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반발 심한 임금체계 전면 개편 대신 부서·직무별 원 포인트 개혁 가능하게
노조의 반발로 전면적인 임금체계 개편이 어려우면 부서별, 직무별로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 바꾸는 소규모 원포인트형 개혁 방안이 나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상체계를 확립해 제조업에도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권고도 제시됐다.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사용자와 근로자가 대등한 근로시간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회장 김희성)와 (사)노사공포럼(수석공동대표 문형남)이 8일 공동 주최한 노동개혁의 방향과 성공전략 정책 토론회에서다. 고용노동부는 이 토론회의 의견을 반영한 개혁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발제자로 나선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동시장의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대전환·혁신·자율·공정의 시대다. "이에 맞춰 노동법과 제도를 바꿔야 갈등을 줄이고, 사회 통합과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각 키워드별 대응방안도 제시했다. 디지털 확산,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 등에 따른 대전환의 시대에는 현행 획일적·강행적 노동규제로는 한계가 있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혁신의 시대에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혁신적 인력운용과 협력적 노사관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노동규범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의 시대에는 노동력 제공 방식을 좀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나 중앙조직의 규제나 지시에서 벗어나 독립적 의사결정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의 시대에 부응하려면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규칙으로는 공정성을 향한 직원의 욕구 해소 못 한다고 꼬집었다. 공정성은 MZ세대의 주된 요구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이런 키워드에 맞추고 뒤처지지 않기 위한 개선 방안도 내놨다. 우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장하고, 주(週)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월·분기·연간으로 총량 관리토록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또 전문직이나 고연봉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적용을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연공서열 방식의 임금체계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확산하고 심화시킨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성과나 직무와 상관없이 해만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노동시장의 이중화를 심화하고 공정한 보상체계를 훼손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MZ세대도 공정성을 내세워 호봉제 개편을 요구한다. 박 교수는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이런 임금체계를 바꾸는 데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실현에 암초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교수의 해법은 원포인트 개혁이었다. 그는 "노조 반발로 전면적인 임금체계 개선이 어려울 경우 임금체계 개선이 필요하거나 근로자가 원하는 해당 부서나 직무별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고 사용자와 합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제도의 개선을 권고했다.
박 교수는 또 "동일직무 동일임금 원칙을 전제로 파견 대상 업무를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컴퓨터 관련 전문가, 창작·예술·방송 관련 전문가, 수금 종사자, 주유원, 자동차운전 종사자, 수위나 경비원, 번역가 등 32개 업무만 가능하다. 이 업무를 제조업 등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근로조건도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가 합의해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법원의 판결로 인한 혼란과 사법적 리스크를 통박했다. 박 교수는 "노사합의의 우선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율적 해결이 안 된다"며 그 사례로 "대법원은 취업규칙을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받아서 변경해도 그 결과 불이익을 입게 되는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판례로 집단적 노사관계의 자율성 부정하는 새 판례로 혼란을 초래했다"고 소개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토론에서 "노동법의 사법화 극복이 큰 과제"라며 "노사 협치의 영역을 확대해 스스로 업종과 집단, 본인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근로자 개인의 자기 결정권 확대 모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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