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반대' 드레스 코드가 교복? 학생들에게 이래도 됩니까 [박은식이 고발한다]
2차대전이 끝날 때 연합군에 가장 필사적으로 맞선 독일 집단은 나치의 청소년조직 유겐트였다. 중국을 퇴행의 수렁으로 빠지게 한 문화대혁명 시기에 가장 저돌적으로 나섰던 이들도 공산당의 청소년조직 홍위병이었다. 이렇듯 역사를 보면 극단 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청소년을 포섭하는 일은 필수였다. 청소년은 선동에 취약하고, 그렇기에 추진력은 오히려 성인보다 강한데,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최근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단체가 제작한 ‘윤석열 퇴진 중고등학생 촛불 집회’ 포스터를 보고 놀랐다. 포스터에 적힌 '준비물:교복(드레스 코드)' 문구가 충격이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파동 때 이른바 촛불 소녀(※당시에 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라는 상징성이 엄청난 정치적 힘을 발휘한 걸 목격했기에 어린 학생들을 이용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다. 이 단체의 상임대표가 과거 국가전복을 위한 내란 선동 혐의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청소년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이라는 것이 의심을 키웠다.
포스터 유포 이후 중고등학생 촛불 집회 개최와 관련한 논란이 일었다. 그 과정에서 과격한 정치세력, 그리고 일부 정치편향 교사들의 일방적인 사상주입 교육에 맞서 투쟁해 온 전국학생수호연합(이하 학수연)의 대응이 눈에 띄었다. 학수연은 지난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 사회에 심각한 사상적 위협이 되는 반(反) 대한민국 세력인 통진당 인사가 촛불중고생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게 웬 말이냐"며 규탄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의 한 공립중학교 교사 백모씨를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에 학생 참여를 종용한 혐의로 고발했다. 백씨는 2020년 총선 당시에도 생에 첫 투표 기회를 맞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에 투표하라고 독려하는 문자를 보내 이미 2심에서 교사 자격정지와 선고유예(징역형에 대한)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반성은커녕 실형 판결을 받은 뒤에도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윤)석열이 때려잡고 김건희는 감옥으로 보내자"고 말하는 등 교육공무원이 해야 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빈번하게 했다.
사실 백씨뿐이 아니다. 학수연 광주지부에 따르면 일부 교사가 기말고사에 윤 대통령을 비리 혐의로 엮은 지문으로 구성한 시험 문제를 내고, 수업시간엔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국민의힘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지난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학생은 극우 성향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학생들이 단체를 결성한 후 서울로 상경해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을까 싶다.
물론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비단 호남지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지역적 특수성 탓에 좀 더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2019년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학생들을 동원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한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다.
광주 출신인 내가 중·고교를 다닐 때 역시 음악 시간엔 5·18 주제곡을 배웠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국민의힘 계열의 보수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당시 이미 호남의 한을 풀어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라 그런지 일방적 혐오 대신에 "이제 망국적 지역감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접했다. 5·18 주제곡을 배우던 때도 선생님은 "아픔을 승화해 세계적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기억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지 무턱대고 증오심을 주입하진 않았다. 광주와 대구 대학생들의 학점 교류가 이뤄지고 두 지역 교류를 넓히는 여러 정책(달빛동맹, 달빛고속열차)이 나온 것도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었다.
난 그렇게 지역감정이 점차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근 여론을 보면 내 학창시절보다 오히려 더 악화한 것 같아서 걱정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정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이른바 보수우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홍어·까보전·7시·전라민국 등 호남을 비하하는 밈(meme)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마 정치편향 사례로 위에 언급했던 선생님들도 민주화를 위한 광주의 희생이 이런 식으로 통째로 부정당한 채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게 안타까워 학생들에게 좀 과격하게 정치적 신념을 이야기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호남의 여러 선생님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부디 정치적 중립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교사의 한마디는 자라나는 학생의 가치관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지녔다. 교육공무원법, 지방교육자치법, 공직선거법으로 교육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엄격히 규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헌법소원에서 합헌 판결이 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또 이런 일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 실제론 극히 소수인 이런 사건이 마치 호남에선 매일 이런 교육이 이뤄지는 것처럼 세간에 잘못된 인식을 줄 우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증오와 피해의식을 대물림하는 교육은 다른 이를 설득시키기보다 호남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킨다. 반(反) 기업정서로 복합쇼핑몰과 5성급 호텔 하나 못 들어와 결국 청년들이 호남을 떠나는 부작용을 이미 목격하고 있지 않나.
국민의힘을 옹호하는 교육을 주문하는 게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각 정당이 주장하는 것들을 건조하게 사실만 알려줘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면 학생들이 증오와 피해의식 대신 화합과 번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호남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게 가능하려면 지역 내에서 각기 다른 정치진영으로 갈라져 서로 비하하는 악습을 버리고, 악의적으로 청소년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에게 우리 국민 모두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청년을 정치적 선동에 이용했던 결과가 모두 예외 없이 공동체를 파멸과 퇴행의 수렁에 빠지게 했다는 걸 이미 역사가 증명했다.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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