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이념 대립의 상징이 돼버린 NCCK…논란의 이유는?
토론은 70분 넘게 이어졌다. 각각 찬성과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대의원 20여명의 발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장내에선 고성도 오갔다. 격론이 길어지면서 오후에 열릴 예정이던 감독 이·취임식마저 한 시간 넘게 미뤄졌다.
지난달 28일 격론이 펼쳐진 현장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제35회 총회 이튿날 회무가 진행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였다. 토론의 불을 댕긴 안건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의 건’으로, 기감 총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토론이 벌어진 건 처음이었다. 이철 감독회장이 “(탈퇴 여부를) 결의해버리면 감리회가 두 쪽으로 나뉘게 된다”고 표결을 막으면서 토론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향후 이 문제가 감리회 분열의 뇌관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각에선 한국교회 이념 갈등의 실태가 뚜렷하게 드러난 현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NCCK와 WCC를 탈퇴하자는 건의안을 놓고 벌어진 토론에서 더 강한 비판이 쏟아진 곳은 NCCK였다. 1924년 창설된 교회연합기구인 NCCK는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모태로 삼고 있다. 감리회는 NCCK 태동기부터 함께 한 교단이다. 현재 NCCK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기감 등 9개 교단이 가입돼 있다. CBS와 대한기독교서회,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등도 ‘연합기관’이라는 타이틀 아래 NCCK에 속해 있다.
감리회에서 NCCK 탈퇴를 요구하는 구심점이 되는 단체는 ‘NCCK·WCC 탈퇴 추진 범감리교인 연합’이다. 이 단체가 꼽는 NCCK의 문제는 크게 3가지다. NCCK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며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NCCK·WCC에 대한 실제적 비판을 가짜뉴스로 폄하하지 말라”면서 ““(NCCK를) 하루빨리 탈퇴하는 것만이 감리교회의 쇠퇴의 길을 막고 새로운 부흥의 시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NCCK 탈퇴에 반대하는 목회자 대다수도 NCCK의 정치적 성향엔 얼마간 반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다. NCCK의 행보가 한국교회의 일반적 정서와 어긋나는 지점이 많아서다. 가령 NCCK는 지난해 12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제35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상’을 수여해 논란이 됐었다. 한국 교계의 대체적인 정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쪽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NCCK 탈퇴에 유보적인 목회자들이 있는 것은 NCCK가 여전히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NCCK 총회에서 동성애나 차별금지법 독소 조항에 대해 (찬성하거나 옹호하는) 공식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거나 “NCCK를 탈퇴하면 감리회의 영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기감 감독 출신의 한 목회자는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기감이 NCCK를 탈퇴하면 이것은 감리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찬반을 떠나 NCCK의 행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 총회 대의원이 아닌 전체 감리교인을 상대로 투표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감이 NCCK를 탈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WCC 탈퇴 여부까지 함께 결정되면서 NCCK와 WCC 잔류를 희망하는 교회들이 이탈해 새로운 교단을 만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감리회가 2개로 쪼개지는 셈이다.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됐던 여러 굵직한 이유 중 하나도 WCC 회원권 문제였다.
감리회에서 벌어진 격론을 한 교단의 소동 정도로 여기기 힘든 것은 최근 들어 NCCK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여기엔 최근 몇년 사이 정권 교체와 함께 불거진 이념 논쟁이 심화되고, 교단 내부적으로도 이념 갈등이 상당부분 투영된 영향도 없지 않다.
가령 NCCK 반대 부류는 이 기구가 용공주의 행태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연합기구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회원 교단의 일치된 의견이 아닌, 총무를 중심으로 ‘소수의 내부자들’에 따라 NCCK의 ‘결정’이 좌우된다는 지적도 많다. NCCK가 ‘정의’와 ‘평화’라는 의제에만 몰두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런 부분이 에큐메니컬(교회연합일치) 운동의 대중화를 막는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큐메니컬권의 한 목회자는 “NCCK에서는 교단들 사이의 친교와 교제를 통해 다양한 운동과 연구가 병행됐어야 했는데 이념 갈등 속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이 지향하는 ‘정의평화창조질서보존(JPIC)’의 가치를 조화롭게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NCCK가 지닌 상징성과 역할은 뚜렷하다. NCCK는 한국의 민주화·인권·통일 운동의 보루이자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다. 한국교회가 갈수록 보수화된다는 지적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NCCK가 교계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를 역임한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재단 이사장은 “회원 교단이 탈퇴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NCCK가 협의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며 “회원 교단의 중지를 모아 개신교의 대표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음주의권 원로인 강경민 목사는 보수 연합단체나 보수 성향의 교단도 NCCK와 연대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강 목사는 “현재 교계의 보수 진영은 NCCK를 이단시하면서 대화조차 꺼리고 있다”면서 “(NCCK와 논쟁을 벌이는 것이) 한국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는 진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양 진영 사이에) 극단적 대립이 아닌 합리적인 설득과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장창일 박용미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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