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진달래꽃’ 100년을 보내며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2년, 스무 살의 청년 김소월(金素月)은 한 편의 시를 씁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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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월의 명시 나온 지 꼭 100년
다음달 낭송과 노래 공연 무대
명시의 고향엔 북한 핵시설이…
」
그는 이 시가 100년 동안 한국인에게 널리 애송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1922년 『개벽』 6월호에 ‘개여울’ ‘고적한 날’ ‘제비’ ‘장별리(將別離)’ ‘강촌’ 등과 함께 발표됐습니다. 그러다가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스승 김억(金億)의 출판비 지원으로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의 표제작으로 실려 있습니다. 김소월은 이 시집 한 권으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습니다. 열세 살 때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이 세운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입학해 안서(岸曙) 김억으로부터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고, 열여덟 살 때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해 문단에 데뷔한 소월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이 시를 혹시 몰랐을까요?
‘금빛과 은빛으로 무늬를 놓은/ 하늘의 수놓은 옷감이라든가/ 밤과 낮의 어스름한 저녁 때의/ 푸른 옷감 검은 옷감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 드리오리다만/ 내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하늘의 옷감’)
예이츠의 ‘꿈을 밟고 간다’와 소월의 ‘꽃을 밟고 간다’가 비록 닮긴 하였으나 소월의 정서는 한국인의 오랜 한(恨)의 정서에 맞닿아 있다고 할 것입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 마나는/ 선하면 아니올세라/ 설온 님 보내오나니/ 가시는 듯 도셔 오소서’(‘가시리’)
‘진달래꽃’에서 내가 싫어 떠나는 님의 발길에 꽃을 깔아드리고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이별의 정서는, 잡아두고 싶지만 심하면 아니 올듯하여 보내드리니 가시는 듯 다시 와달라는 고려가요 ‘가시리’의 정서에 이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어의 전통 운율인 7·5조의 리듬을 밟고 있습니다. 그래서 100년 동안 한국인들이 애송해 온 시가 되었겠지요. 소월이 예이츠의 시를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상관없이 ‘진달래꽃’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시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인 귀화 필기시험에 ‘진달래꽃’의 지은이가 누구냐는 문제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즉 김소월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민족시인이자 현대 한국 서정시의 원류인 소월은 아내 홍단실과의 사이에 4남 2녀를 얻고 193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뇌일혈로 서른두 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장녀 구생과 3남 정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에 남았습니다. 김구생은 한국전쟁 도중 요절했고, 김정호는 인민군으로 남한에 왔다가 포로가 된 뒤 대한민국 국군에 재입대하였습니다.
어느 날 미당 서정주 시인이 국회 정문에 나타났습니다. 미당은 국회 경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한솔에게 서정주가 왔다고 전하게.” 당시 국회의장은 한솔 이효상 시인이었습니다. 경비의 보고를 받은 한솔은 “잘 모셔라”고 지시합니다. 한솔을 만난 미당은 소월 선생의 아들이 남한에 있는데 생계가 어렵다며 취직을 시켜 달라고 당부합니다. 소월의 아들을 면담한 한솔은 당장 취업이 가능한 자리로 채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김정호 선생을 뵌 적이 있습니다. 남북 분단 후 북한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서울로 옮긴 소월의 모교 오산중학교에서 2005년에 열린, 시집 『진달래꽃』 간행 80주년 행사 때였습니다. 사회자가 “지금 이 자리에 김소월 시인의 아드님이 계십니다”라고 해서 참석자들이 깜짝 놀랐었지요. 단상에 오른 김정호 선생은 아버지에 대한 회고담과 함께 김소월 문학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이듬해인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는 12월 2일 재능시낭송대회 전국 결선에서 시 낭송과 노래로 구성된 ‘진달래꽃 100년을 보내며’가 공연됩니다. 이 공연에는 소월의 증손녀인 성악가 김상은씨도 참여해 증조부의 시를 노래합니다. 한국인의 영원한 애송시 ‘진달래꽃’의 무대인 영변에는 북한의 핵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명시의 고향에 평화를 위협하는 핵시설이 들어선 시대의 아이러니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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