미한다. 즉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77.6%, 즉 10건 중 8건은 이전보다 싸게 팔렸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최고가 거래 비율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70% 안팎이었지만 올 상반기 40%대로 떨어졌고 결국 20%대로 내려앉았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144㎡는 최근 25억원에 실거래됐다. 최고가(33억원) 대비 8억원 떨어진 가격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울아파트 전용 139㎡ 매매가도 42억5000만원에서 33억5000만원으로 9억원 하락했다.
미분양 물량도 연일 증가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12월 1만7710가구에서 올 9월 4만1604가구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1509가구에서 7813가구로 치솟았다.
부동산 거래가 침체되고 미분양이 늘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주택 실수요가 끊겼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10월 28일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4.97~7.499% 수준이다. 고정형 금리도 연 5.36~7.431%로 뛰어 변동, 고정금리 모두 상단이 7%를 넘어섰다. 시중은행의 연 7%대 가계대출 금리는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스텝’에 대응해 11월에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머지않아 8%를 넘어설 수도 있다.
당초 정부는 대출 한도 확대가 가계부채 부담을 늘리고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펴왔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투자 심리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냉각되자 당장 거래부터 활성화해 숨통을 터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주택 시장 침체로 실물경제 전반이 위축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담겼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내 부동산 시장이 추위를 타기 시작하며 실수요자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세금, 대출 등 온갖 규제를 쏟아부었지만 윤석열정부는 정반대 정책 기조를 펼치는 중이다. 거래 절벽이 심상찮다 보니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거래부터 되살리자는 취지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뿐 아니다. 정부는 대출 규제 완화에 이어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 지역을 추가로 해제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9월 전국 조정대상지역 101곳 중 41곳, 투기과열지구 43곳 중 4곳을 해제했는데 한 달 만에 또다시 추가 해제 검토에 나선 셈이다.
이에 따라 집값 하락폭이 가파른데도 해제 대상에서 제외된 수도권 주요 지역이 규제에서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39곳, 조정대상지역은 60곳이 남아 있다. 규제 지역에서 풀리면 총부채상환비율(DTI), LTV 등 금융 규제가 풀리는 데다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도 함께 줄어든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규제 지역도 더 풀기로 하면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카드를 속속 꺼내드는 모습이다. 주택 거래를 회복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고 진단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3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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