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휴직하고 공유 서재 만든 기자... 왜나면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이영광 기자]
지난 5월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란 산문집으로 잔잔한 감동을 줬던 남형석 MBC 기자가 8월 두 번째 산문집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남 기자가 휴직하고 강원도 춘천에 내려가 공유 서재 '첫 서재'를 운영하며 벌어진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 남형석 MBC 기자 |
ⓒ 남형석 제공 |
- 지난 8월 <돈이 아닌 것을 버는 가게>란 두 번째 산문집을 출간했어요. 첫 산문집과 3개월 차이인데 집필에 힘이 들진 않았나요?
"출간 기준으로는 3개월 차이가 맞는데요. 첫 번째 책은 일기 형식으로 몇 년 전부터 매주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올렸던 글들을 모은 거였어요. 그래서 몇 년간 글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출간한 거고요. 또 그 책을 출간하는 사이에 제가 '첫 서재'를 짓고 고치고 하는 과정을 또 매주 연재했었어요. 제가 3개월 만에 후딱 글을 다 쓰고 책을 낸 게 아니에요."
- <돈이 아닌 것을 버는 가게>는 강원도 춘천에 문을 연 공유 서재 '첫 서재'에 대한 얘기잖아요.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말씀드렸듯이 글 쓰는 플랫폼에 매주 글을 올렸거든요. 그러면서 '첫 서재'에 관한 글도 계속 꾸준히 올렸는데 '난다' 출판사에서 눈여겨보고 '첫 서재'에 한번 찾아오셨어요. 글들을 책으로 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첫 서재'가 시한부 서재잖아요. 운영이 끝나면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질 서재인데 기록으로 남겨두면 영원히 박제되는 거잖아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저도 감사하게 출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 시한부 서재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다를 거 같은데.
"다르죠. 처음 시작할 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물론 나중엔 너무 돈을 많이 써서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고요. 그래서 나쁜 일 없이, 나쁜 생각 안 하고 완벽하게 , 내가 가장 원했던 공간에서 살아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를 생각하니 잘한 것 같고 정말 행복한 삶이었죠."
- 왜 서재를 하고 싶었어요?
"꼭 서재를 하고 싶다는 거창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요. 저와 아내가 살아온 모양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교집합을 찾다 보니 읽고 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기만의 공간 있는 것을 추구하고, 또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을 꿈꾸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공간이 서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책이 놓여 있는 공간에, 그 책을 보러 사람들이 오는 공간이라는 걸 상상하게 됐어요. 그래서 서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 책 중간에 '첫 서재' 사진을 넣었는데요. 보통 사진은 앞이나 뒤에 넣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돈이 아닌 것을 버는 가게> 책 표지 |
ⓒ 난다 출판사 |
- '첫 서재'가 예쁜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 어땠어요?
"골목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그 서재를 봤어요. 그때는 폐가였는데 라일락 나무도 너무 예쁘게 살아있고, 외벽이 다 타일로 덮어져 있었거든요. 외벽이 햇볕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라고요. 폐가인데도 생명력이 있는 기분이고 햇볕을 듬뿍 받은 기분이어서 걸음을 딱 멈추고 오랫동안 바라봤던 것 같아요."
- '첫 서재' 관련해서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뭐라고 하던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직장생활 중에 한 번은 멈추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늘 했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얘는 어느 정도 그렇게 살겠거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삶의 모양이 뭔지 궁금해하셨을 수도 있겠는데,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서재를 하기로 했다고 말하니까 신기해 하기도 했었던 거 같아요."
- 10여 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다 20개월 휴직하고 춘천에 공유 서재를 연 거잖아요. 혹시 기자로서 번아웃이 온 건가요?
"사실 번아웃이 왔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기자로서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마음으로 도망쳐 나온 건 아니고요. 기자 생활도 괜찮았어요. 다만 한두 가지 이유를 말하자면... 첫 번째는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고 해도 회사라는 큰 옷을 입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회사라는 옷 말고 진짜 나의 사람다움을 꼭 닮은 공간에서 나만의 옷을 입고 살아보고 싶었어요. 내가 가장 지향하는 삶의 모양대로 살고 싶은 욕구는 아무리 좋은 직장과 좋은 동료들을 만나도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기자를 오래 하다 보면 우쭐대는 마음도 좀 세지고, 기자들은 그런 것이 좀 생기잖아요. 그리고 경쟁이 센 바닥이다 보니 공격성도 강해지고요. 그런 저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이렇게 살다가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굉장히 우쭐대는 사람으로 늙어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가 20대 때 꿈꾸던 삶대로 한번 살아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그렇게 살아 보니까 어떤가요?
"멀리 떨어져서 보니까 기자로서 쉽게 빠질 수 있었던 직업적 함정들에 제가 많이 빠져 있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반성을 많이 했고요. 다시 (MBC로) 돌아가면 어떤 기자가 돼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본 것 같아요."
- 어떤 기자가 좋을까요?
