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만난 웃고 있는 염소 머리

전병호 2022. 11.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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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카자흐스탄 방문기 2] 질뇨늬 바자르에서 카레이스키를 만나다

[전병호 기자]

카자흐스탄의 전 수도 알마티
 
▲ 카자흐스탄 알마티 전경 카자흐스탄 알마티: 인구 2백만의 카자흐스탄 최대 경제도시다
ⓒ 전병호
알마티(Almaty /Алма-Ата)는 1994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다. 알마티는 카자흐어로 직역하면 '사과의 할아버지'란 뜻인데 그런 의미로 사람들은 알마티를 '사과의 도시'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곳을 사과의 기원지로 여긴다고 하며 알마티 부근에서는 사과가 많이 난다고 한다.

수도를 이전하였음에도 인구 2백만의 도시 알마티는 여전히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도시다. 산유국인 카자흐스탄은 오일머니 덕택에 인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보다 GDP가 높다. 특히 알마티는 금융, 보험 관련 기업들이 많은 카자흐스탄의 경제 중심 도시로 도시 1인당 GDP가 16,000달러에 이를만큼 부유한 도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던 키르기스스탄에서 며칠을 보내다 알마티에 들어서 으리으리한 빌딩 숲을 보니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 도시에 돌아와 버린 느낌이라 어리둥절했다. 먼 나라에 와 있다는 생각보다 서울의 한 곳에 와 있는 듯 대도시 냄새만 물씬 풍겼다.
 
▲ 침블락 정상 침블락(Shymbulak): 3,200m 높이의 침블락 정상 근처까지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다.
ⓒ 전병호
 
시장조사 겸 방문한 2박 3일간의 일정이었기에 우리는 알마티 시내 몇 곳과 침블락(Shymbulak)을 가보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해발 3,200m 침블락은 거의 정상까지 연결된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었다. 한 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갈아타야 했는데 중간중간 내려 고도에 따른 경치를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었다.

몇 번을 옮겨 타며 올라가 보니 딴 세상이 나왔다. 발아래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고 고개를 드니 설산이 눈앞에 있었다. 한 여름에 반팔을 입고 바라보는 설산의 느낌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호흡이 가쁘고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드는 약간의 고산증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웃고 있는 염소 대가리
 
▲ 질뇨늬 바자르(녹색시장 Zelenyy Bazar) 질뇨늬 바자르(녹색시장 Zelenyy Bazar)시장에서 갑자기 마주친 웃고 있는 염소 대가리
ⓒ 전병호
 
걷다가 갑자기 털 없는 민 낯의 웃고 있는 염소 대가리와 마주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알마티 재래시장 질뇨늬 바자르(녹색시장 Zelenyy Bazar)라는 시장에서 직접 본 경험담이다. 넓은 재래시장을 뱅뱅 돌다가 정육 코너인 듯한 곳을 지나는데 코너 끝에서 갑자기 털 벗겨진 웃고 있는 염소 다섯 마리 얼굴을 만났다.
털 벗겨진 염소가 웃는 얼굴로 대가리만 진열되어 있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시장에서 웃는 돼지 머리는 몇 번 보았지만 처음 보는 웃고 있는 염소 대가리는 약간의 문화적 충격이 왔다. 사는 곳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여행의 맛은 바로 이런 낯선 장면을 만날 때라 싶어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 질뇨늬 바자르(녹색시장 Zelenyy Bazar) 질뇨늬 바자르 시장은 녹색시장이라는 뜻으로 알마티 야채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 전병호
 
전통시장 질뇨늬 바자르는 녹색시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알마티 야채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이름 때문인지 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특히 여인들은 이 시장 이름과 같은 녹색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언젠가 카자흐스탄의 카레이스키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녹색 치마를 한 카레이스키 아줌마를 본 기억이 있어 시장통을 찾아봤더니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

우리 동네 사는 사람 같은 아줌마들이 김치와 여러 가지 나물을 팔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카레이스키 후손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당근채 같은 것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파는데 현지식 당근 김치로 이곳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같은 동포로서 카레이스키들에게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었는데 장사하기 바쁜 것 같았다. 카레이스키에 대해 더 공부하고 난 후 다시 방문해 꼭 만나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하고 사진만 몇 장 찍고 왔다.  
 
▲ 질뇨늬 바자르 시장의 카레이스키 아줌마 질뇨늬 바자르 시장의 카레이스키 아줌마: 김치와 나물류를 팔고 있었다.
ⓒ 전병호
 
▲ 카레이스키 아줌마들이 팔고 있는 당근 김치 김치도 현지에서 인기가 많으며 특히 이 당근 김치는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 전병호
 
카자흐스탄 마지막 날 우리는 알마티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콕주베(콕토베 Kok tobe) 전망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활발한 여장부 같은 두 친구 뻬루자와 문예란을 만났다. 이들은 카자흐스탄 침켄트에서 왔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 콕주베 케이블카를 기다리는데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아뇽 하세요" 하면서 말을 걸었다. 이미 한국인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자를 데리고 알마티에 여행을 왔다고 하는데 성격이 밝고 얼마나 화통했는지 금방 친한 사람처럼 우리를 대했다. 가이드와 러시아말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연신 우리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며 호감을 표시한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뻬루자 아줌마 친구는 한국에 가고 싶다며 가이드의 연락처를 땄다. 성격도 호탕하고 아주 적극적이었다. 반면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서 분위기를 살피는 친구 아줌마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짧은 영어지만 어차피 영어가 안 통하니 손짓 발짓으로 이름을 물으니 "문예란"으로 들린다. "문예란?' 다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 어떠랴. 비슷하게 불러 자기 부르는 줄 알면 그만이지. 또다시 손짓 발짓으로 나이를 물으니 손가락으로 5와 3을 표시한다. 헉! 차마 내 나이를 말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최강 동안이라는 거 이제 다 알지 않나? 나이가 뭐가 중요해 우린 친구니까. 언젠가 두 친구가 그리 오고 싶다던 한국에 꼭 올 수 있기를 빌었다.

그날을 기다리며….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독립국가 된 중앙아시아 국가들 그동안 시간이 멈춘 나라들처럼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내륙에 자립 잡은 중앙아시아 지역적 특징도 있었을 터이고 소련 해체 이후 갑자기 맞은 독립으로 정치경제적 어려움도 이유일 것이다. 이런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200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국제 무대에 얼굴을 내밀더니 이제는 경쟁적으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자국의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국 전 잠시 만났던 키르기스스탄 대사인 아이다 이스마일로바(Aida ISMAILOVA) 대사도 현재 자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관광산업에 대해 국가차원의 정책이 세워져 있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던 국내 여행업계도 그동안 잠자고 있던 중앙아시아 지역 여행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을 간직한 이곳 중앙아시아 지역 나라들도 여느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변해갈 것이다. 시간이 멈춘 도시는 머지않아 시간을 지배하는 도시로 변할 게 뻔하다.

키르기스스탄도 그렇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주변 나라들도 모두 그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슈케크도 마찬가지다. 그전에 다시 한번 비슈케크 그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바에서 멀리 눈 쌓인 톈산산맥을 바라보며 낮술 한 잔의 여유를 맛보고 싶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 여행자 낯선 나라 중앙아시아로 떠나자. 여행 없는 삶은 반쪽자리 인생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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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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