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영웅이었던 남자, 3년 동안 달리기만 한 까닭
[양형석 기자]
해마다 시상식이 뜨거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지난 1995년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어느 해보다 영화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어느 때보다 좋은 작품들이 대거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두 번째 작품 <펄프 픽션>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내심 아카데미까지 노리고 있었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도 '<빠삐용> 이후 최고의 탈옥 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오스카 트로피를 기대하고 있었다. 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출한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배우 휴 그랜트를 할리우드 메이저 시장에 진출시킨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도 로맨틱 코미디를 뛰어넘는 의미를 가진 수작으로 평가받은 작품이었다.
▲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랑을 받은 <포레스트 검프>는 개봉 22년이 지난 2016년에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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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넘나드는 포레스트의 '첫사랑'
텍사스에서 태어나 샌디에이고에서 자란 로빈 라이트는 14살 때 일찌감치 모델 활동을 시작했고 18살의 나이에 배우로 데뷔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활동을 시작한 라이트는 1992년 고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토이즈>에 출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트는 1994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대배우 톰 행크스를 만나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 캐런을 연기했다.
라이트가 포레스트 검프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제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포레스트 검프>는 세계적으로 6억 7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6개 부문을 휩쓸었다. 라이트 역시 <포레스트 검프>를 통해 미국 배우 조합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만큼 <포레스트 검프>는 라이트에게 잊지 못할 작품이었다.
라이트는 <포레스트 검프>로 인지도가 오른 후에도 스타보다 '배우'의 길을 걸었고 1997년 숀 펜, 존 트라볼타와 함께 닉 카사베츠 감독의 <더 홀>에 출연해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더 홀>을 찍을 당시 숀 펜과는 부부 사이였는데 두 사람은 2007년부터 이혼소송을 수차례 번복하다가 2010년 최종적으로 남남이 됐다). 2000년에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미스터리 드라마 <언브레이커블>에도 출연했다.
2000년대는 라이트가 배우로서 과도기를 맞은 시기였다. 라이트는 <화이트 올랜더>와 <나인 라이브즈> <베오울프> <음모자> 등에 출연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2013년 라이트는 드라마 쪽으로 눈을 돌리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거물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의 아내 클레어 언더우드를 연기해 골든글로브 TV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라이트는 2018년까지 <하우스 오브 카드> 6개의 시즌에 개근하며 열연을 펼쳤고 이 기간 동안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등 각종 시상식에 단골로 노미네이트 됐다. 라이트는 2017년부터 <원더우먼> 시리즈와 <저스티스 리그>에서 다이애나(갤 가돗 분)의 이모이자 무술 스승인 안티오페를 연기했고 작년에는 직접 연출한 <랜드>를 통해 뮌헨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메리트상을 수상했다.
▲ 포레스트는 제니가 떠난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3년2개월14일16시간 동안 달리기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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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외톨이 소년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 분)가 강인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첫사랑 제니(로빈 라이트 분)를 만나 성장하며 격동의 세월들을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북미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훗날 3D 버전으로 재개봉하면서 재역전)>을 제치고 1994년 흥행 1위를 차지했고 국내에서도 서울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주인공 포레스트가 겪는 이야기도 대단히 파란만장하지만 검프의 주변 인물들이 검프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내면의 평온을 찾는 과정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마약중독자가 되고 불치병까지 걸린 제니는 포레스트에게 돌아와 평온하게 숨을 거둔다. 베트남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포레스트의 상관 댄 중위(게리 시나이즈 분) 역시 포레스트와 함께 새우잡이 배에서 일하며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
미국의 굵직한 사건 및 인물들과 포레스트가 엮이는 과정도 상당히 흥미롭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무명가수 시절 보행 보조기구를 찬 포레스트의 뒤뚱거리는 춤에서 영감을 얻어 로큰롤의 황제가 된다. 비틀스의 존 레넌은 검프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검프와의 대화를 통해 명곡 < Imagine >의 영감을 얻는다. 그밖에도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리처드 닉슨 등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도 포레스트와 작은 인연으로 마주친다.
포레스트의 청혼을 거절한 제니가 다시 홀연히 사라진 후 포레스트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당시 포레스트는 뉴스에서 단순히 '알라바마의 정원사'로 소개되지만 사실 포레스트는 대학 올스타 미식 축구선수 출신에 월남전 영웅으로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 국가대표 탁구선수 출신의 수산기업 오너였다. 이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3년 동안 달리기만 한다면 세계적으로 떠들썩해지는 게 정상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개봉했던 1994년은 아직 지금처럼 CG작업이 보편화돼 있던 시기가 아니다. 당시만 해도 CG는 <터미네이터2>나 <쥬라기 공원>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는데 <포레스트 검프>는 휴먼 드라마 장르임에도 CG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물론 실존인물과의 합성 장면은 다소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수작업을 통해 완성한 <포레스트 검프>의 CG들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기 충분할 만큼 실감 나게 느껴진다.
▲ 베트남전에서 상관과 부하로 만난 댄 중위와 포레스트는 전역 후 사업 파트너가 돼 새우사업을 크게 성공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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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대에서는 어떤 상관을 만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베트남전에 파병돼 댄 테일러라는 좋은 상관을 만난 포레스트는 무척 운이 좋았다. 베트남군의 기습에 두 다리를 잃은 댄 중위는 죽음 직전에 포레스트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지만 자신을 구한 포레스트를 원망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후 폐인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검프는 오히려 실의에 빠진 댄 중위에게 새우잡이 사업을 하게 되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고 댄 중위는 마음을 고쳐 먹고 홀로 고전하던 검프를 찾아간다. 새우잡이 도중에 만나 거센 폭풍우 속에서 그동안의 분노와 울분을 폭발한 댄 중위는 새우잡이로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하면서 부자가 된다(물론 검프는 애플이 과일회사인 줄 알았다). 댄 중위를 연기한 게리 시나이즈는 드라마 < CSI: 뉴욕 >에서 맥 테일러를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검프의 군대 동기인 벤자민 버포드 '버바' 블루(미켈티 윌리암슨 분)는 전쟁이 끝나면 검프와 새우잡이를 함께 하자고 약속하지만 결국 베트남에서 전사해 돌아오지 못한다. 검프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댄 중위와 새우잡이를 시작하고 이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둔다. 영화에 등장하는 버바 검프 슈림프 컴퍼니는 1996년 실제 새우전문식당으로 개업해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3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KKK를 창설한 배드포드 포레스트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검프 부인은 포레스트가 세상에 적응하며 살 수 있게 백방으로 노력했던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포레스트 역시 새우사업에 성공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다. 검프 부인을 연기한 샐리 필드는 <미세스 다웃 파이어>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아내 미란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메이 숙모를 연기했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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