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반도 '심판의날 항공기' 떴다…"北에 응징 능력 보인 것"

김상진 2022. 11. 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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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이 핵전쟁용 공중지휘통제기인 E-6B ‘머큐리’를 최근 한반도에 전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 해군 오하이오급 전략 핵추진 잠수함도 한반도 주변에 배치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해군의 핵전쟁용 공중지휘통제기 E-6B '머큐리'가 지난 6일과 7일 한반도 인근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016년 8월 3일 E-6B의 시험 비행 모습. 사진 미 해군

7일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미 해군 E-6B 1대가 한ㆍ미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훈련 기간 동안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식별됐다. 이뿐 아니라 훈련을 마친 다음 날인 6일과 7일에도 이례적으로 핵미사일 운용에 필요한 군용기가 들어온 것으로 포착됐다.

소식통은 "E-6B의 항적이 처음 나타난 것은 훈련 이틀째인 지난 1일부터"라며 "전날엔 일본 혼슈 지역에서 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6B는 지상의 핵미사일 통제센터가 공격을 당해 무력화되더라도 항공기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기종이다. 핵전쟁 상황에 빗대 ‘심판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 해군의 핵전쟁용 공중지휘통제기 E-6B '머큐리'의 별칭은 핵전쟁을 뜻하는 '심판의날 항공기'이다. 사진 미 해군

한 소식통은 “E-6는 해군 소속이지만, 미 해·공군의 핵전력과의 교신을 위해 띄우는 통제기”라면서 “한반도 주변에 전략핵 및 전술핵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핵잠수함이 배치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핵무기뿐 아니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최대 150여발 탑재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선 북한 전역이 사정권에 든다.


“경고 수준 아닌 응징 능력”


미국은 지난 1월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인 네바다함(SSBN-733)이 괌에 기항한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그런데 당시 E-6B도 함께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또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미 본토에서 태평양으로 ‘미니트맨 3’ ICBM을 시험발사할 당시 E-6B로 발사를 통제했다. 당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이뤄진 발사여서 중국에 대한 경고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미 공군은 “동맹을 안심시키기 위한 정기적인 활동의 일환”이라고만 밝혔다.

한ㆍ미 양국 국방장관은 지난 3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 수준으로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E-6B 활동 역시 이와 관련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지난 1월 15일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전략 핵추진 잠수함 네바다함(SSBN 733)이 괌 기지에 정박한 사실을 미군이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사진 미 해군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잇따른 북한의 도발에 미국이 경고 수준이 아닌 응징 능력을 투사하고 있다”며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로 나가기 부담스러운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6B뿐 아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미 공군 RC-135V ‘리벳 조인트’ 정찰기도 지난 5일에 이어 7일 한반도 주변에서 감시 활동을 벌였다. 리벳 조인트는 전자정보(ELINT)와 통신정보(COMINT)를 바탕으로 핵ㆍ미사일 관련 움직임을 추적ㆍ탐지하는 정찰기다.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합참 “울산 앞바다 쏜 거 없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2일 울산 앞바다에 순항미사일 2발을 쐈다고 7일 발표했다. 북한은 또 지난 3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높은 고도에서 핵을 터뜨리는 전자기파(EMP) 공격 시험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주장까지 펼쳤다.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ICBM을 이용해 미국의 반격 능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군 당국은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즉각 반박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발표 내용이 매우 위협적”이라면서도 “북한이 내부 선전을 위해 관련 내용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적시했을 수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북한은 이날 아침 합동참모본부 격인 인민군 총참모부 명의로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한 군사작전 진행”이라며 최근 도발 상황을 정리해 발표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7일 한·미의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맞대응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군사작전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북한이 지난 2일 울산 동쪽 약 80km 공해상에 2발을 발사했다며 공개한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 뉴스1

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일 함경북도 모처에서 울산 동쪽 약 80㎞ 공해 상에 ‘전략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비행거리가 590.5㎞였다며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미사일을 쏘는 장면과 구체적인 좌표(위도 35° 29′51.6″, 경도 130° 19′39.6″)까지 공개했다. 중공업 밀집지인 울산의 앞바다는 어선은 물론 자동차 등을 실은 화물선과 유조선 등으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이날 낮 공군 전투기들의 공대지 미사일 대응 사격을 빌미로 내세웠다. 이날 아침 북한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속초 동쪽 약 57㎞ 해상에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한때 울릉도에 공습경보를 내릴 만큼 미사일 비행 방향도 공격적이었다.

