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서울~부산 20분 주파 진공열차, 아직은 실험실 수준
‘비행기보다 빠른 기차’.
차세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 주목받는 하이퍼루프(Hyperloop)에 붙은 별칭이다. 하이퍼루프는 기술적으론 상당히 복잡하지만, 단순화하면 진공상태인 튜브 안에서 살짝 띄워진 밀폐형 캡슐(차량)이 음속(시속 1280㎞)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시스템이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2013년 하이퍼루프 관련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가 제시한 하이퍼루프는 미국 서해안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기 위한 취지였다. 28인승의 밀폐형 캡슐이 튜브 안에서 뜬 채로 시속 1280㎞로 주행하는 개념으로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을 30분 만에 주파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 구간의 길이는 약 613㎞로 자동차로 달리면 5시간 30분, 비행기로도 1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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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기술연이 개발한 시험장치
2년 전 시속 1019㎞ 주행 성공
테스트베드 추진은 예타에 막혀
안전성·사업성·경제성도 물음표
」
113년 전 보스턴~뉴욕 12분 주파 구상
일론 머스크는 하이퍼루프를 제안하면서 이상적인 교통수단의 조건도 함께 꼽았다. 다른 교통수단보다 ▶더 안전하고 ▶더 빠르고 ▶비용이 더 저렴하고 ▶더 편리하며 ▶날씨와 상관없이 운행할 수 있고 ▶지진에 대한 내구성을 지녀야 한다 등이었다. 그는 해당 구간의 하이퍼루프 건설비로 60억~100억달러(8조4000억~14조원)를 예상했다. 이는 당시 미국 정부가 추진한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고속철도’ 건설비(1000억 달러)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 하이퍼루프처럼 공기압이 낮은, 거의 진공상태인 튜브 환경에서 차량의 공기저항을 줄여 초고속 주행이 가능토록 하는 교통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1799년 영국의 공학자인 조지 메드허스트가 진공열차(Vactrain)의 개념을 가장 먼저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압축공기를 이용, 강철관을 통해 물건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시스템을 생각해낸 것이다.
또 미국의 유명한 로켓과학자인 로버트 고다드는 1909년 보스턴~뉴욕을 12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기차를 제시했다. 비록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디어 안에는 부상열차, 진공튜브 같은 하이퍼루프의 개념들이 포함돼 있다는 평가다.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진공 터널 안에서 대형 터빈을 돌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진공열차(Vacuum Train) 아이디어도 나왔다. 2000년대 초에는 튜브에 매달려서 이동하는 현수식 자기 부상 하이퍼루프인 ‘ET3’가 설계되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하이퍼루프를 제안하면서 “지금부터 7~10년 정도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뤄진 실험들은 목표 속도인 시속 1200㎞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2017년 8월 버진 하이퍼루프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실제 크기의 테스트 열차로 450m 구간을 시속 309㎞로 달리는 데 성공했고, 2020년 11월에는 버진그룹의 직원 2명이 탑승하는 첫 유인 시험에서 시속 172㎞를 기록한 정도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기연)이 대표적으로, 2020년에는 독자 개발한 축소형 하이퍼튜브 시험장치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0.001기압에서 시속 1019㎞를 주행하는 데 성공했다. 축소형 장치이긴 하지만 튜브 속을 거의 진공상태로 만들고, 이 속에서 목표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철기연은 하이퍼루프 대신 ‘하이퍼튜브(Hypertube)’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국토교통부도 이러한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 8월 전북 새만금을 ‘하이퍼튜브 테스트베드’ 건설지로 선정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신청했다. 2024년부터 2032년까지 9600억원을 들여 12㎞의 시험선을 구축하고, 최고 시속 800㎞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사업은 예타 대상에서 탈락했다. 총사업비 9600억원 가운데 연구개발보다는 기반시설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위한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 모양새다. 국토부는 사업계획을 보완해 다시 예타를 신청한다는 방침이지만 성사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과감한 투자에 앞서 여러 요소 점검을”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하이퍼루프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밀폐된 터널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대처가 쉽지 않아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밀폐된 튜브와 캡슐을 이용하는 탓에 탑승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송 인원이 일반 열차보다 크게 적어 사업성과 경제성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국토가 좁은 나라에선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시속 400㎞대의 고속열차를 개발하고도 아직 실용화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기연의 이창영 하이퍼튜브 연구실장은 “승객 수요에 따라 캡슐을 여러 량으로 늘릴 수 있다”며 “튜브 내 사고도 미리 비상대피장소와 시설을 구축해놓으면 얼마든지 대응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저렴하면서도 훨씬 빠른 중장거리 교통수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상당하다. 다만 과감한 투자에 앞서 우리 실정에 걸맞은지, 해외진출 가능성은 있는지 등 여러 요소를 다시 한번 짚어보는 절차도 필요할 듯싶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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