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의 길'은 막혔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합니다

한정환 2022. 11. 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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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월산 천년고찰 기림사... 단풍 트레킹 코스 일부는 태풍 힌남로 피해 복구중

[한정환 기자]

 경주 단풍 명소로 유명한 추령재 모차골 추원마을 초입 모습
ⓒ 한정환
 
붉은 가을색으로 짙게 물든 천년고도 경주. 경주의 가을은 지금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서남북 산으로 둘러싸인 경주는 마치 병풍을 길게 펼쳐 놓은 듯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경주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 기림사를 자주 찾는다. 기림사를 찾는 목적은 산사 특유의 고즈넉함도 있지만, 기림사 주변의 붉게 물든 단풍과 국화꽃 축제 그리고 기림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걷기 위해서이다.

기림사 호암추담과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소나무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천년고찰 기림사.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기림사는 다른 여느 사찰과는 달리, 입구에서부터 2가지의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있는 곳이다.
 
 제11호 태풍 힌남로 피해를 입은 경주 기림사 호암천 단풍 모습
ⓒ 한정환
   
하나는 일주문을 통과하기 전 호암천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핀 단풍이다. 함월산 기림 8경 중 중 하나인 호암추담(虎巖秋潭)이다. 가을 단풍철에만 느낄 수 있는 기림사 최고의 힐링 명소이다.
호암천 계곡물에 비친 단풍나무 반영이 불야성을 이루던 곳인데, 11호 태풍 힌남로는 피해 갈 수 없었다. 태풍으로 토사가 흘러내려 호암천을 메꾸어 버렸다. 응급조치는 하였지만 계곡물이 말라 바라보는 풍경이 예전만은 못하다.
  
 경주 기림사 입구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소나무 모습(큰 소나무식당 내에 있음)
ⓒ 한정환
 
또 하나는 주차장 옆 큰 소나무식당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이다. 건물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푸른 소나무에 시선을 빼앗겼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처음부터 베어내지 않고, 지붕에 구멍을 뚫어 특이하게 지었다. 그래서인지 기림사하면 큰 소나무식당이 항상 머리에 떠오른다.
오색 단풍과 국화의 화려한 조합
 

일주문 입구부터 기림사는 가을색이 완연하다. 특별하게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없다. 일주문 주위에 빨강, 노랑, 초록 등 오색의 화려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풍 숲 때문이다. 나무가 자라 우거지면서 자연스레 단풍 숲을 만들었다.
 
 경주 기림사 일주문 입구 단풍 숲 모습
ⓒ 한정환
   
고즈넉한 느낌의 기림사는 사계절 걷기 좋은 곳이다.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더 그렇다. 그래서인지 단풍 숲을 따라 걷는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그리 길지 않은 숲길이지만, 이곳저곳을 돌아가며 걷다 보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갈 만큼 아름답다.
천왕문이 보이는 바로 왼쪽 언덕 위로 조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매월당 김시습 영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선생은 단종 3년(1455)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사의 뜻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매년 음력 2월 중정(中丁)에 이곳에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선생이 은거하였던 용장사에 있었으나 훼철되어 고종 15년(1878)에 이곳으로 옮겼다.
  
 가을꽃 향연 국화 축제가 열리는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앞 국화 모습
ⓒ 한정환
 
천왕문을 지나니, 보물 제833호로 지정된 기림사 대적광전과 약사전, 진남루, 응진전, 기림사 3층석탑이 위치하고 있다. 가람 배치가 'ㅁ'자 형태로 흥미롭다. 긴 담장을 경계로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는데, 계단을 오르면 기림사에서 가장 큰 법당인 삼천불전과 성보박물관,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등이 있다.
삼천불전 등 일부를 제외하고 기림사 대부분의 법당은 단청을 하지 않아, 건물마다 고색창연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가을 국화가 사찰 곳곳에 피어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가을 국화는 이른 봄부터 물을 주고, 정성들여 손질하며 가꾸어 온 꽃이다. 사찰 곳곳에 스님들의 꽃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가을꽃 향연 국화 축제가 열리는 경주 기림사 삼천불전 앞 국화 조형물 모습
ⓒ 한정환
   
