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말과 침묵

2022. 11. 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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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힘이 있다.

황진이가 기나긴 동짓날 밤을 베어 이불 속에 넣어두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시를 읊었던 이유 역시, 그 말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밤을 길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말의 힘을 알고 있기에 더욱 말을 한다.

말이 가진 힘이 무언가를 해치거나 함부로 대하게 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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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말에는 힘이 있다. 예로부터 언어는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져 왔다. 황진이가 기나긴 동짓날 밤을 베어 이불 속에 넣어두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시를 읊었던 이유 역시, 그 말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밤을 길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흔해진 시대다. 우리는 이미지만큼이나 말의 포화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어려운 말을 굳이 꺼내오지 않더라도 무슨 말을 믿고 또 믿지 않을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지 오래됐다. 말은 늘 무언가를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은폐하기에 말의 포화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도시는 메시지로 이뤄져 있다. 이곳으로 오세요, 저쪽으로는 가지 마세요, 여기는 어디이며 저것은 무엇입니다, 등등 숱한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언제나 도시의 메시지를 내면화하며 살아간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안정을 찾는 것은 그곳에 메시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고도의 침묵이다.

말의 주술적인 속성을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기에 조심한다. 혹은 말의 힘을 알고 있기에 더욱 말을 한다. 진실을 밝히고 싶든, 무언가를 감추고 싶든 간에 말은 동원된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어려움 중 하나는 나의 언어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말을 잃는다. 말이 가진 힘이 무언가를 해치거나 함부로 대하게 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비극의 순간에 문학은 언제나 느리게 반응한다. 어떤 말이 발설되기까지 필요한 침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뱉어진 말들은 그만큼 빠르게 소멸한다. 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침묵은, 그러므로 말하기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애도의 순간, 묵념이 하나의 울음이기도 한 것처럼.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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