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의 투혼을 무력화한 김강민의 대타 끝내기 홈런
[김승훈 기자]
2022년 정규 시즌을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로 우승한 SSG 랜더스와 플레이오프 승리 팀 키움 히어로즈의 한국 시리즈는 서로 2승 2패를 주고 받았다. 7일부터 9일까지 남은 3경기는 모두 인천의 SSG 랜더스 필드에서 열리게 됐다.
두 팀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기싸움을 벌였다. 두 팀이 치열한 혈투 끝에 경기 후반이나 연장전까지 가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도 있었다. 매 경기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생겼고, 매 경기 다른 수훈 선수들이 활약을 펼쳤다.
용호상박 시리즈, 4차전까지 서로 2승 2패
1차전부터 연장 10회까지 처절한 혈투가 펼쳐졌다. SSG의 에이스 김광현이 다소 고전했으며 키움의 에이스 안우진도 준플레이오프에 등판했을 때부터 달고 있던 손가락 물집이 터지면서 1차전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다른 선발투수들까지 당겨 쓰는 승부 끝에 키움이 먼저 1차전 승리를 거뒀다.
2차전은 키움에 강했던 SSG의 외국인 투수 윌머 폰트가 7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치면서 SSG가 경기를 압도했고 승부를 1승 1패로 맞췄다. SSG는 3차전에서 여세를 몰아 정규 시즌에 키움을 상대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오원석이 포스트 시즌 첫 등판에서 5.2이닝 7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하며 경기 후반 대역전승을 거뒀다.
그랬더니 4차전에서는 다시 키움이 반격했다. 3차전에서 SSG가 9회초 6점을 몰아 쳤는데, 4차전에서는 키움이 그 동안 자신들에게 강했던 숀 모리만도를 상대로 3회말에만 6점을 몰아 치면서 되갚아 준 것이다. 키움은 불펜 데이로 나섰던 경기에서 첫 번째 투수였던 이승호가 4이닝 1실점으로 잘 버티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차전은 SSG의 베테랑 김강민이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으나 키움의 전병우가 경기 분위기를 다시 가져갔다. 2차전에서는 SSG의 선발투수 폰트의 활약이 컸고, 3차전에서는 SSG의 외국인 타자 후안 라가레스가 결승 홈런을 기록했다. 4차전에서는 키움의 이승호와 이정후가 투타에서 승부를 갈랐다.
빗속에서 펼쳐졌던 5차전, 더 뜨거웠던 열기
5차전이 열렸던 7일 SSG 랜더스 필드가 있는 인천 미추홀구에는 비 예보가 있었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편이었고, 경기 중 비가 약하게 내리면서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다만 이 때문에 그라운드가 비에 젖으면서 수비에서 다소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연출되기는 했다.
김광현은 1차전에서 5.2이닝 4실점을 기록했지만 자책점은 2점이었다. 수비 실책이 겹치면서 정규 시즌 성적에 비해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5일을 쉬고 다시 선발 등판에 나섰다. 1차전에서 손가락 물집이 터지면서 일찍 마운드를 내려갔던 안우진도 5일 동안 임시 방편으로 손가락을 치료한 뒤 선발 등판에 나섰다.
이번엔 경기 초반부터 키움의 타선이 김광현을 공략했다. 1회부터 전병후의 볼넷과 이정후의 2루타, 김태진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앞섰다(2-0). 2회에는 무사 만루 기회에서 김광현이 뜬공과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긴 했지만 1점을 추가했다(3-0).
이렇게 경기 초반에 3점이 난 이후로는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경기 초반에 3실점했으나 무너지진 않았던 김광현이 5회까지 버티면서 선발투수들을 상대로 더 이상의 점수는 나지 않았다.
손가락 물집이 터졌던 안우진... 투혼의 100구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안우진은 포스트 시즌을 시작할 때부터 검지와 중지에 물집을 달고 공을 던졌다. 준플레이오프 2경기와 플레이오프 1경기에서는 그래도 물집이 터지지 않고 버텨 줬는데,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그 물집이 터져 버렸다.
