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癌 진단·검진 줄이는 게 ‘현명한 의료생활’
국내 의료계에서 불필요한 진단이나 검사·치료를 줄이자는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취지로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최근 ‘과잉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 주제의 포럼을 열고 권고하지 않는 건강검진 항목 제시와 함께 관련 전문학회 의견을 수렴했다. 의학한림원은 ‘슬기로운 건강검진을 위한 권고문’ 개발을 추진 중이다.
포럼에선 가족력이 없고 무증상 성인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췌장암 검진과 기대여명 10년 이하 고령의 암검진은 권고하지 않는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폐암검진, 갑상샘암검진, 양전자방출컴퓨터단층촬영(PET-CT)을 이용한 암검진에 대해선 각 전문학회 반발에 부딪혀 향후 권고문 개발에 난항이 예상된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 교수는 증상 없는 건강한 성인에 대한 췌장암 검진의 위해성을 지적했다. 췌장암은 국내 10대암 중 발생률 8위(2019년 기준), 5년 생존율은 꼴찌(2015~19년 13.9%)의 암종이다. 이에 췌장암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많아 선별(스크리닝)검사가 과도하게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 차 교수는 “문헌고찰 결과 췌장암 선별검사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췌장암 선별검사를 통해 초래될 수 있는 위해 요인에 대한 문헌은 9개나 됐다”고 밝혔다. 미국 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는 무증상 성인의 췌장암 검진 및 스크리닝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국내 췌장암 진료지침에도 췌장CT는 방사선 노출이나 조영제 부작용, 비용 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 대상 선별검사로는 부적합하다고 제시했다. 췌장암 의심 환자에서만 CT검사를 강하게 권고한다. 2008년 소화기학회지에도 췌장암은 비교적 드물기 때문에 건강한 일반인 대상 건강검진은 비용 효과적이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차 교수는 “하지만 대학병원 6곳 등 국내 의료기관 7곳의 건강검진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모두 종양표지자 검사인 ‘CA19-9’ 수치와 복부 초음파 및 CT를 패키지 검진에 포함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CA19-9는 췌장암에 대한 민감도(암을 암으로 판정)와 특이도(암이 아닌 걸 아니라고 판정)가 각각 79%와 82%로 높은 편이 아니며 2㎝이하 조기 췌장암 발견율도 50%에 불과하다. 또 한국인의 5~10%는 ‘루이스a-,b-’유형에 해당돼 위음성(가짜 음성)이 나올 확률이 높다. 특히 무증상 성인의 췌장암 양성 예측률은 약 0.5%로 상당히 낮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가족력과 증상이 없는 성인은 췌장암을 조기에 찾아내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의사나 병원은 이런 대상에게 췌장암 선별검사를 추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대한췌장담도학회는 췌장암 위험이 없는 이들의 CA19-9, 아밀라아제(효소) 수치 검사 등을 권고하지 않는데 동의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학회를 대표한 서울대병원 류지곤 교수는 “CA19-9검사를 200명이 했을 때 1명이 나올까말까인데, 199명의 검진 패키지에 이를 넣어서 진단받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젊은층도 다 하는데, 췌장암 검사는 50세 이상이면서 위험도 있는 사람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무분별하게 검사가 이뤄지고 있어 3차병원에 수치가 다소 높을 뿐 문제가 없는 환자들이 몰리고 받지 않아도 되는 CT검사 등이 과잉으로 진행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런 불필요한 검사로 인해 정작 췌장암 의심 환자나 당장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검사가 지연되고 정상 환자들은 의료비를 낭비하게 된다. 류 교수는 “CA19-9 외에도 췌장염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아밀라아제 수치 검사도 실시한다. 건겅검진센터들이 이런 의료비 낭비 요인이 많은 검진항목을 제외하고 정부도 이를 교정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대 최윤정 교수는 기대여명 10년 이하의 고령자까지 암검진을 받는 건강검진의 행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최 교수는 “2020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성 80.5세, 여성 86.5세다. 현재 국가암검진에는 공식적으로 검진 종료 연령이 나와있지 않지만 2015년 발표된 일부 암검진 권고개정안(위암 유방암 대장암 폐암)에는 검진 종료 나이가 제시돼 있다”면서 “75세 이상의 암검진은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클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기준 암검진 대상자 중 75세 이상이 266만명이고 이 중 101만명(38%)이 실제 검진을 받았으며 85세 이상도 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 교수는 “일반적으로 70대 중반이 넘는 경우 암 진행 속도가 더딘 데다 암 발견 후 치료로 사망에 이르는 것까지를 고려했을 때 1년 또는 2년마다 암검진을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유병률, 사망률 감소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 “암 조기 발견을 통한 사망률 감소는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등 치료를 감내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뒷받침됐을 때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USPSTF는 유방암의 경우 75세 이상에서 유방촬영술(맘모그램)을 통한 선별검사의 근거가 불충분하고 대장암은 76세 이상에선 대상자의 건강상태와 이전 검진결과를 고려해 개별적으로 선별검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최 교수는 “물론 개인의 선택권이 있기에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고령에선 검진 후 합병증이나 부작용 등 오히려 위해가 있을 수 있음을 대상자에게 알려주고 그 정보에 기반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유방암학회 진료권고위원장인 한애리 원주세브란스병원 교수 역시 이런 권고안에 원칙적 찬성 의견을 냈다. 한 교수는 “학회는 2015년부터 진료 지침을 개정해 70세 이상은 환자가 원하는 경우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가유방암검진은 40세 이상 여성 대상 규정 외에 연령 제한이 없다”면서 “이는 필요하지 않아도 누구나 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측도 “학회 대장암검진재개정위원회에서 80세까지로 정했는데, 국가암검진에서는 50세 이상으로만 돼 있고 검진 상한 나이가 명시돼 있지 않다”면서 종료 연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의학한림원은 또 폐암 저위험군의 저선량 흉부CT검사(LDCT)의 불필요성도 제안했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국제암대학원장은 “현재 55~74세 30갑년 이상 흡연력을 가진 고위험군 대상 폐암검진이 이뤄지고 있는데, 일부에선 고위험군 아닌 일반인이 개인검진을 통해 LDCT를 통해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한폐암학회 장윤수 이사는 “폐암의 3분의 1이 비흡연자이며 최근 비흡연 여성의 유병률이 증가하는 실정”이라며 “55~74세 골초 외 대상을 검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갑상샘암 선별을 위해 증상 없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갑상샘초음파검사, 무증상 성인에서 암을 조기에 찾아낼 목적으로 하는 PET-CT도 권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핵의학회, 갑상선학회 등 유관학회는 해당 권고안이 ‘불필요한’ ‘위험한’ 검진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적정 시기에 필요한 검진을 못받는 환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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