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

김성수 2022. 11. 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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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노크라시> 펴낸 전홍기혜 기자

[김성수 기자]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는 지난 2020년 미국대선 취재를 위해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취재를 하며 정치인을 비롯한 여러 취재원들을 만났고, 가족들과 일상을 보냈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팬데믹 상황을 겪었다.

그가 2020년 미국대선을 취재하며 보고, 듣고, 몸소 체험한 미국 민주주의의 균열된 모습을 책 <아노크라시>에 담았다. 또한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인, 나아가 동양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미국 민주주의와 미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다음은 지난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그와 이 책과 관련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표지
ⓒ 숨쉬는 책공장
 
- 독자들 중에 '아노크라시'라는 표현이 생소한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미국을 '아노크라시'라고 부르는 표현은 언제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인지?
"'아노크라시'는 '무정부(Anarchy)'와 달리 정부는 존재하지만 제대로 된 통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민주주의(democracy)와 독재(autocracy) 중간 정도의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이 책에서 바버라 월터 미국 UC샌디에이고 정치학과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 용어를 썼다.

이런 우려는 트럼프 집권기에 커지기 시작해 2020년 대선을 거치면서 본격화됐다. 트럼프는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 사기론'을 주장하기 시작해 2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굽히지 않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2021년 1월 6일 의회를 습격해 무장 난동을 벌였고, 그 결과 경찰관을 포함해 5명이 사망하고 1000명 가까이 다쳤다.

최근에는 트럼프 지지자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에 침입해 낸시의 남편 머리를 둔기로 공격하는 일도 발생했다. 오는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이 사건으로 워싱턴 정가는 다시 한번 공포에 휩싸였다. 트럼프 세력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공격하고 나서면서 과연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가고 있다."

11월 8일은 미국 중간선거 

- 미국에서 직접 살아보니 밖에서 보던 모습과 어떤 점들이 가장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나? 장점(우리가 아직도 배워야 할 점)과 단점(가장 큰 몇 가지 문제점)을 어떻게 평가하나?
"나의 제한된 경험과 학습 안에서 미국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한국과 비교해 장점과 단점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인종이 아무리 개인적 성취를 이룰지라도 미국 사회의 제도화된 인종적 위계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한국인인 나, 그리고 한국사회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인종적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언어, 문화, 생물학적으로 상대적으로 단일한 한국에서 '주류'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다름'에 대해 얼마나 포용적, 관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을까? 그런 점에서 미국은 여전히 많은 갈등, 대립, 한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지만 '다름'을 포용하고 합의까지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경험을 많이 축적해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다름'에 대한 합의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면 매우 이상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힘'에 의해 결정이 나고, 결국은 인종적 다수인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마련이다. 트럼프 집권기를 거쳐 미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취약해지면서 소수인종, 이민자들의 입지가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 미국에서 백인에게 인종차별의 희생자가 된 흑인이 왜 아시아인과 연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된다고 보나?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인종폭력은 이번 팬데믹 사태로 인해 불거진 아시안 증오범죄 이전에도 숱하게 일어났다. 1871년 LA '중국인 대학살',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강제 수용소 수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백인들 더 나아가 국가 권력이 가해자였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법, 제도를 통해 이미 시스템화 된 사회구조 문제다. 특히 미국에서 노예제에서 기인한 흑인들에 대한 살해, 착취, 탄압 등 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제대로 진상규명이 된 적이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털사 인종대학살' 10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100년 전 백인들의 공격으로 털사에서 300명 이상의 흑인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이 사건은 1997년 오클라호마주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조사를 시작할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도 못했다. 미국 남부지역에선 백인들이 흑인들을 사적으로 목매달아 죽이는 '린치'가 196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됐다. 이런 사회구조 문제는 보지 않고 일부 흑인들의 범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는 것은 왜곡된 인식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 한국 문재인 정부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어떻게, 왜 달랐다고 보는지? 미국은 왜 코로나19 대응에는 그렇게 취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나는 세 가지 요인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치 리더십의 문제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나서서 방역지침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트럼프는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숨기고 바이든과 대선 TV토론을 했다는 백악관 비서실장의 증언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면 사망자 숫자가 40% 줄었을 것이라고 의학 전문지 <랜싯>이 발표했다.