이후 안우진은 어떻게든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응급 처치를 했다. 물집이 터졌던 곳의 살점을 다시 굳게 하기 위하여 단단한 물건으로 손가락을 계속 두드렸고, 5차전 경기에서도 매 이닝 투구가 끝난 다음 응급 처치를 했다.
김광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6회에 등판했던 문승원을 상대로 키움은 송성문이 10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다. 신준우의 쓰리번트로 송성문이 득점권까지 간 상황에서 김혜성의 적시타가 터졌고, 이 과정에서 김성현이 송구 실책을 저지르면서 SSG는 점수 차가 더 벌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맞을 뻔 했다(4-0).
6회말 안우진은 추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최지훈에게 몸 맞는 공, 한유섬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라가레스를 상대로 유격수 뜬공을 유도하면서 실점 없이 만루 위기를 넘기고 이 날의 투구를 마쳤다.
손가락 부상의 영향이 있었지만 안우진이 던지는 빠른 공의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SSG의 타선을 압도했다. 6회까지 정확히 100구를 던졌던 안우진은 6이닝 2피안타 3볼넷 1사구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 그야말로 투혼의 100구를 던졌다.
지쳤던 키움의 불펜, SSG의 반격 시도
안우진의 부상 투혼 속에 SSG의 타선은 안우진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안우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SSG의 타선은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7회말 반격에서는 잠수함 투수인 양현을 공략하지는 못했지만 안우진의 공에 제대로 배트를 대지 못했다면 양현의 공에는 범타라도 맞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키움은 마무리투수였던 김재웅을 8회말에 올렸다. 홍원기 감독은 포스트 시즌 초반에는 김재웅을 마무리투수로 계속 기용하다가 한국 시리즈 중반 언젠가부터 세이브 상황이 아닌 승부처에서 김재웅을 기용하고 있었다.
8회말 최지훈의 땅볼 타구는 키움의 유격수 신준우가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경기 분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최정은 포스트 시즌에만 150구를 넘게 던져 지쳐 있었던 김재웅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작렬하며 추격을 시작했다(4-2).
이미 지쳐 있던 김재웅은 세이브 상황인 9회 마운드에 올라가지 않았다. 김재웅에 이어 키움은 필승조인 최원태를 9회말 마운드에 올렸다. 그런데 여기서 선두 타자 박성한이 볼넷으로 출루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9회말에 다소 묘했던 스트라이크 판정?
여기서 선두 타자 박성한의 타석에서의 공들을 보면 최원태가 5구 째에 박성한의 몸쪽으로 낮게 깔리는 공을 던졌다. 여기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아닌 볼 판정이 나왔는데, 끝내 박성한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다만 5차전 내내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일관적으로 높게 형성된 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음 타자인 최주환의 타석에서는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최주환의 스윙과 관련하여 눈으로 보기에 다소 애매한 판정이 있었다. 주심이 최초 파울로 판정하자 키움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여러 차례 비디오를 다시 돌려 봤지만, 측면 각도에서 최주환의 배트에 의하여 공의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비디오 판독 센터의 영상에서는 정면 각도에서도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결국 비디오 판독 제한 시간 안에 판정을 번복하지 못하면서 파울 원심이 유지됐다.
이후 최주환은 끈질기게 공을 커트하다가 안타를 기록하며 무사 1,3루 상황을 만들었다. 동점 주자까지 출루하자 SSG는 1루에 대주자를 기용했고, 최경모 타석에는 베테랑 김강민을 대타로 내면서 승부를 걸었다.
또 다른 가을 남자? 소름 돋는 김강민의 끝내기 홈런
201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경기 후반 동점 홈런을 날렸던 김강민은 이번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도 승부를 한 차례 연장으로 몰고 간 적이 있었다. 1982년 생으로 만 40세의 베테랑 김강민은 항상 경기 후반 대타로 오는 기회를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
키움은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 그리고 한국 시리즈 5경기까지 도합 14경기를 치르면서 불펜이 갈수록 지쳐가고 있었다. 최원태는 김강민을 상대로 0볼 2스트라이크로 앞서 갔으나, 3구 째 던졌던 슬라이더가 높게 걸리면서 실투가 됐다.
