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아는데" 1만자 질타…검사 스타일 드러난 尹리더십
7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1만자 경찰 질타’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직 대통령의 비공개 회의 발언 전문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다. 언론 역시도 참모들이 축약하고 정제한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날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발언한 윤 대통령의 1만자 분량의 중간·마무리 발언을 공개했다. 세 가지 특징 정도가 눈에 띄었다.
"나도 잘 아는데" 깨알지시 내린 尹
첫째는 ‘다변과 깨알 지시’다. 윤 대통령이 ‘다변가’라는 것은 대선 때부터 정치권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두 시간 회의 중 모두·중간·마무리 발언, 이렇게 3번의 발언 기회를 가졌다. 그중 중간과 마무리 발언만 공개됐는데도 분량이 1만자에 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의 대응을 질타하다보니 평소보다 조금 말이 길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깨알지시’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아까 내가 기본 중의 기본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밀집도를 떨어뜨리는 거예요”라며 “해밀톤 호텔에서 블루스퀘어 쪽 100~200m 지점에서 녹사평 쪽으로 가는 이태원 앞이 4차선인데 그 중앙선 2차선을 딱 차단해서 막고 이쪽을 회차시키면 녹사평으로 가는 차들은 금방 빠집니다”라거나 “다양한 세계 식당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거기 잘 압니다마는”이라며 경찰의 현장 대응을 구체적으로 질타했다. 다만 회의에 참석했던 권혁주 서울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대화체에 가까웠고, 실무자를 포함한 참석자들의 열띤 토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는 법률가적 통치 스타일이다. 검찰총장 출신 답게 윤 대통령의 발언엔 경찰과 지자체의 법적 권한과 범위에 대한 언급이 잦았다. 또한 법률적으로 볼 때 경찰과 지자체의 책임을 분리해야 한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사람들을) 해산 시키는 것은 불법이라 볼 수 없다”“통행 공간을 넓혀주고, 사람들의 새로운 유입을 막는 것은 현재 (경찰) 직무집행법상 못할 수가 없어요”라거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시설이 무너져 사람이 다치면 지자체에서 책임을 져야죠. 그러나 상황에 대한 관리가 안 돼서 대규모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것은 경찰 소관이죠. 이걸 자꾸 섞지 말라고요”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검찰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검찰 물 빼는데 8년이 걸렸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법적 부분을 강조하며 직선적인 지시를 내리는 모습에서 옛 검사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검사 스타일 드러나, 책임론에 대한 인식도
마지막은 인사 철학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회의에서 “경찰 전체를 잘못됐다고 질타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며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정확하게 가려주시기를 당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론에 선을 그은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국면 전환용 인사나 정치적 이유만을 위한 인사엔 부정적인 편”이라고 했다. 이를두고 야권에선 앞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한 책임’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라 지적했다.
최진 대통령 리더십 연구원장은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되며 속이 시원한다는 평가와 경찰만 질타하며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며 “향후 윤 대통령의 행보와 대응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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