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도둑’ 오명 딛고…휴스턴, 정상에 우뚝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최근 몇 년간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구단으로 유명하다. 야구를 못해서도, 투자를 안 해서도 아니다. 5년 전 월드시리즈(WS)에서 범법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017년 WS에서 휴스턴은 LA 다저스를 4승3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62년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휴스턴은 이 우승을 발판 삼아 메이저리그 최강 팀으로 우뚝 섰다. 2018년과 2019년 잇달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정상을 밟았고, 2019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휴스턴에서 뛰었던 우완 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2019년 11월 월드시리즈 당시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사실을 폭로하면서 파문이 생겼다. 파이어스는 “구단이 야구장 곳곳에 불법적으로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쳤고, 이를 벤치의 쓰레기통을 일정 리듬으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서로 공유했다”고 폭로했다. 그간 사인 훔치기 의혹을 수차례 받았지만, 마땅한 증거가 없어 의심만 샀던 휴스턴을 궁지로 모는 발언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발칵 뒤집혔다. 사태가 확산하자 사무국 차원에서 대대적인 진상 조사를 벌였고,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가담자로 찍힌 당시 A.J. 힌치 감독과 제프 르나우 단장이 경질됐고, 휴스턴 구단은 사무국으로부터 벌금 500만 달러의 중징계를 받았다.
법적인 처벌은 마무리됐지만, 야구팬들의 마음마저 치유하진 못했다.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휴스턴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야유와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지난 수년 간 ‘공공의 적’이 됐던 휴스턴이 6일(한국시간) 홈구장인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WS 6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시리즈 전적 4승2패.
0-1로 끌려가던 휴스턴은 6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선두 타자 마틴 말도나도의 몸 맞는 볼과 제레미페냐의 중전 안타로 만든 1사 1, 3루 찬스에서 요르단 알바레스가 바뀐 투수 호세 알바라도로부터 중월 3점 홈런을 뽑아냈다. 이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1타점 좌전 쐐기타를 터트리면서 승기를 굳혔다.
WS MVP는 휴스턴 유격수 페냐가 차지했다. 올 시즌 데뷔한 25살 페냐는 WS 6경기에서 타율 0.400(25타수 10안타) 1홈런 3타점 5득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노장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지도력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1949년생인 베이커 감독은 올해 73세다. 남들은 이미 은퇴했을 나이지만, 난파선 휴스턴을 맡아 달라는 특명을 안고 2020년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휴스턴에 앞서 4개 구단을 지도했던 베테랑 베이커 감독은 특유의 할아버지 리더십을 앞세워 실의에 빠진 선수단을 다독였다. 사람은 좋지만, 유독 가을야구에선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장은 이번 우승으로 30년 지도자 생활 중 처음으로 WS 정상에 올랐다. 또, 역대 최고령 WS 우승 감독이라는 영광도 안았다. 북미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감독으로서 최고령 우승 기록도 세웠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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