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은 장수 가을을 맛보다

오문수 2022. 11. 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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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 기자]

 논개사당 앞에서 기념촬영한 일행들
ⓒ 오문수
지난 주말(11.5~11.6) 산좋고 물좋은 장수의 가을을 맛보기 위해 20여 명의 외지인이 장수를 방문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그냥 보내기 아까워 전국에서 온 여행객들. 서울, 경기, 부산, 여수, 대전, 광주, 목포 등지에서 온 사람들. 제주만 빼고는 전국에서 모인 셈이다.

여수를 떠난 차가 꼬부랑 계곡 사이에 난 도로를 따라 두 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단풍은 일품이었다. 10월 말이 절정이었다는 장수 단풍잎은 약간 오그라들었지만 그래도 도시의 일상에 찌든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지금이야 도로가 뚫렸지만 도로 사정이 시원찮았던 옛날 등과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시골장에 다녔던 장수사람들은 무척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무주' '진안' '장수'는 세 고을의 첫글자를 따서 '무진장'이라고 불렸다.

'진안고원'에 속한 장수는 전라도에서 고도가 높은 곳이며 남부 지방에서도 손꼽히는 고원 지역으로 해발고도가 엄청 높아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물 좋고 산수 좋은 장수에는 유명 관광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큰 곳에서 생산되는 명품사과 산지로도 유명하다.

금강수계의 첫물 뜬봉샘

수분마을(신무산) 계곡을 따라 2.5㎞쯤 올라가면 금강 발원천인 뜬봉샘이 있다.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이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봉황새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뜬 것을 보고 천지신명으로부터 개국의 계시를 받았다는 설화가 묻혀 있는 곳이다. 뜬봉샘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서해 바다 하구까지 397.25㎞를 흐른다. 뜬봉샘에는 1급수 지표종인 '옆새우'와 '가재'가 살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에 근무하는 보사부직원 자녀들이었던 소록도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뜬봉샘에서 기념촬영했다. 뜬봉샘은 금강수계의 발원지이다. 동창생 중 국립소록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 퇴직한 이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했을 당시를 얘기해줬고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수녀가 환자들의 피고름을 직접 짜내더라며 천사들이라고 얘기해줬다.
ⓒ 오문수
     
일행이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덕산계곡이다. 덕산계곡은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2개의 크고 작은 용소로 유명하다. 장안산 제일 계곡인 덕산은 용소와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즐비해 절경을 이룬다. 장안산은 해발 1237m의 백두대간 기운을 충청도와 전라도에 전하는 호남의 종산이다. 여름에는 피서지,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으로 유명하다.
계곡 물길을 따라 산자락에 난 데크길을 따라 산책하면 신선이라도 만날 것 같은 느낌인데 뭔가가 가슴을 아리는 게 있다. 덕산계곡에서 가장 멋진 용소 중 하나인 아래 용소에는 한국 근현대사에 얽힌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덕산계곡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아랫용소 모습. 영화 '남부군' 목욕장면 촬영지로 유명하다
ⓒ 오문수
일행을 안내하던 하영택씨가 "이곳이 영화 '남부군'에 나오는 목욕 장면을 촬영한 곳입니다"라고 설명한 용소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가을 단풍잎이 물위를 맴돌고 있었다. 생긴 모습이 사람의 '위'를 닮은 용소는 이데올로기로 갈라진 사람들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지금도 좌우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처연했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장수가야지' 회원들이 준비한 음악회다. '장수가야지'는 여행과 관광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지역사회 공헌형 협동조합이다. '장수가야지' 협동조합에서는 공정여행, 문화체험, 생활관광, 교육서비스, 여행이 있는 연수워크숍, 행사기획, 문화콘텐츠 발굴 등의 사업을 한다.
  
 '자크 느티나무카페'에서 열린 음악회 모습
ⓒ 오문수
 
'자크 느티나무카페'를 가득 채운 청중 앞에서 맨처음 시를 낭독한 이는 '장수애시낭송문학원' 회원이자 2001년 전북시낭송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유금선 시인의 시낭송이다. 이어 4명의 참가자가 애송시를 낭독한 후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현악기와 트럼펫에서 울려나오는 <밤하늘의 트럼펫> 노래가 장수 가을 하늘에 울려 퍼졌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6시, 음악회 여는 '味술관'

음악회를 마친 일행이 저녁 식사를 한곳은 하영택씨가 운영하는 '味술관'. 미술관에 간다는 말만 듣고 그림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곳으로만 상상했던 일행은 집앞에 걸린 '味술관'이란 간판을 보고 껄껄 웃었다. 그림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 아닌 '맛있는 술'을 맛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 장수에 귀촌한 하영택씨가 운영하는 '味술관'으로 그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닌 '맛있는 술을 감상'하는 곳이다
ⓒ 오문수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 2005년 장수에 귀촌한 하영택씨는 원래 경영학을 전공했었지만 음악이 좋아 또 다시 음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그는 '술꾼의 품격'이란 동아리 모임을 운영하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6시면 전국에서 관심있는 분들이 참가한다고 한다.
누룩 '국(麴)' 글자의 첫글자를 써서 '국선생'이라고 불러달라는 그는 전통주를 직접 빚는다. 경영학을 공부했던 그에게 음악을 하며 술을 빚게 된 연유를 묻자 답이 돌아왔다.
 
 하영택씨가 가르쳐준대로 전통주를 빚고 있는 일행들
ⓒ 오문수
         
 '味술관' 주인 하영택씨가 술을 예찬하며 쓴시를 벽에 전시하고 있다. "술은 그리움이라며"
ⓒ 오문수
 
"술을 좋아해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궁리하다 술빚는 법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이 마을은 장계와 진안의 중간지점으로 장에 오가는 사람들이 들러 술을 마시는 주점이 많은 곳입니다. 처음 이 마을 명인한테서 술빚는 법을 배운 후 전주로 나가 술빚는 법을 정식으로 배운게 25가지 정도 됩니다. 제가 빚는 술 중 대표할 수 있는 종류로는 호산촌, 법주, 석탄주, 하향주, 솔송주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빚는 술을 상품화하지 않고 전통주 배우러 오는 사람한테 강의를 한다. 맛있는 술과 목포에서 가져온 홍어 안주를 곁들여 전통주 맛에 흠뻑 취한 일행은 노래방 기계 앞에서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전통주 한 동이를 통째로 비운 일행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가고 장수의 가을밤도 빨갛게 익어갔다.

다음날 프로그램은 장수인의 기개를 보여준 논개사당 방문이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사당 앞에서 묵념한 일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사과농장 체험이다. 대부분의 사과를 수확하고 일행을 위해 남겨놓은 사과 앞에서 농장 주인이 사과 재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과농장체험 행사에 참가한 일행이 사과를 따고 있다.
ⓒ 오문수
 
"저는 도시에 살다가 17년전에 이곳 장수에 귀촌한 귀농인입니다. 사과 농사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귀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시사철 쉴 시간이 없어요. 사과 농사만 짓기 위해 귀농하신다면 제가 말리겠습니다. 연금을 받으며 쉬엄쉬엄하신다면 괜찮을 수도 있지요. 작년에 장수지역 사과 농장이 100핵타르 정도 폐업했어요."

편하게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사과를 깎아 먹었던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사과 수확하는 법을 배운 일행이 한 봉지씩 딴 사과 품종은 후지 품종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미시마 품종이다. 사과를 따며 한입 베어 물자 단물이 줄줄 흐르는 꿀사과다. 일행은 사과 농사짓는 농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안고 각자의 집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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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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