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또 반일, 국익에 도움될까?
반일의 정치적 노림수의 시작은 이승만정부였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실할 때로 부실해진 나라를 세우기 위한 전략에 골몰했다. 미국 사회를 잘 이해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과 ‘반일’이라는 카드로 미국을 자극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먼저 북진통일을 주장했고, 한·미동맹을 이끌어 안보를 튼실히 할 수 있었다.
다음은 먹고살기 위한 곳간을 채워야 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확인됐듯, 국제법적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속국이므로 2차 세계대전의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승만정부는 관계 개선을 대가로 순수 채권으로 22억 달러를 요구했다. 일본은 보험·국채 등 확정적 채권으로 2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승만정부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반일을 더욱 강화한다.
소련의 확장정책에 맞서야 했던 미국은 원만한 한·일 관계를 원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방어선 역할과 일본의 병참 역할이 필요했던 미국은 일본을 설득했다. 이승만에게 부담을 느낀 미국이 ‘에버 레디 오퍼레이션(ever ready operation)’이라는 제거 계획을 세웠다는 음모론이 남아 있는 이유다.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권위주의 청산을 위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창하며 정치 기득권의 반발을 잠재우기도 했다. 때론 민족주의적 대중주의도 개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난국을 방치한 책임을 그릇된 애국주의로 일거에 대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는 반일 구호를 앞세우며 총선 승리 등을 위해 한·일 관계를 이용했다. 스포츠 경기에 빗댄 ‘한일전’이라며 유권자들을 선동해 압승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반일로 세몰이하며 ‘죽창가’를 끄집어냈다. 국익 차원의 실용외교는 사라졌다.
국내 정치 환경을 일거에 잠식시키는 반일을 외치는 민족주의적 대중주의 속에서 발생한 갈등의 책임을 “분업 관계를 깬 것이 일본이죠”라며 일본으로 돌렸다. 안보를 위한 정보 공유는 중단됐고, 일본이 분업 관계를 깼다면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터 국산화에 힘썼다. 그사이에 미국 대만 일본의 반도체 협력이 강화되면서 대만의 TSMC, 미디어텍 등의 연대가 강화됐다. 유니클로가 오프라인 매장이 철수하면서 고용 창출 없이 온라인 매장으로 대박 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다시 반일이다. 여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야당 대표가 “한·미·일 합동훈련은 극단적 친일” 발언으로 사회를 갈라치기하고 있다. 노재팬 논쟁의 재등장이다. 4성 장군 출신 야당 의원은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면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유사시 그리고 평시에도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실시된 한·미·일 훈련에 대해선 “두 가지 토끼를 다 놓치는 꼴”이라며 “가장 큰 위협이 북핵인데 한·미·일 훈련을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더 반기를 들어 북 비핵화가 어렵게 된다”고 했다.
한·미·일 해상 훈련은 그 의원이 연합사 부사령관에 근무했던 기간에만 최소 6차례 실시됐다. 훈련 해역은 모두 동해상 공해가 포함된 한·일 해역이었다. 이번에 실시된 대잠훈련은 지난 정부 시절인 2017년 10월 23일 필리핀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된 단계별 훈련인 수색 구조 그리고 미사일 경보의 다음 단계다. 지난 정부도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될 때 굳건한 한·미동맹의 방어와 함께 병참기지로서의 일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식민 지배라는 소외의 역사를 경험한 국가의 국민은 일반적으로 피해의식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갖고 집권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택하는 정치인들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국민 전체가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비해 존중받지 못한다고 반복 자극하면서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장한다.
어느 사회나 정치적 목적은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은 보수나 진보나 헌법적 가치인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을 함께 좇는다. 보수의 대변자 공화당은 개인의 선택에, 진보의 대변자 민주당은 분배에 무게를 둔다. 공통의 가치를 추구한다. 당의 차이는 정책의 차이라 소통과 대화가 항상 열려 있다. 우리도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치를 공유하면서 정책적 차이로 접근하는 성숙한 정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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