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커피믹스·생존의지·동료·빛… ‘기적 생환’ 키워드

김재산 2022. 11. 7. 00: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21시간 ‘봉화의 기적’ 이렇게 가능했다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열흘째인 4일 오후 11시께 구조 당국은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생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생환한 고립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 소방청 제공


칠흑 같은 어둠 속 고립무원의 지하 190m 갱도에 갇혔다 221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경북 봉화 광산 매몰 광부들은 20년의 경험과 대응매뉴얼 등을 토대로 최초 매몰장소 인근에서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들은 괭이로 직접 암석을 파내 결과적으로 구조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매몰사고 이후 지난 4일 밤 극적 구조 당시까지 이들의 기적적인 생환이 가능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평소 숙지한 매뉴얼을 침착하게 실행한 것이 첫손에 꼽힌다.

이들은 사고 이후 갱도 고립에 대비 매뉴얼을 그대로 따랐다. 매뉴얼에는 ‘공기가 들어오는 쪽으로 대피하라’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대피하라’ ‘주위에 잡을 물건이 있으면 따라가 공간을 이용하라’는 것 등이다. 매몰됐던 작업반장 박정하(62)씨와 조원 박모(56)씨는 토사가 밀려들어 고립된 이후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갱도 내 평균 온도는 14도 정도였다. 장기간 있으면 저체온증이 올 수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이들은 대피 장소에서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서로 어깨를 맞대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닐로 천막을 만들었고, 바닥의 물이 몸에 닿지 않도록 패널을 깔았다.

평소 작업 때 챙겨갔던 커피믹스는 비상식량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고 당시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커피믹스 30개와 생수 10ℓ가 전부였다. 구조 광부 주치의 안동병원 방종효 과장(신장내과)은 6일 “두 분이 커피믹스 30봉지를 갖고 계셨는데 3일에 걸쳐 식사대용으로 드셨다고 한다”며 “그게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생수가 바닥난 뒤에는 암석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며 버텼다.

대피 장소가 여러 갱도와 연결된 면적 100㎡가량의 인터체인지 형태였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구조 당국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발견된 공간이 상당히 넓어 여러 갱도가 만나는 인터체인지 같았다”면서 “이들이 가만히 머문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력한 생존 의지는 무엇보다도 버티는 데 큰 힘이 됐다. 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갱도 내 폐쇄 지점을 괭이로 직접 10m가량을 파냈다. 이들이 파 내려간 폐쇄구역 반대편에서는 구조 당국이 쇼벨(굴삭기) 등으로 진입로를 확보하는 중이었다.

동료 광부들은 “두 사람이 막장 안에서도 살려고 끊임없이 움직였다고 한다”며 “바깥으로 빠져나오려고 안에서 갖은 연장으로 시도하고, 나름대로 보수를 하면서 버텼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져왔다. 대화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탈출 방법을 모색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작업반장 박씨는 구조 이후 “고립됐지만, 무엇이든 해보면 길은 있을 것이란 희망을 계속 가지고 갱도 안을 돌아다녔다”며 “둘이 똑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위로하고 의지할 수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민주 경일대 응급구조과 교수는 “고립 후 생환한 사람의 공통점은 삶에 대한 건강한 의지”라며 “건강이나 기질도 변수가 되지만 생환의 가장 큰 이유는 힘겨운 순간에도 살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을 제공했던 헤드랜턴도 생존에 도움이 됐다. 이들은 탈출구를 찾아 막힌 지점을 파 내려가면서도 전력을 아끼기 위해 서로 번갈아가며 헤드랜턴을 켰다.

반장 박씨는 “이마에 달린 안전등 배터리가 소진되는 게 제일 두려웠다”며 “구조되던 날, 우리 둘의 안전등이 모두 깜빡깜빡하며 동시에 소진 신호를 알렸다”고 끔찍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구조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당국은 구조작업에 천공기 12대와 탐지내시경 3대, 음향탐지기까지 투입해 생명의 신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민관군 합동 연인원 1145명이 투입돼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사고 이후 광산 자체 구조대가 매일 4교대로 24시간 굴착작업했고 생존신호 확인을 위한 시추작업도 진행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