그리고 베테랑 김강민은 이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김강민이 잡아당긴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끝내기 쓰리런 홈런이 됐다(4-5).
김강민은 이미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만 40세 1개월 19일로 포스트 시즌 최고령 홈런 신기록을 경신했던 적이 있었다(종전 기록 최동수 40세 1개월 17일). 그런데 5차전에서 김강민 스스로 이 기록을 40세 1개월 25일로 다시 경신했다.
이 홈런은 한국 시리즈 역사상 4번째로 기록된 끝내기 홈런(1994 1차전 김선진, 2002 6차전 마해영, 2009 7차전 나지완, 2022 5차전 김강민)이었다. 이 4번의 끝내기 홈런들 중 2점 이상의 홈런은 김강민이 최초였다. 또한 대타로 들어선 타석에서 날린 끝내기 홈런도 김강민이 최초였다. 뒤지던 상황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승을 거둔 것도 이번 홈런이 최초다.
포스트 시즌 전체의 끝내기 홈런 역사로 봤을 때는 1996년 플레이 오프 1차전의 박철우(쌍방울 레이더스) 이후 26년 만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당시 쌍방울의 감독이었던 김성근은 박철우를 대타로 냈고, 이 끝내기 홈런을 포함하여 1996년의 플레이 오프는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다.
김강민은 22년 프로 선수 생활 동안 그 전까지 끝내기 홈런을 날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한국 시리즈에서의 대타 끝내기 홈런을 통해 KBO리그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 것이다. 김강민의 이 홈런으로 안우진의 100구 투혼은 물거품이 되었고, 김광현도 패전을 면할 수 있었다.
20대와 30대에 우승을 경험한 김강민, 40대에도 이룰까
김강민은 2001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에 지명된 이래 구단 인수 이후 SSG 시절까지 22년 동안 한 팀에서만 뛰었다. 와이번스-랜더스로 이어지는 팀의 우승을 모두 경험했으며, 20대(2007, 2008, 2010)와 30대(2018)에 골고루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 40대의 나이에 또 한 번의 우승 이력을 추가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김강민은 6차전에서도 대타로 대기할 가능성이 높지만, 1차전과 5차전에서 보여줬듯이 자신에게 기회가 올 때 이를 놓치지 않는 관록을 지니고 있다.
6차전에서 SSG는 2차전 승리투수가 되었던 외국인 투수 폰트가 5일 휴식 후 마운드에 오른다. 키움 역시 타일러 애플러가 5일 휴식 후 마운드에 오르는데, 2차전에서 큰 이변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6차전이 2차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승부는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만일 8일 6차전에서 키움이 다시 승리를 거두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게 될 경우 9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7차전이 열리게 된다. 이 날은 두 팀 모두 미출전 명단에 등록할 선수들을 빼고 모두 대기할 각오까지 되어 있다.
히어로즈는 2014년 한국 시리즈 5차전에서도 삼성 라이온즈에게 끝내기 역전 2루타를 허용하면서 패했던 적이 있었다(당시 타자 최형우). 8년 전과 거의 비슷한 상황으로 3승 고지에 먼저 오르는 데 실패했던 히어로즈는 앤디 밴 해켄이 2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4경기를 모두 패하며 6차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단 분위기는 SSG 쪽이 훨씬 유리하다. 무엇보다 키움이 포스트 시즌 14경기를 치르는 동안 주축 선수들이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김재웅과 최원태 등 주요 필승조들이 거듭되는 등판에 지쳤고, 결국 5차전에서도 김재웅과 최원태가 각각 홈런을 허용하며 역전패를 당했다.
7일 경기를 직관했던 SSG의 구단주인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은 계약 기간 2년 동안 팀의 성적을 크게 끌어 올린 김원형 감독에게 재계약을 약속했다. 세부 사항은 한국 시리즈가 끝나고 조율하겠지만, 우선 재계약 보장을 통하여 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구단주의 힘까지 얻은 SSG가 남은 1승을 추가하며 팀 이름을 바꾼 뒤 첫 통합 우승을 이뤄낼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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