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실패' 빠진 北 작전일지, 사진 재탕에 '울산 타격' 날조까지
합참 "탐지 결과, 북한 주장 사실과 달라"
도발 명분 쌓으면서 '기만전술' 펼친 듯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압도적인 대남 군사작전을 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자별로 무기와 타격 목표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대외적으로 군사적 도발의 명분을 쌓으면서 내부적으로는 결속을 강화하고 군 기강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의 발표에는 과거 사용했던 미사일 발사 장면을 '재탕'하거나 "울산 앞바다로 보복사격을 가했다"는 등 날조된 주장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실패로 분류된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언급은 빼고 '화성-15형' 발사 장면을 대신 넣는 등 기만전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7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군 총참모부는 "엄중한 상황에 대처한 철저하고 견결한 대응 의지와 공화국 무력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뚜렷한 자신감을 시위하고 우리 장병들의 단호한 보복 의지에 필승의 신심을 더해주기 위하여 11월 2일부터 5일까지 대응 군사작전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北 "울산 앞바다로 보복사격"…합참 "탐지된 적 없다"
총참모부는 일자별 작전 내용과 타격 대상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남측의 공군기지 등을 노린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작전 1일차(2일)엔 "평안북도 지역 미사일 부대들로 적들의 공군기지 타격을 모의해 서해갑문 앞 무인도를 목표로 산포탄전투부와 지하침투전투부를 장착한 전술탄도미사일 4발을 발사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작전 1일차 설명에서 총참모부는 "적들이 남조선 '영해' 가까이에 우리 미사일이 낙탄됐다고 주장하며 공중대지상유도탄과 활공유도폭탄으로 우리측 공해상에 대응 사격하는 망동을 부렸다"며 "함경북도 지역에서 590.5㎞ 사거리로 남조선 지역 울산시 앞 80㎞ 부근 수역 공해상에 2발의 전략순항미사일로 보복타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우리 군은 지난 2일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공군 F-15K, KF-16의 정밀 공대지미사일 3발을 NLL 이북 공해상으로 사격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이 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3발 중 1발이 울릉도를 향한 탓에 울릉군 전역에 초유의 공습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발표에선 두 가지 모순이 포착된다. 총참모부는 남측의 대응에 대한 재반격으로 울산 앞바다를 향해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합참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한미 감시정찰 자산의 탐지 및 분석 결과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당시 우리 군에 포착된 순항미사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문제의 미사일이 남측 영해에 근접하게 떨어진 것을 두고 "적들의 주장"이라 표현한 건 자신들이 쏜 미사일이 NLL을 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군은 해당 수역에 해군 구조함을 투입해 6일 문제의 미사일로 추정되는 잔해물 1개를 수거했다. 이 물체는 현재 관계기관에서 정밀 분석하고 있다.
'실패한 ICBM' 쏙…다른 미사일 사진 넣고 EMP 주장
총참모부는 또 "작전 2일차(3일) 국방과학원의 요구에 따라 적의 작전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전투부의 동작믿음성 검증을 위한 중요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는 실패로 분류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ICBM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패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북한이 지난 3일 평양 순안 일대에서 발사한 ICBM은 최고 고도 약 1920㎞에 비행거리 760㎞, 최고 속도 마하 15(음속의 15배)로 탐지됐다. 발사 후 1단 추진체와 2단 추진체가 각각 성공적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이후 탄두부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한 탓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
군 당국은 당시 북한이 쏜 ICBM을 '화성-17형'으로 분석했지만, 북한은 이날 탄두가 변형된 '화성-15형'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미 올해 3월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 아래 화성-17형의 시험발사를 성공했다고 밝힌 상황에서 실패한 미사일의 사진을 공개하길 꺼린 것으로 보인다.
대신 북한은 전자기펄스(EMP)라는 위협으로 이를 포장했다. 총참모부의 주장에서 언급된 '작전지휘체계'란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C41) 체계를 말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일정 고도에서 폭발시키면 강력한 EMP가 발생하면서 지상 지휘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과거에도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직전에도 '수소탄' 탄두라고 주장하는 물체의 사진 3장을 공개하면서 "우리의 수소탄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위협한 바 있다.
'사진 재탕'에 군용기 수 부풀려…"北, 기만전술 편 듯"
이 밖에도 북한은 작전 3일차(4일)에 각종 전투기 500대를 띄웠다고 하는 등 다소 과장된 내용으로 자신들의 대응을 선전했다. 해당 날짜에 우리 군이 파악한 군용기 항적은 180여 개에 불과한 데다 전투기 1대가 이·착륙을 반복하면 여러 개의 항적을 남길 수 있다. 이는 한미 양국이 비질런트 스톰에 동원한 공중전력 240여 대의 2배가 넘는 전투기를 동원했다고 강조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보도가 전부 사실은 아니다"라는 말로, 북한의 부풀려진 주장에 선을 그었다. 북한이 기만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이날 북한군 총참모부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사진 중에는 지난 4월 중순께 보도된 '신형 전술유도무기'의 발사 장면이 재사용되기도 했다. 과거 사진을 조금 더 확대·편집하고 채도에 변화를 줬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명백히 같은 사진으로 평가된다.
특히 북한은 이 같은 내용을 노동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내부적인 선전선동을 병행했다. 그간 군사적 도발 내용을 외부적으로만 공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주목된다. 한미 양국의 군사력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면서, 외부의 위협에 잘 대응하는 것처럼 포장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군 기강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군은 그간 계속해서 과장되고 부풀려진 발표를 해왔다"며 "내부적으로 자신들의 대응을 포장하고 외부에는 한미에 밀리지 않는 전력을 갖췄다고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미 국제사회에서 자주 언급된 만큼 미국 중간선거를 노린 핵실험은 피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지속적인 도발과 핵실험은 언제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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