둘째, 국민인식의 차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미국사회에서 공동체 안전을 위해 개인이 불편이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많은 미국인들이 마스크 착용, 백신접종 등을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연대행위로 인식하기보다는 강제에 대한 굴복으로 인식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도 코로나19 피해가 큰 이유로 과도하게 상업화된 의료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약 3천만 명 정도로 매우 많다. 이들은 의료비가 워낙 비싸서 평소에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간다."

-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의 공화당'에서 '백인만을 위한 트럼프의 공화당'으로 변모한 이유는 어디에서 왔다고 보나?
"오늘날 공화당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인구통계학적으로는 백인 유권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으며 지역적으로 남부에서 우세하다.

공화당의 정체성 변화는 1960년대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반대하는 남부 백인들이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때문에 공화당으로 결합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골드워터는 강경 보수정책으로 당시 대선에서는 참패했지만 남부의 백인들을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돌려세우면서 공화당의 물줄기를 바꿨다.

여기에 1980년대 보수주의 기독교(특히 복음주의) 운동과 공화당이 결합하면서 이런 흐름은 더 강화됐다. 총기규제, 낙태, 성소수자 인권 등과 관련한 공화당의 입장은 복음주의 세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 미국인들 다수가 지금도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설마 2024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지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처음 등장했을 때, '골드워터의 사생아'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극우 이데올로기는 트럼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미국 보수세력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들이 특정 정치인 내지는 정치세력을 만나 극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정치인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특정 인종, 종교, 문화적 가치에 기반을 둔 이들이 트럼프를 정치적 대리인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트럼프가 없는 트럼피즘'도 얼마든지 작동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로선 2024년 대선에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다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트럼프가 재등장할 경우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민주당에 달려 있는데, 민주당도 현재 바이든을 대체할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극심한 불평등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 촉진"
 
▲ 전홍기혜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오마이뉴스》, 《참여연대》를 거쳐 현재 《프레시안》에서 정치, 사회, 국제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으며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 기자로 일한 덕분에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도상(2018년)을 받았고,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대한 심층보도 등으로 아동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18년 제96회 어린이날 유공자)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등이 있다.
ⓒ 전홍기혜
 
-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한국의 트럼프가 될 것으로 보나? 트럼프는 김정은과 정상회담도 했고 남북긴장을 완화시킨 반면 윤석열은 오히려 남북긴장을 점점 고조시킨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우려도 있는데?
"윤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 영국 <인디펜던트>에 '윤석열: 남한의 트럼프, 북한과 긴장을 악화시킬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언론은 정치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됐다, 포퓰리즘에 호소하는데 능숙하다, 반중국 언사를 자주 사용한다, 보수언론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등을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유사점으로 꼽았다. 윤 대통령이 '여성부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반페미니즘 정치인이라는 점도 트럼프와 유사성으로 지적된다.

대선후보 이전에 정치적 이력이 전무하고 취임 첫해에 불과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한국의 트럼프'로 귀결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대선 과정과 취임 후 보여준 그의 정치행태가 '편 가르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트럼프 정치에서 '증오'는 매우 중요하다. 선악의 이분법에 근거해 자신을 연민의 대상으로 연출하고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 지지자들의 분노를 선동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 한때 '자유민주주의 선구자'인 미국이 오늘날 이렇게 분열되고 양극화된 원인과 이유는 어디에서 왔다고 보나?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 클린턴, 오바마 등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과연 경제적 격차가 줄어들고 사회복지가 강화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에게 등을 돌린 대표적인 유권자들이 '러스트벨트'(쇠락한 중공업 밀집지역으로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의 백인노동자 계층이다.

원래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던 이들은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트럼프를 찍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초래한 극심한 불평등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등장을 촉진했다."

- 미국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낙관적 혹은 비관적? 그 이유는?
"낙관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지난 연말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의 미국 성인들 중 55%가 '미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된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실패했다'는 응답에 52%나 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적 불안이 심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은 과거와 같은 '슈퍼 파워'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세계의 평화와 안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크다.

게다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미 세계는 '신냉전', 더 나아가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의 대결이 이미 노정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나라라는 점에서 미국의 정치불안정이 우리사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국의 정치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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