"물론 기자로서 경쟁심이 투철한 건 매우 좋은 자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쟁심 때문에 가끔은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경쟁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피해 주거나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는 기자는 안 돼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격성이나 경쟁심보다는 좀 더 따뜻한 시선 그리고 오해보다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세로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첫 서재에서 음료도 주면서 2시간마다 공간값만 받았잖아요, 그렇게 하고도 유지가 됐나요?
"애초에 제가 돈을 벌겠다고 한 게 아니에요. 사실 다 대출로 사서 지은 집이거든요. 그래서 대출 빚을 갚고 그다음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나오는 것 정도만 충당할 정도로만 공간값을 받자는 취지로 한 거예요. 그랬으니까 돈이 아닌 것들을 벌겠다고 한 가게죠. 그리고 제 생각보다도 손님들이 많이 와주셔서 오히려 유지하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첫 다락'은 원하는 사람을 일주일 정도 머물 수 있게 하고, 값은 5년 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주는 거죠. 왜 5년 뒤로 잡았나요?
"'첫 다락'은 한 주에 한 손님께 충분히 머물게 해드리고 숙박비 대신 5년 뒤에 돈이 아닌 다른 것을 받는 조검으로 머물게 해드린 거예요. 그런데 숫자를 5년으로 정한 건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1~2년 사이에서 뭔가 큰 변화가 생기긴 힘들고, 10년이나 20년은 저희가 기다리기가 너무 궁금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5년이라는 게 상징적인 숫자로 정했어요.
머문 사람분들한테는 '계약이라는 게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5년 있다가 숙박비로 줄 만한 뭔가가 없다고 판단되면 10년 있다 줘도 되고 15년 있다 줘도 된다. 그 대신 가장 가치 있는 숙박비를 우리한테 주는 게 우리한테도 이득이니까 너무 5년이라는 숫자에 매몰돼서 또 조급해 하시지 마시라'고 말씀드려요."
- 왜 돈이 아닌 다른 걸 원한 건가요?
"이제까지는 계속 돈을 벌면서 살아왔잖아요. 돈을 벌면서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삶의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죠. 돈 버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휴직 기간만큼은 돈이 아닌 것들을 벌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돈이 아닌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라고 했을 때 타인의 잠재력이나 꿈 아니면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런 것의 기회를 내어드릴 수 있는 걸 한번 생각해 본 거예요."
- 20개월이면 80명 정도 받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저희가 겨우내 너무 추워서 방학 기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걸 빼면 마지막 손님이 77번째 손님이었어요. 모두 정말 소중했죠. 저랑 일주일씩 머물면서 얘기도 하고, 인터뷰도 했는데... 이분들이 뭘 안 주더라도 충분히 제 자산이자 저의 좋은 추억이 됐어요. 손님들이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얘기해주셨어요. 이런 것만으로도 지금도 많이 번 것 같아요."
- '첫 다락'의 손님이 좋다고 하면 목요일쯤 인터뷰를 한 거 같던데... 혹시 직업병인가요(웃음)?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궁금했어요. 이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이분들이 우리 다락방으로 오는 건 어떤 시인의 말마따나 하나의 세계가 통째로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왕 오셨으니 제가 그분의 세계를 최대한 알고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인터뷰하게 됐어요."
- 책에 보니 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가 의자에 토를 한 에피소드가 나와요. 그 아이 엄마가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갔는데, 왔나요?
▲ 남형석 MBC 기자 |
ⓒ 남형석 제공 |
- 책에 넣지 않은 에피소드가 잊을 것 같은데.
"책에 고마움을 다 담지 못했어요.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정말 바리바리 뭘 많이 싸 들고 오세요. 커피를 파는 집인데도 딴 집 커피도 드셔보시고라고 하면서 커피도 사 들고 오시고, 저한테 준다고 점심도 가져오셔서 일주일에 거의 두세 번은 얻어먹다시피 했죠. 또 '첫 서재'가 끝난다고, 손님들이 직접 만든 '첫 서재' 미니어처도 가져와 주셨어요. '첫 서재' 모양의 오르골도 직접 만들어서 선물로 주셨어요."
- 책 마지막 부분에 '첫 서재' 마지막 날을 상상하셨잖아요, 실재 그게 지난 일요일(10월 30일)이었죠.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일주일 더 문을 열기로 해서 사실 이번 주 일요일(11월 6일)이거든요. 근데 문을 지금도 사실 문 닫는 날 생각하면 좀 먹먹해지긴 하는데 담담하게 닫아야죠. 담담하게 닫는데 아직 사실은 그날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날도 똑같이 문 열고 똑같이 문 닫고 하면서 별 감정 동의 없이 딱 그냥 웃으면서 끝냈으면 좋겠어요."
-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엄청난 메시지를 전하려고 만든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한 번쯤 잠깐 자기 삶을 멈추고 '내 삶의 모양을 꼭 닮은 삶은 과연 뭘까? 그런 삶을 한번 살아볼 수 있을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주시면 책 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누구나 자기 삶의 모양이 있잖아요. 그런데 삶의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서울이란 도시나 아니면 직장인이라는 생태계가 그런 생각할 여유를 안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삶의 모양에 맞는 건 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할 기회를 이 책 통해 갖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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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의소리'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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