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맥경화’는 신뢰의 위기, 확산 차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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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보험·카드·캐피털 2금융권 자금 비상
둔촌주공·흥국생명처럼 사안별 대응 중요
제2금융권과 기업의 돈줄이 마르는 ‘돈맥경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에 이어 흥국생명과 DB생명 등 보험사들이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 일정을 미루겠다고 밝히면서 채권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에 많이 투자한 증권사, 고금리에 저축형 상품이 빠져나가 자본 확충에 여념이 없는 보험사, 수신 기능이 없어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 주로 제2금융권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5년 전에 5억 달러 규모로 발행한 흥국생명 증권의 만기는 30년이지만 5년이 지나면 돈을 일찍 갚을 권리(콜옵션)를 흥국생명이 갖고 있다. 대부분 5년 뒤에 옵션을 행사해 왔기에 시장에서는 사실상 만기 5년짜리 채권으로 여겼는데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특히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은 외화표시채여서 비슷한 한국물 가격을 떨어뜨리는 등 대외신인도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2025년 9월 조기상환 만기인 동양생명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지난달 말 83.4달러에서 지난 4일 52.4달러로 떨어졌다. 해외시장에서 한국물 수요가 줄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SNS에 ‘살얼음판 같은 자금시장 경색, 땜질 처방으론 안 됩니다’라는 글을 올려 흥국생명 사태를 언급했다. 그는 “당장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채권 규모가 35조원에 달한다”며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한은은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는데 정부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관성 없는 단기 대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론으론 맞는 말 같지만 각론에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지금은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해 거래를 못 하는 신뢰의 위기다. 당국이 사안별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면 풀 수 있는 문제가 꽤 있다. 지난달 7000억원 차환에 성공한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이 대표적이다.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막힌 곳은 하나하나 뚫어줘야 한다. 이런 것까지 땜질 처방이라고 비판해선 안 된다.
‘제2의 레고랜드’ 소리를 들었던 흥국생명 사태도 다행히 정부와 발행사인 흥국생명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찾았다. 흥국생명이 당초 예정대로 9일 조기상환을 하기로 했다. 상환자금 대부분은 흥국생명이 자체 자금으로 조달하고 시중은행과 보험사 등이 흥국생명이 발행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당국은 금융 불안 요인 하나하나 긴장감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각론에서 실패하면 번듯한 총론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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