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원로들 만나 조언 구한 尹…‘이상민 거취’ 여론향배 촉각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종교계 원로들을 만나 ‘이태원 참사’로 충격을 받은 민심을 달랠 조언을 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찾아 봉은사 회주 자승 스님, 원로의원 자광 스님, 원로의원 도후 스님, 원로의원 지명 스님, 금강선원장 혜거 대종사,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 등과 환담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나라의 큰 변고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종교계 원로들께서 격려와 힘을 주셨으면 해서 찾아뵙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자승 스님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고, 혜거 대종사는 “갈등을 딛고 화합을 이뤄 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장종현 백석대 총장, 김태영 백양로교회 담임목사, 양병희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등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토요일 위로 예배를 통해 많은 국민이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병희 이사장은 “새벽마다 절망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일정에 김건희 여사는 동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은 다른 종교계 원로분들도 만나 경청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 종료 시점을 전후해 조계사 추모 위령법회(4일), 백석대 서울캠퍼스 하은홀위로예배(5일), 명동대성당 추모미사(6일)에 내리 참석하며 이번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대통령실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별도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견이 내부에서 오가고 있다”며 “다만 아직 언론에 공개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사고 거리를 의미있게 조성한다든지, 그 주변에 추모비를 건립한다든지 여러 아이디어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의 교체 여부인데, 대통령실 내에선 이 장관에 대해선 일단 유임시키자는 기류가 우세하다. 익명을 원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지휘권이 있다면 지휘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무턱대고 정치적 책임을 지라고는 하지 않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전했다. 이날 운영위 국정감사를 위해 국회를 찾은 대통령실 참모들도 기자들과 만나 “조사결과를 지켜보자”(김대기 비서실장)라거나 “대통령이 판단하실 일”(이진복 정무수석)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당사자인 이 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사퇴 여부에 대해 “책임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지금은 사고수습에 전념하며 유족을 위로하고 쾌유를 돕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론이 더욱 악화할 경우 윤 대통령의 인사 결단이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경질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대통령실로선 부담이다. 이날도 당권 주자인 윤상현 의원이 KBS 라디오에 출연해 “장관은 정치적으로, 결과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라며 “행정 책임이 아니다. 그래서 저라면 자진사퇴 할 거 같다”고 말했다.
◇빈 살만 17일 방한 유력=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평가받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7일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세부 일정을 물밑 조율 중이지만, 현재로선 17일 새벽 1~2시 서울공항을 통해 방한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공항에 영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용산 청사로 와 윤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진행한다.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은 전임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9년 6월이 마지막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석유 및 외교안보 정책 등을 주도해왔으며,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정부의 공식 수반인 총리에도 임명됐다. 빈 살만 왕세자는 71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 기업들의 진출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대통령실은 기대한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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