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북·중·러 3중 파고 가속…국익 지킬 통합형 전략 짜야

2022. 11. 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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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의 세계 정세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한반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세계정세가 시계 제로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최근 외교지 기고에서 지금이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고, 북한은 핵 사용 법제화 이후 전술핵무기 운용 훈련을 포함해 사상 유례없는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지난달 3연임으로 마오쩌둥 반열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재임 중 무력에 의한 조국 통일 실현 의지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상이한 역사적 배경 아래 전개되어 온 사안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상상하고 싶지 않던 일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동시다발 위협과 미국의 억제 전략

지난달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와 국방전략보고서(NDS)가 ‘통합’과 ‘억제’를 합친 ‘통합적 억제’(Integrated Deterrence) 전략을 새로이 천명한 것은 이러한 복합적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다. NSS는 “인·태 지역과 유럽 내 동맹 우방국들의 운명이 기술·무역·안보에 있어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밝혔다. NDS는 (중·북·러 등의) 위협이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도전”이므로 “동맹국 및 파트너와 다방면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연계성과 통합 대응을 강조했다.

「 미국 국방전략보고서 “우크라 전쟁, 북핵 등은 상호 연결된 도전”
북한은 중·러와 협력 관계 되살리며 핵실험 등 공세 전략 펴는 중
3연임 굳힌 시진핑은 대만 공격 가시화, 주한미군 역할 갈등 일듯
향후 10년이 고비…북핵에 집중하면서 다른 위기에도 대비해야

한반도평화워치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NSS 발표 때 동시 다발 위협을 강조하며 러시아에 “미국이 동맹·파트너와 함께 과감하게 대응할 것이란 점을 단호히 경고했다”고 밝힌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을 통한 현상 변경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우방국들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보여 준다. 대만 문제에도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 사령관도 지난 9월 세미나에서 “한·미 동맹이 북한 억제를 넘어서 중국과 러시아를 주시하는 쪽으로도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 ‘발다이 클럽’에서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지지를 재천명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원 여부를 북·러 군사 협력 재개와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기 위해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고 미국이 발표한 것은 상호 연계성이 고차방정식화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CNN 인터뷰에서 “만약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북한 역시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본 것이다.

북·중·러 연대로 북핵 위협 가중

북한의 핵 선제 사용 현실화를 억제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위기가 격화될 경우 외교안보 경제적 딜레마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2017년 한반도 위기보다 현 상황이 더 엄중한 이유다.

반면 북한 입장에서는 북·중, 북·러 및 북·중·러 전략적 협력 관계가 부활한 데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게 됨으로써 든든한 뒷배를 확보해 놓고 한·미 및 한·미·일 공조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7차 핵실험 등 공세적 전략을 대담하게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심화할수록, 북한은 핵 사용을 위협하면서 고강도의 계산된 도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미국의 역량이 분산되고 유엔의 추가 제재가 중·러 거부권으로 계속 무력화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푸틴의 전술핵 사용이나 대만 무력통일 불사는 북한에 핵 도발 허가장을 주는 셈이다.

냉전시대 이후 핵위기 최고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수년간 지금이 냉전 이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미국과 나토, 일본의 태도도 확연히 바뀌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처음으로 핵 아마겟돈 위험에 처해 있다”고 속내를 토로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파국적 결과를 맞게 될 것을 러시아 측에 경고했음을 밝혔다.

지난달 나토의 ‘스테드패스트 눈’ 연례 핵무기 운용 훈련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다. 최근 기시다 총리가 의회에서 핵 방공호 시설을 현실적인 대책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특히 올해 미국 핵태세 보고서와 국방전략보고서는 과거보다 진전된 요소를 담고 있다. 핵 선제 불사용 원칙 불채택, 보다 강력한 확장억제 제공, 이중 용도 전투기와 핵무기의 전진 배치, 핵 사용 시 김정은 정권의 종말 경고, 한·일·호주 등과의 확장억제 협의체 및 여타 기구를 통한 협의 강화, 한·미·일 3자 또는 호주 포함 4자 간 정보 공유 모색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 고위급 채널이 전면 가동되고 5년 만에 재개된 확장억제 전략협의체와 지난주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진전된 다양한 확장억제 방안을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대만해협 위기에 철저히 대비해야

시 주석 3연임을 계기로 대만 문제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바뀔 위험도 커졌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필립 데이비슨 전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시 주석의 4연임이 확정되는 2027년까지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음을 피력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전·현직 미군 고위 당국자들은 대만해협 위기 시 주한미군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동맹인 한국의 역할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전체가 한목소리로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8월 말 미 의회 조사국의 역내 미군 역할 확대 검토 보고서는 공론화의 신호탄이다.

2006년 초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된,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되 동북아 분쟁 불개입 입장도 존중한다는 상호 타협 문안은 별로 개의치 않는 인상이다. 양국 모두 대만 위기가 시한폭탄이 되기 전에 해석 문제로 이견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주한미군의 역할과 우리에 대한 기대에 사전 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갈등이 올 수 있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대만 문제 질문과 특히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CNN 인터뷰 당시 대만 지원 가능성 질문은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될 수 있는 함정이 깔린 질문이었다. 다행히 윤 대통령이 후속 질문까지도 슬기롭게 대응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분명히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것이다. 좁게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기준부터, 넓게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태평양에서의 공동 위협 해석 문제, 참여정부 당시 합의와 해석을 현 정부가 계승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남겨야 할 유산

3개 복합 위기가 언제 어떤 강도로 올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실존적 위협인 북핵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면서 여타 위기와 연계해서 올 경우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우리의 선택지에 대해서는 나올 수 있는 제안은 거의 다 나왔다. 장단점도 명확하다. 우선 필요하고 실행력 있는 확장억제 역량을 최대한 시급히 확충하되 여타 선택지도 배제하지 말고 신뢰 속에 계속 협의해 나가야 한다. 확장억제 틀 안에서도 여타 선택지와 큰 차이가 없는 세부 옵션이 꽤 있다. 위의 NPR과 NDS에 제시된 광의의 실질적 핵 공유 개념들을 우리 실정에 맞춰 적용하는 것이다.

지난주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어느 정도 이를 얻어 냈다.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역내 양자 동맹들을 연계 조정하고 정상급까지 핵 기획·공유 과정에 참여시키면 중층적 안전장치가 마련될 것이다. 미국의 호주에 대한 핵 추진 잠수함 기술 제공, 필요하면 단기간에 핵 국가로 전환될 수 있는 일본의 사례를 염두에 두고 정권 변화를 초월해 일관된 핵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태 지역과 유라시아 시나리오도 마련해 둬야 한다. 갈라파고스 섬이 아니라 지정학적 대척점 한가운데 선 우리로서는 진화하는 동맹에 충실하면서도 국익에 입각한 한국형 통합 대응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21년과 2022년 한·미 정상 공동성명의 해당 부분은 유용한 출발점이다.

미·중·러 지도자들은 모두 향후 10년이 결정적 시기라고 한다. 역대 여러 한국 정부는 위기의 시대에 평화안보를 위한 나름의 유산을 남겼다. 위기의 시대 10년의 반을 책임질 윤석열 정부도 역사에 남을 유산을 남기리라 믿는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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