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그날,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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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A와 B에게 연락한 건 그날로부터 닷새 뒤였다.
A가 현장 브리핑을 챙기는 사이, B는 유족과 피해자 지인을 취재했다.
A는 이태원 현장에서 철수한 뒤 며칠간 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자신에게 '그래도 너는 지켜봐야지'라고 되뇌며 꾸역꾸역 일했던 여파가 뒤늦게 밀려온 것 같다고, A는 머뭇거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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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A와 B에게 연락한 건 그날로부터 닷새 뒤였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취재기자들에게 심리치료 지원을 한다는 부서 공지를 보고서 문득 현장에 갔던 이들의 안부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 마감을 며칠 앞두고 쓸거리를 구하려는 이기심이 먼저였던 것도 사실이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드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A는 그날 밤 이태원에 있었다. 거리두기 해제 뒤 첫 핼러윈 기간을 맞아 경찰 순찰에 동행취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몇 차례 순찰 행렬을 따라나섰지만 인파에 취재가 어려워 기사로 쓸 모습이 많지 않았다. 마지막 순서인 마약 단속마저 마땅한 게 없으면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예정 시간이 40여분 지나도록 단속은 없었다. 해밀톤호텔 맞은편 파출소에 앉아 기다리던 A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압사 위험이 있다는 웅성거림과 함께 경찰들이 뛰어나간 건 그때였다. 이미 일이 벌어진 다음이었다. 뒤늦게 쳐진 폴리스라인 너머 모습을 바라본 A는 멍하게 굳었다. 사고 뒤 아비규환인 골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을 향해 제발 집에 가라고, 이렇게 구경할수록 한 명씩 더 죽어 나간다며 소리 지르는 경찰. 이어 도착한 구급차 행렬과 모포에 덮여 나가는 시신들.
막내 연차인 B는 새벽 1시쯤 이태원에 도착했다. 그에겐 첫 참사 현장 취재였다. A가 현장 브리핑을 챙기는 사이, B는 유족과 피해자 지인을 취재했다. 무더기 죽음이 일어난 곳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골목에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비극과 축제가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기괴한 풍경이었다고 B는 말했다. 사건 현장을 향해 희희낙락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는 무리를 보며 그는 인간을 향한 믿음이 배신당하는 듯했다고 기억했다.
사고에도 불구하고 인파가 멈추지 않자 경찰은 새벽 2~3시쯤 인근 가게 영업을 중단시켰다. 술을 더 못 마셔 아쉽다는 행인들의 목소리, 왜 장사 못 하게 막느냐는 상인들의 불평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일단 집에 돌아간 B는 날이 밝은 뒤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여럿 남아 있었다. 그때껏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당시 느낀 환멸감 때문일까, B는 지금의 애도 분위기가 뜨악하다고 했다.
A는 이태원 현장에서 철수한 뒤 며칠간 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을 만났다. 취재하며 눈물을 쏟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뭐 하는 짓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생전 간호사를 꿈꾸던 딸의 말대로 장기를 기증하려 했지만 워낙 몸이 심하게 손상돼 병원으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어머니의 사연이 기사가 돼 신문에 실렸다.
그렇게 일을 계속하던 A는 결국 며칠을 쉬기로 했다. 계속되는 두통과 현기증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그럭저럭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던 현장의 장면이, 조금 여유가 생기자 반복돼 밀려왔다. 매일같이 보던 보도자료에 쓰인 글자가 뭐라고 하는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장에서 자신에게 ‘그래도 너는 지켜봐야지’라고 되뇌며 꾸역꾸역 일했던 여파가 뒤늦게 밀려온 것 같다고, A는 머뭇거리듯 말했다.
A와 B뿐 아니라 트라우마를 겪는 기자들의 이야기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본래 자신보다 남의 일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번 일은 한 인간으로서 지켜보기도, 돌이키기도 가혹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는 이번 일을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오랫동안 되새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죽은 이들을 성실하게 기억하는 만큼이나 스스로와 서로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어쩌면 가장 오래 공들여야 할 일이다.
조효석 사회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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