군은 일종의 ‘비례 대응’에 나섰다. 북한이 도발한 지 1시간 20여분 뒤 F-15KㆍKF-16 전투기가 출격해 NLL 북쪽 공해 상에 정밀 타격이 가능한 슬램(SLAM)-ER 등 공대지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공군 F-15K 전투기가 2일 동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 이북을 향해 슬램-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북한이 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응해 사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합동참모본부

북한은 7일 발표에서 이 같은 NLL 도발에 대해선 함구한 채, 순항미사일 발사를 “보복 타격”이라고 주장했다. 단, 발사 시각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종섭 국방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질의에 “북한의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면서도 “우리 군의 감시정찰자산을 확인ㆍ분석한 결과를 보면 북한 발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했다.


‘화성-15형’ 개량형 사진 꺼내


북한의 발표 중 지난 3일 ICBM 발사 관련 기술도 주목된다. 북한은 ICBM에 대한 언급 없이 “적의 작전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전투부의 동작 믿음성 검증을 위한 중요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핵 EMP 공격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화성-15형’(최대 사거리 1만3000㎞) 개량형으로 보이는 사진을 공개했다.

앞서 군 당국은 북한이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ICBM을 발사했으나 2단 추진체 분리 직후 비정상 비행을 하며 실패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7일 한·미의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맞대응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군사작전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왼쪽 위가 북한이 지난 3일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장면. '화성-15형'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뉴스1

화성-15형은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워싱턴ㆍ뉴욕 등 미 동부까지 타격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시뮬레이션 결과 미 본토 500㎞ 상공에서 핵 EMP를 터트릴 경우 미 전역의 전자기기와 통신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 발표에 이 같은 메시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군 당국의 평가는 다르다. 군 소식통은 “애초 의도와 상관없이 ICBM이라면 미사일 궤도대로 비행했어야 하는 데 실제론 비정상적인 비행이 포착됐다”며 “북한이 화성-17형 발사 실패를 덮기 위해 실제 발사 장면이 아닌 다른 사진을 꺼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발표는 북한 내부용으로 보인다”며 “공중전력이 열세이지만 전술핵 능력 덕분에 억제력이 훨씬 높아지고 공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짚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7일 한·미의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맞대응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군사작전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확산탄(산포탄전투부) 시험발사 장면. 뉴스1

북한은 또 ‘산포탄전투부’와 ‘지하침투전투부’를 장착한 전술탄도미사일을 지난 2일과 5일 발사했다고도 밝혔다. 산포탄전투부는 '확산탄'을 의미하는 것으로, 폭탄이 지상에 닿기 전 수백 개의 자탄(子彈)으로 분리돼 넓은 범위를 공격한다. 지하침투전투부는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벙커버스터’에 해당한다.

군 소식통은 “유사시 정부와 군의 전쟁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주장이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위협을 축소해 분석해선 안 된다”며 “위협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이뤄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천궁-Ⅱ' 첫 실사격 취소


한편 공군은 오는 9일 실시하려던 천궁-Ⅱ 요격 미사일 실사격을 취소한다고 7일 밝혔다. 당초 공군은 지난 2일에 이어 9일 충남 보령 대천사격장에서 ‘유도탄 사격대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미사일 발사 과정에서 패트리엇(PAC-2)은 레이더 장비 오류로 2발 중 1발을 발사하지 못했고, 국산 중거리 유도무기인 천궁은 발사 이후 약 25㎞ 정도 비행하던 중 폭발했다. 현재 군 당국은 이 같은 발사 실패 원인에 대해서 분석 중이다.

공군은 오는 9일로 예정된 천궁-Ⅱ 요격미사일의 실전 배치 후 첫 실사격을 취소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전구탄도탄 대응훈련'에서 천궁-Ⅱ 발사대로 이동하는 천궁 포대 작전요원들. 사진 공군

지난해 전력화한 천궁-Ⅱ는 이번이 첫 실사격이었다. 천궁-Ⅱ는 ‘한국형 3축 체계’ 중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전력이다.

다만 공군은 이번 발사 취소와 관련해 “북한의 도발 상황과 관련해 대비태세 유지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공방어 전력 전개와 복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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