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장에서도 초고가 주택 연일 신고가
수도권 지하철 수인분당선 서울숲역 5번 출구로 나와 뒤를 돌아보면 한눈에 봐도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다채로운 디자인은 물론 높이와 규모 등을 보면 위압감이 느껴진다. 바로 아크로서울포레스트다. 불과 2개동, 280가구에 불과한 소규모지만 전혀 작은 단지로 보이지 않는다. 2020년 11월 준공 후 이 단지는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의 뒤를 이어 성수동을 대표하는 고급 아파트로 자리 잡았다. 최근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전용 264㎡ 복층형 펜트하우스가 신고가로 거래됐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30일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전용 264㎡ 47층 복층형 펜트하우스는 130억원에 거래됐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돌아선 가운데 나온 거래라 더욱 주목받는다.
해당 면적 펜트하우스는 단지 내 4가구밖에 없다. 이번 계약은 당연히 첫 거래다. 2017년 분양 가격은 60억5000만원. 5년이 지난 지금, 2배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됐다. 이 물건은 올해 4월 145억원에 거래된 PH129(더펜트하우스청담) 전용 273㎡, 135억원에 거래된 파르크한남 전용 268㎡에 이어 올해 최고가 3위에 올랐다.
성수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복층 펜트하우스 매물은 워낙 귀해 매물 자체로 잘 나오지를 않는다”며 “워낙 초고가 주택이지만 매물로 나올 일이 잘 없어 나오자마자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팔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거래 한파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초고가 아파트는 거래만 이뤄지면 대부분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경기 위축 등 여러 영향으로 주택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초고가 주택, 초신고가 행진
▷50억원 이상 주택 불황 없다?
신고가 행진이 이어진 아파트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뿐 아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6일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용 140㎡ 역시 73억원에 팔렸다. 재건축 단지인 이곳은 지난해 10월 65억원에 최고가를 찍은 후 올해 2월 66억원, 5월 71억원, 9월 3일 71억5000만원 등 꾸준히 신고가를 찍었다. 같은 단지 전용 107㎡ 역시 지난 6월 59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1973년 지어진 이 단지는 현재 이주를 완료하고 철거를 앞두고 있다. 2017년 사업시행인가 이후 3년 이상 착공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3년 이상 소유자 매물은 착공 전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사업 완료 직전인 단지로 매물 자체가 많지 않고 입지가 탁월하기 때문에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건축 단지 외에도 50억원 이상 신고가 거래는 조금씩 이어지는 모습이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 전용 244㎡도 지난 8월 말, 1년 전 최고가(56억5000만원)보다 7억5000만원 오른 64억원에 거래됐다. 64층에 위치한 이 물건은 해당 타입이 22가구(전체 480가구)밖에 되지 않을 만큼 희소성이 있다. 현재 나온 매물은 68억~70억원 사이로 호가가 형성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장학파르크한남 전용 268㎡는 올해 4월 135억원에 거래됐다. 2020년 6월 입주한 단지로 고급 주택단지가 몰린 유엔빌리지 초입에 있다. 전용 281~325㎡짜리 17가구로 이뤄졌다. 해당 면적은 지금 150억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지난 5월에는 한남더힐 전용 240㎡가 110억원(3층)에 매매 계약을 맺었다. 한남더힐은 고급 빌라와 주택이 모여 있는 단지다. 대기업 총수나 주요 기업 CEO, 연예인이 다수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체 아파트 거래 중 초고가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높아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의 50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는 94건이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체 거래(9797건)의 0.96% 수준이다. 지난해 1~9월 50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 비중은 전체(3만6772건)의 0.37%(137건)에 그쳤다. 거래 건수는 줄었지만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아졌다. 구별로는 서초구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강남구(35건), 용산구(12건), 성동구(8건), 영등포구(1건)가 뒤를 이었다.
▶초고가 아파트 신고가 이유는
▷희소가치 & 경기 침체와 무관
최근 시장 환경 속에서 초고가 아파트 신고가가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1차적으로는 ‘희소가치’다. 어차피 상위 1%를 위한 주택은 공급량이 한정됐다.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업계 한 관계자는 “초고가 아파트를 움직이는 것은 그야말로 특수 수요로 해석해야 한다”며 “희소성과 상징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자산가들이 초고가 주택을 찾기 때문에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가령 최근 몇 년 새 코인 등으로 큰돈을 벌었거나 사업에 성공한 소위 ‘영리치’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초고가 아파트를 비싼 값에 구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50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는 금리 인상이나 대출 규제, 경기 침체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분석도 있다. 대출 규제가 새롭게 개편됐지만 현시점 기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LTV 0%) 금지된다. 집값이 15억원 이상이면 어차피 현금으로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금리 인상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성수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여전히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고 희소가치 있는 자산을 찾는다”며 “초고가 아파트가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초고가 아파트 신고가 행진이 앞으로도 계속될까. 일단 앞서 살펴본 타워팰리스3차나 장학파르크한남 대형 면적의 경우, 다른 단지와 달리 호가는 전혀 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한남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100억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아파트 소유자의 경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원하는 가격 아래로 팔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일반 집값처럼 가파르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한편에서는 가격 조정이 곧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도 제기된다.
우선 집값 전망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서울 매매전망지수를 보면 올 10월 58.5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3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지수는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밑돌수록 하락 전망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긴 ‘KB선도아파트50’지수 역시 하락 추세다. 10월 이 지수는 97.58을 나타냈다. 전월(99.32)에 비해 1.75% 하락했다. 2009년 1월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이 지수는 전국 아파트 단지 중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를 선정해 시가총액 변동률을 보여준다. 래미안퍼스티지, 도곡렉슬 등 주요 단지가 모두 포함됐다.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면서 강남권 ‘똘똘한 한 채’도 더 이상 안전자산이 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자산가들도 투자보다 관망세로 돌아서는 움직임을 보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3호 (2022.11.09~2022.11.1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