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미국 안보 공약이 못 미더운 까닭
2년 뒤 공화당 집권 시 장담 못 해
'전술핵 재배치' 주장 배경 살펴야
지난달 18일 관훈토론회에서는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필립 골드버그 미국대사가 여권과 대통령실 일각에서 나오는 전술핵 재배치론을 겨냥,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로 긴장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불꽃놀이처럼 미사일을 쏴대자 많은 여권 중진이 전술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유승민·조경태 등 전·현직 의원이 그들이다. 대통령실 안보라인에서도 전술핵 재배치와 핵공유 카드가 검토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마저 전술핵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한국과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며 재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렇듯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의 권부와 중진 정치인들이 진지하게 거론하는 방안을 동맹국 대사가 '무책임' '위험' 운운하며 깔아뭉갰다. 여간한 결례가 아니다. 미 국무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고위 당국자가 나서 "맥락과 다르게 전달됐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면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 주장처럼 무책임한 일인가. 이 논란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과 직결돼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무기 선제 사용과 핵확산을 극도로 기피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적이 먼저 쓰지 않는 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채택하려다 동맹국 반발로 포기한 적이 있다. 또 지난달 말 나온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핵확산 위협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큰 그림 속에선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누구든 공격해 오면 필요시 핵무기까지 동원해 미국이 응징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 전문가가 불안해한다. 확장억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확장억제를 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고 관련국들이 이를 '신뢰'해야 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인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의지는 왠지 미덥지 않다. 그간 미국 측이 무성의한 것처럼 처신해 온 탓이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만들어진 건 2016년. 하지만 지난 6년간 이 회의가 열린 건 지난달 모임을 포함해 딱 세 번뿐이다. 2년에 한 번꼴로 열린 셈이다. 그나마 한 참석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어떻게 한국을 지킬 것인가 물으면 '군사기밀이니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걱정 말고 믿으라'고만 한다"고. 그러니 확장억제의 실체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뢰하라는 얘기인가.
더 큰 걱정은 그나마 바이든 행정부는 확장억제에 진정성이 느껴지나 2년 후 정권이 바뀌면 제대로 작동할지 불안하다는 거다. 현재 미국에선 민주당 인기가 공화당에 뒤지는 형국이다.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난 3일 발표된 CNN 조사에서 '어느 당 후보를 찍겠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가 민주당, 51%는 공화당이라 답했다. 게다가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터라 2024년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가 유리할 듯하다.
한데 현재 가장 앞선 공화당 주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한다. 한반도에 폭격기와 같은 전략자산을 전개할 경우 그 비용을 한국 측에서 내라고 요구했던 인물이다. 2위는 30% 안팎의 지지율을 얻는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그의 한반도 정책이 알려진 건 없지만 '트럼프 2.0'이란 별명에 걸맞게 미국 우선주의를 펼 공산이 크다. 확장억제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와 여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핵 얘기가 안 나오게 하려면 확장억제의 실체와 유용성을 주지시켜야 함을 바이든 행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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