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해야” vs “경찰 잘못” 이상민 거취에 둘로 갈라진 與
야당이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지목해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를 놓고 국민의힘이 분분하다. 물밑에 가라앉았던 자진 사퇴 요구가 일각에서 본격 분출하는 가운데 당 지도부에서는 비판의 화살을 경찰과 관할 지자체(용산구청)에 돌리는 모습이다.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8일 페이스북에 “여당은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라야 한다. 경찰 지휘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고 이 장관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사태 수습 후 늦지 않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썼다. 지난 2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질하고 사고 수습 후 이 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한 데 이어 같은 주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윤상현 의원도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이 장관의 사퇴 필요성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나라면 자진사퇴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주무 장관인 행안부 장관의 경우 경질이 아니라 자진 사퇴 쪽인데 솔직히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이 장관의 발언은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사태 수습하고 진상규명 후에 본인에 대한 거취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통령의 말씀은 검사의 언어, 검사의 생각이다. 법률적으로는 맞는지 몰라도 인간적, 윤리적, 국가적으로는 잘못된 말”이라며 “용산경찰서장, 용산소방서장, 용산구청장 등 ‘용산’ 공직자들이 줄줄이 입건됐다. '용산'에만 책임을 묻는다면 대한민국은 왜 존재하냐”고 썼다.
3선의 조해진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행정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적 책임은 정치적·도의적 책임과 달리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강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조 의원은 “보고받은 게 이미 늦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참사를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문제는 그런 부실한 보고 체계, 또 현장으로 바로 대응하지 못한 조직 전체의 관리 운용, 감독이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부연했다.
이 장관의 거취에 대한 당내 공개 발언은 참사 당일 112 신고 내역이 공개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흘러나왔다. 사건 직후 유승민 전 의원이 이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지도부는 “이 장관도 밤잠 못 자면서 일하고 있다”(성일종 정책위의장)고 반박했다. 하지만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된 후 안철수 의원에 이어 홍준표 대구시장도 “대북은 강경하게, 내부는 단호하게 해야 한다. 위기에 머뭇거리면 제2의 세월호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며 책임자 문책론을 들고 나오자 당내 기류가 미묘하게 변했다. 홍 시장은 전날인 7일에도 이 장관을 지목하며 “정치적 책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다만 국민의힘은 공식 석상에서 경찰과 지자체의 과오를 추궁하는 데 집중하며 ‘선 수습 후 책임’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이날 비판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 몰렸다. 이날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다음 회의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징계를 논의한다고 밝혔다.
전날 행정안전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도 현안질의에서 이상민 장관보다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집중 공세를 폈다. 이 장관에 대한 일부 질의도 경찰을 추궁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행안위 간사인 이만희 의원이 “사고 당일 경찰의 보고를 받았나” 묻자 이 장관이 즉각 “받지 못했다”고 대답한 일이 대표적이다.
당 지도부가 더불어민주당의 문책 주장에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제대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발언한 데 대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재명 대표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다. 2014년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계실 때 판교에서 환풍구 추락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냐”고 맞받아쳤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공개된 문진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의 텔레그램 착신 메시지에 대해 “유가족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 행위”라고 했다. 문 위원장에게 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모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참사 희생자의 전체 명단과 사진이 공개해 추모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처벌만큼 시급하다”고 보낸 메시지 내용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당내에선 이런 전략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현장에서 왜 보고만 있었냐’고 했는데, 사법적으로 유·무죄를 따지는 것과 달리 정치적인 책임은 다른 일이다. 그렇게 치면 죄 지은 사람이 어디 있나. 사고가 났으니 그래도 총책임자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일 아닌가”라고 했다. 중진 의원도 “당연히 경찰국이 행안부 소관인만큼 이 장관은 물러나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라고 했다.
◇한덕수·이상민·윤희근 “사퇴 의사 밝힌 적 없다”=야당에서 사퇴 및 경질을 주장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장관, 윤희근 청장은 이날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나란히 출석했다. 외신 기자간담회에서의 농담 등으로 논란이 됐던 한 총리는 자진 사퇴 의사를 묻는 정일영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수사를 보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 장관 역시 같은 질문에 “책임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윤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전한 적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고 답했다. 윤희근 청장은 “공직자로서 현재 상황 수습하는 게 더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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