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네 잘못이 아니야

송세영 2022. 11. 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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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봄방학을 마치고 등교한 첫날이었다. 어떤 하루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3월 2일이었으니 꽤 쌀쌀했을 것이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가는 거리는 100m도 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친구와 함께 후문을 지나 2층 교실까지 올라왔을 텐데 기억이 없다. 3학년이 된 첫날이었지만, 반 배정을 받지 않아 2학년 교실로 갔고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없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등교하면 늘 교실 앞쪽 책상에 앉아 있던 담임의 부재는 특이했다.

선생님이 없는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안내방송이 나왔는지 차임벨이 울렸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오전 9시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조회를 하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왔다. 1층과 2층에 1·2학년 교실, 3층엔 더 높은 학년의 교실이 있었다. 한 학급의 학생 수가 70명이 넘었으니 1000명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셈이었다.

복도가 아이들로 미어터질 것 같았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가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느린 동작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3층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2층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중앙계단에서 병목을 이뤘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윗부분에 갇힌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힘에 떠밀렸다. 내 의지로 걷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간다는 느낌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아래를 볼 수도 없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일, 계단을 꽉 채운 아이들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기억은 없다. 계단 아래쪽에서 비명이 들렸는지, 너무 소란스러워 묻혀버렸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날 2학년 여학생이 밀려 넘어지면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처음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인지 이튿날인지 교탁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의 슬픈 표정, 같은 반 친구들이 울던 모습, 질서를 안 지켰다고 꾸중 듣던 장면 같은 것만 단편적으로 기억난다. 그토록 가까이서 죽음을 접한 건 처음이었다. 죽음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고개를 숙인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때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이후로도 한참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은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불쑥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어떤 장면은 더 선명해지고 또 어떤 장면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사건 전후의 기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흐릿해졌다. 기억과 망각, 퇴색이 반복되면서 실제 있었던 일이 맞는지, 꿈을 꾸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 공상을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 많은 곳에선 늘 불편하고 불안했는데 직접 겪지 않은 일,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이라면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옛날 신문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30년도 더 지나서였다. 신문에 보도될 정도의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거나 나와 무관한 시간대에 벌어진 일일 수 있다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중앙일간지 2곳에서 기사를 찾았다. ‘개학 첫날 두 국민학교서 참사/ 계단 굴러 1명 압사·10명 부상’ ‘새학기 첫날 국민교생/ 계단서 굴러 12명 부상/ 부산에선 1명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숨진 학생의 이름과 사고 전후의 정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지역일간지는 며칠 뒤 교장이 직위해제됐다는 속보까지 전했다. 그날 그 사건은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희뿌연 안개가 걷힌 듯한 느낌이었다. 더 이상 그날의 기억을 회피하거나 망각하려 애쓰지 않게 됐다. 나 자신도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안감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을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어떤 감정인지 스스로 잘 몰랐고 표현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날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안아서 토닥거려주고 싶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가서는 안 되는 곳에 간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태원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이들에게도,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누구도 그때 그곳에서 그런 비극이 벌어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고, 당신들이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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