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태숙의 ‘맥베스’, 끝나지 않는 권력욕의 비극
경기도극단의 ‘맥베스’는 원로연출가 한태숙이 연출한 작품다웠다. 경기도극단 예술감독인 한태숙은 그동안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비극 등 고전에서 강렬한 시청각 이미지가 돋보이면서도 현대적인 연출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번 ‘맥베스’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어두운 심리에 초점을 맞춰 현대적이면서도 장중한 연출을 선보이고 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나중에 쓰인 작품으로 분량이 가장 짧다. 주인공이 권력욕으로 악행을 저지르다 파멸하는 결말은 ‘햄릿’ ‘오텔로’ ‘리어왕’ 등 나머지 비극과 큰 차이가 있다. 비록 악인이 주인공이지만 권력욕이야말로 인간사에서 반복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맥베스’의 생명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태숙은 ‘맥베스’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바로 ‘맥베스’를 재구성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가 한태숙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1998년 초연된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남편이 왕을 살해하도록 부추긴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맥베스 부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이 작품은 새로운 표현양식을 보여줬다는 찬사와 함께 그동안 여러 차례 재공연됐다. 그래서 한태숙의 이번 ‘맥베스’는 공연 전부터 연극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다만 한태숙이 직접 각색한 ‘레이디 맥베스’와 달리 경기도극단 ‘맥베스’는 극작가 김민정이 각색을 맡았다.
경기도극단의 ‘맥베스’는 중세 스코틀랜드 배경의 원작을 현대로 가져왔다. 원작과 비교해 다른 설정이 여럿 보인다. 우선 극 초반 세 마녀가 있는 숲에서 맥베스를 비롯한 군인들이 집단으로 약에 취한 것이 눈에 띈다. 죄악의 기억을 지우는 약초를 가진 세 마녀는 운명을 예언하는 사악한 존재라기보다는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으로 해석된다.
타이틀롤인 맥베스 역은 원작보다 훨씬 잔인하게 그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극 후반부에 맥베스가 아내 앞에서 자신의 반대파 맥더프의 아들을 죽이는 장면이다. 원작에선 자객을 보내 죽이지만 이번 작품에선 눈앞에서 죽임으로써 맥베스의 악행을 강조하고 있다. 맥베스 외에 던컨왕, 맬컴 왕자 등 극 중 인물들도 원작과 달리 모두 부패한 인물들로 그려졌다. 결말조차 맥더프가 반란군을 이끌고 맥베스를 물리친 뒤 맬컴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던 원작에서 한발 더 나갔다. 맬컴 왕자가 맥더프를 죽인 뒤 밴코우의 아들 플리언스에게 다시 살해당하면서 막을 내리는데, 인간의 권력욕으로 폭력이 계속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태숙표 ‘맥베스’의 주제는 긴장감 있는 미니멀한 무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붉은색의 가파른 계단은 양심을 버리고 위(권좌)로 올라가려는 맥베스 부부의 욕망이 폭발하는 곳이다. 그리고 전작 ‘이아고와 오셀로’의 검정 개, ‘리처드 3세’의 거미처럼 이번 작품에선 주인공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캐릭터인 붉은 형체가 등장한다. 이와 함께 관을 연상시키는 상자들이 마녀의 등장 장면이나 마지막 전쟁 장면에서 사용돼 욕망의 덧없음과 인간의 유한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관객들은 한태숙이 만들어낸 핏빛 무대에서 인간의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맥베스 역을 소화한 배우 전박찬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전박찬은 그동안 연극 ‘에쿠우스’ ‘맨 끝줄 소년’ ‘이방인’ 등에서 주로 소년 아니면 젊은 청년을 연기해 왔다. 아무래도 체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전박찬이 맥베스 역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다소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흘러갈수록 폭주하는 맥베스의 어리석음을 자신만의 색깔로 드러내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외에 레이디 맥베스 역에 성여진, 덩컨 역에 배우 한범희, 밴쿠오 역에 윤재웅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경기도극단 단원들과 호흡을 맞췄다.
경기도극단의 ‘맥베스’는 13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서 계속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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