기림사 곳곳에는 만개한 국화꽃이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황홀한 광경을 연출한다. 국화꽃 향기가 온 도량에 가득하여, 참배객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우게 만든다. 그윽한 꽃향기에 세상사 모든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을 것처럼 행복한 순간이다. 국화도 그냥 심어놓은 국화가 아니다. 분재 형태로 조형물을 아름답게 만들어 참배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가을 국화 앞에서, 방문객 모두가 인생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조용한 사찰 경내에서 좀 왁자지껄 떠들고, 웃고, 시끄럽게 단체 사진 찍는 것까지 국화꽃 조형물 앞에서는 용인이 된다. 국화뿐만 아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분재형 소나무 앞에서도 춤을 추듯 서로 멋진 포즈를 자랑한다.

함월산 또 하나의 비경, 용연폭포
 

기림사 경내를 둘러본 후 명부전 옆에 있는 길을 따라 후문으로 빠져나가면, 신문왕 호국행차길로 알려진 일명 '왕의 길'이 펼쳐진다. 경주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로 알려진 '왕의 길'은 기림사에서 모차골 입구 마을까지 이어지는 편도 약 4.5km의 길이다. 반대편에서 출발해도 된다.
 
 제11호 태풍 힌남로 피해를 입은 경주 용연폭포
ⓒ 한정환
   
신문왕 호국행차길의 코스 자체는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이다. 어렵지 않고, 가볍게 트레킹 하기 좋다. 기림사 후문에서 출발해 15분여 걷다 보면 숨어있는 비경 용연폭포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9월 발생한 11호 태풍 힌남로가 남부지방 경주를 정면으로 관통하면서, 함월산 '왕의 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 완전 복구가 되지 않아 탐방객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 아무도 접근을 할 수가 없다. 가을 단풍과 폭포 비경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탐방객들이 아쉬워하며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제11호 태풍 힌남로 피해를 입은 경주 용연폭포 현장 모습
ⓒ 한정환
   
피해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여, 국립공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현장에 접근해 보았다. 입구부터 수십 년 된 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었고, 탐방길이 끊겨 보이지 않는다. 태풍이 휩쓸고 간 폭포 현장은 더 비참한 모습이다.

폭포 비경을 보기 위해 설치한 데크 탐방로가 파괴되어 있고, 토사가 흘러내려 3m 깊이의 폭포 웅덩이를 메꾸어 버렸다. 경주국립공원 관계자는 '신문왕 호국행차길은 워낙 피해가 심한 지역이라, 설계와 복구공사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 개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말발굽 모양의 절벽이 폭포를 감추듯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숨어있는 비경으로 알려진 용연폭포.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단편영화 '청출어람'의 배경으로 경주 '왕의 길' 탐방로에 있는 용연폭포가 등장하기도 했다.
 
 경주 신문왕 호국행차길 트레킹 코스 초입에 있는 단풍 숲 모습
ⓒ 한정환
   
왕의 길 트레킹 코스 비경에는 용연폭포만 있는 게 아니다. 트레킹 코스 내내 눈앞에 전개되는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된다. 가을철에는 단풍 숲을 거닐며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힐링의 시간을 가지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깊은 산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색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여기만 한 곳도 없다. 한번 오면 또 찾게 되는 마력과 같은 경주 '왕의 길' 트레킹 코스. 무릉도원 같은 아름다운 현장 모습은 내년 가을 단풍철로 예약해야겠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찾아가는 길
 

- 주 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호암리 419번지)
- 주차료 : 승용차 1,000원, 승합차 2,000원, 대형차 3,000원
- 입장료 : 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2,000원, 어린이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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