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흑자도산 공포' 과도한 그림자…유동성 회복 '고군분투'·내년 실적 '부진'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국내 증권업계에 '흑자 도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과도한 공포라는 시각이 짙다. 증권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지표 기준으로 흑자도산의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다만 내년 실적은 올해보다 감소해 부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8일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증권사별 조정유동성비율(채무보증 포함 유동성비율)이 대부분 100%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일하게 100%를 하회했던 다올투자증권도 3분기 중 10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는 곧 현재 보유한 유동자산만으로도 유동부채뿐만 아니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 중단까지도 소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에서 긴급하게 자금 경색 해소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이론적으로는 증권사 자체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흑자 도산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으로 판단한다"면서 "증권사는 현재 보유한 유동자산만으로도 유동부채뿐만 아니라 ABCP 차환 중단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증권사 NCR 비율 양호…'공포 잠식' 과도증권가에 흑자 도산의 그림자가 짙어진 것은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의 부실화 가능성이 가장 큰 요인이다. 3분기부터 은행권이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중단, 이에 따라 브릿지론에서 본PF로의 전환이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부동산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더불어 레고랜드 ABCP 부도를 시작으로 업계 전반의 ABCP 차환이 중단되면서 흑자 도산 우려까지 제기됐다. ABCP 차환이 중단되면 발행사가 이를 인수해야 하는데, 그만한 유동성이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해서다.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증권사들이 부동산과 채권 등 보유 자산을 내다 팔고 단기차입 한도도 늘리는 등 고군분투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공포는 확산했다.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현재 대다수 증권사가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가면서 판매관리비 등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부서 통폐합, 인원 감축, 비정규직 전환 추진 등의 구조조정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투자협회가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의견을 모아 금융당국에 순자본비율(NCR)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NCR은 영업용순자본에서 총위험액을 뺀 금액을 필요유지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기준치인 100%를 밑돌 경우 금융당국의 개입이 발생한다. NCR에 영향을 미치는 총위험액에는 시장위험과 신용위험, 운용위험 등이 포함되는데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시장위험에 따른 총위험액 규모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 증권사가 지급 보증 계약을 한 상태에서는 NCR 위험량 산출 비중이 크지 않지만 증권사가 차환 실패로 ABCP를 떠안게 되면 위험량을 100%로 잡는다. 떠안는 ABCP가 많아질수록 위험액이 증가해 NCR이 급격히 낮아진다.
NCR이 100%를 하회하게 되면 증권사 유동성 문제가 본격화할 수 있다. 증권사는 매달 정기적으로 NCR을 금융감독원에 보고하고 NCR이 100%를 밑돌 경우 금융감독원은 즉각 부실자산 처분 등 경영개선 권고한다. 50% 미만이면 합병, 영업 양도 등 경영개선 요구·명령 등 시정조치를 내리는데, 이 경우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겨 흑자 도산이 가능해진다.
아직까진 증권사 NCR 비율은 양호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기준 증권사 평균 NCR은 707.9%로 집계됐다. 2분기 기준 NH투자증권 2132%, 미래에셋증권 1995.4%, 한국투자증권 1844.86%, KB증권 1326.34% 수준이며, 중소형 증권사는 이보다 낮다. 다올투자증권과 한양증권의 NCR은 각각 455.7%, 442.6%다.
ABCP 차환 중단이 흑자 도산으로 이어지려면 다른 유동성 급감 이벤트도 동시에 발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2020년 3월 주가연계증권(ELS)의 주요 기초자산인 주요국 시장지수가 하루에 10% 이상 급락하며 증권사의 자체 헤지 포지션에서 대규모 마진콜과 함께 유동성이 급감하는 동시에 ABCP 차환이 중단되며 양쪽에서 유동성 이슈가 발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도산하는 증권사는 없었다. ELS를 대량으로 판매한 대형사들은 모회사나 정부로부터 단기차입금을 받았고 중소형사는 ELS 자체를 판매하지 않아서다. 단기자금시장 조달은 증권업의 전체 조달 중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다.
다만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해외 자회사 등 증권 외 연결 자산이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은 존재한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탈도 익스포저 전체가 부실화된다고 볼 수는 없어도 증권보다 더 위험한 포지션을 확장해온 것은 사실이고, 펀드나 투자조합, 해외 자회사의 형태로 인식하는 연결 자산은 외부에 공개되는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지난 수년간 어떤 기초자산을 근거로 평가 이익이 발생했는지 알기 어려워서다. 정 연구원은 "대형 증권사들은 이런 연결 자산이 자산이나 이익 규모, 더 나아가 자본비율에까지 지대하게 기여하고 있는데, 특히 연결 자산 규모가 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금융지주는 개별 기준 NCR 비율이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연결 NCR 비율이 높아 감독 기준을 통과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곧 연결 자산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증권 자체적인 역량으로 이를 감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PF 중단·증시 거래대금 감소 등 증권사 내년 실적 타격은 불가피증권사는 올해보다 내년에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적 감소가 불가피해서다. 신규 PF 중단에 이어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CP 금리 급등과 ABCP 차환 발행 둔화로 IB 수수료 수익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3분기 실적을 발표한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메리츠증권은 이미 분기 IB 수수료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전 분기 대비 약 20~30% 감소했다. 내년에는 신규 PF 중단이 연중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증권사의 연간 IB 부문 실적은 올해보다 부진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집합투자증권, 외화증권(기타항목에 포함) 등으로 나타나는 자기자본투자항목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 부문에서의 부진과 손실 인식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부동산 PF에 대해서만 우려를 제기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동산 자기자본투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브로커리지는 거래대금과 신용공여 잔고 추가 감소로 올해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거래대금은 기준금리 인상 시작으로 강세장이 종료된 이후 지속해서 감소 중이며, 긴축종료를 넘어 완화가 시작될 때까지는 추세 반등이 어려울 전망이다. 신용공여 잔고는 지수와 동행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지수가 회귀했음에도 신용은 당시보다 규모가 크고 당시보다 금리도 훨씬 높기 때문에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브로커리지에서의 유의미한 반등은 통화정책 완화에 따른 유동성 확대가 재개된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판단한다.
한편 증권업계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신용 위험과 유동성 위험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투자심리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위험을 확대하고 있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 시장은 과도한 우려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일 뿐 증권업 자체의 펀더멘털이 훼손되지는 않았다"고 우려를 경계했다. 금투협 역시 증권사들의 재정건전성은 튼튼하지만, ABCP가 유통이 전혀 되지 않아 유동성 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부동산 PF로 떠안는 금액이 과도하게 위험 값으로 차감되는 측면이 있어 NCR 규제를 당분간 완화해달라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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