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 먹어가는 방법, SSG 김강민처럼

이준목 2022. 11. 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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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포스트시즌] SSG 김강민, 9회 끝내기 3점 홈런

[이준목 기자]

야구는 1회부터 9회까지 계속 앞서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지막 이닝만 이기면 충분하다. SSG 랜더스가 이러한 야구의 묘미를 보여주며 제대로 드라마틱한 대역전승을 일궈냈다. 한 시즌 농사를 결산하는 최고의 빅매치인 한국시리즈,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최고령 큰 형님이 터뜨린 대타 역전 끝내기 홈런,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SSG는 마지막 2이닝에 몰아친 두 방의 홈런을 앞세워 키움 히어로즈에 5-4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SSG는 이로써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 걸음 앞서면서 전신 SK 시절이던 2018년 이후 4년 만이자 역대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 놓게 됐다. 이전까지 한국시리즈 대결한양 팀이 2승 2패로 맞선 경우는 총 10번이 있었고, 이중 8번이나 5차전 승리팀이 최종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SSG는 7회까지 키움에게 0-4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믿었던 김광현이 5이닝 7안타 4삼진 3실점을 허용하며 부진한 반면, 타선은 키움 선발 안우진에게 꽁꽁 묶였다. 1차전에서 손가락 물집으로 2.2이닝 만에 조기강판됐던 안우진은 이날은 180도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6이닝 동안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4회말 2사 후 최정에게 볼넷을 내주기 전까지는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안우진이 내려간 이후에도 침묵하던 SSG는 8회말부터 서서히 반격의 불씨를 살렸다, 1사 후 최지훈이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하자 최정이 키움의 구원 투수 김재웅을 상대로 좌월 2점 홈런을 때려내며 막힌 혈을 뚫어냈다.

키움은 9회말 마지막 수비에서 최원태를 마무리로 세웠다. 하지만 SSG는 선두타자 박성한의 볼넷에 이어 최주환의 우전안타로 무사 1·3루의 기회를 잡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달아오르면서 키움은 당황했고 SSG는 환호했다. 그리고 승부처에서 SSG의 다음 선택은 대타 김강민이었다.

김강민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2구 투심 패스트볼을 공략했지만 파울에 그쳤다.투 트라이크로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린 상황. 하지만 김강민은 최원태의 3구째 슬라이더가 다소 높게 들어온 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당겨쳤다. 배트에 맞는 순간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모두가 홈런을 직감했다.

김강민은 멋진 배트플립을 선보이며 두 팔을 치켜들었고 1루로 바로 달려가는 대신 날아가는 공을 지켜봤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타구는 왼쪽 펜스 뒤를 넘기는 끝내기 3점 홈런이 됐다. 공이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SSG 선수단과 팬들은 일제히 기립하며 열광했다.

김강민은 천천히 누상을 돈 뒤 헬멧을 벗어던지고 포효하며 홈플레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이던 SSG 동료들과 기쁨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특히 동갑내기 추신수는 뜨거운 포옹으로 친구를 격려했다. 단 한 타석만 출전하고도 이 홈런 한방으로 김강민은 경기 MVP까지 선정됐다.

역대 한국시리즈 네 번째이자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11호 끝내기 홈런이었다. 대타로 끝내기 홈런을 친 사례는 1996년 박철우(쌍방울, 당시 플레이오프 1차전) 이후 두번째고 한국시리즈에서는 김강민이 사상 최초다. 또한 40세 1개월 25일의 김강민은 1차전에서 세웠던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김강민은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왕조의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이다. 2001년 데뷔 이래 현 SSG까지 21년간 오직 한 팀에서만 활약해온 '원클럽맨'인 김강민은 SK가 거둔 네 차례 우승(2007, 08, 10, 18년)을 모두 함께했으며 SSG의 첫 정규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기여했다. 한국시리즈만 개인 통산 8번째다.

김강민은 사실 동시대에 활약한 왕조의 주역중 특별히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1군에서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주로 하위타선에서 활약하며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끝에 전성기에는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가 모두 가능한 호타준족에, 특히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으로 '짐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동시대 팀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들이 하나둘씩 이적하거나 은퇴하는 동안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어느덧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반열까지 오르는 대기만성의 모범을 보여줬다.김강민은 전성기가 지난 불혹의 나이에도 대수비와 대타 등으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84경기에 출전해 타율 .303(178타수 54안타), 5홈런 18타점으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팬들 사이에서는 데뷔연도가 2001년이라는 것을 빗대어 '김강민은 22년 차가 아니라 22살 유망주'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노쇠화를 비껴간 철저한 자기관리와 팀을 위한 헌신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강한자가 이기는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자가 이긴다'는 격언의 좋은 예가 바로 김강민이다.

보통 김강민 정도의 나이가 된 베테랑이라면, 주전급 선수로서의 활약상보다는 팀의 라커룸 리더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원형 SSG 감독은 여기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추가했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에서 그야말로 1순위 대타 역할로 기용되며 승부처마다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점차로 끌려가던 9회말 동점 솔로포를 터뜨리며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가는데 기여했다. 팀이 2-1로 앞선 9회 1사 만루에서 최지훈을 대신해 타석에 섰다. 3차전에서는 2-1로 아슬아슬한 박빙의 리드를 이어지던 9회초 1사 만루에서 적시타를 터뜨리며 6득점을 몰아친 빅이닝의 신호탄을 쐈다.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5차전, 김강민의 이름이 호명되며 타석에 들어설때부터 SSG팬들은 환호하며 '김강민 홈런'을 열창할만큼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김강민은 정말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기대에 부응했다. 본인은 "나는 조연이고 뒤에 거드는 역할일 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한국시리즈 내내 김강민은 '주인공이자 슈퍼스타'였다. 어쩌면 모든 베테랑 선수들이 꿈꾸는 '멋지게 나이먹은 큰 형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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