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불안한 금융시장 [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송승섭 2022. 11. 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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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 길거나 없고, 금리 높은 '신종자본증권'
국내는 콜옵션 행사로 중도상환하는게 관례
흥국·DB생명, 관행깨고 "콜옵션 미행사" 파장
가뜩이나 불안한 자금시장 더 악화될까 우려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해야" 촉구 목소리

편집자주 -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국내 자금시장에 ‘불안함’이 가득 퍼지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금융당국의 안정화 조치에도 투자자들의 지갑을 닫게 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과 콜옵션은 무엇일까요? 보험사들의 결정이 국내 투자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요?

금융사들은 여러 방법으로 자금을 모읍니다. 고객들로부터 예·적금을 모으거나, 채권을 발행하거나, 주식을 팔 거나, 혹은 또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려 올 수도 있습니다. 이 돈으로 은행과 카드사들은 다른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하는 식이죠. 여러 방법 중에서도 금융사가 특히 즐겨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신종자본증권’입니다.

갚지 않아도 되는 빚, '신종자본증권'

신종자본증권은 말 그대로 새로운 종류의 증권입니다. 채권과 증권의 성격이 동시에 있어서 ‘하이브리드 채권’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이지만, 시장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격변동이 거의 없고 거래량도 적지만 원론적으로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국내외 고액자산가들이 금융사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올려 왔죠.

신종자본증권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만기가 매우 길거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채권을 ‘영구채’라고 부릅니다. 원래 채권은 일정 기간 뒤에 이자를 덧붙여 갚아야 합니다. ‘1년 뒤에 120만원을 줄 테니 지금 100만원을 투자해달라’는 식이죠. 하지만 신종자본증권은 언제까지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 없습니다. 돈을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이자만 지급해도 됩니다. 그래서 회계장부에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기록하죠.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이면서 ‘돈을 빌리긴 했지만,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신종자본증권의 성질은 금융사들에 매우 큰 메리트였습니다. 국내 금융사들은 아주 깐깐한 규제를 받습니다. 위험한 자산이 너무 많아서도 안 되고요, 빚도 마구 내지 못합니다. 정해준 수준을 잘 지켜야 하죠. 그런데 채권발행의 형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자금을 조달하면서도 규제에 영향을 적게 받으니 좋을 수밖에요.

콜옵션 행사로 중도상환하는 게 국내 관행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통상적으로 일반채권보다 금리가 높습니다. 투자자 처지에서 보면 신종자본증권이란 나의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품입니다. 또 신종자본증권에는 회사가 휘청하면 원금을 깎아주거나 이자 지급을 안 해도 된다는 조항이 있고요. 변제 순서도 담보채권, 일반채권, 후순위채권 다음인 ‘후후순위채권’입니다. 각종 리스크가 있는 상품인 만큼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가 제시되는 게 당연하겠죠.

그럼 신종자본증권에 돈을 댄 투자자들은 영영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자만 받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종자본증권에는 ‘콜옵션’이라는 게 있습니다. ‘콜옵션’은 ‘살 권리’라는 뜻입니다. 일정 기간 뒤에 정해진 조건에 따라 매수할 수 있는 권리죠. 금융사들이 만기가 없는 신종자본증권을 팔긴 했지만, 대부분 5년 뒤에 정해진 가격으로 다시 살 권리를 부여해뒀던 겁니다.

국내에서는 콜옵션을 행사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는 ‘내가 산 신종자본증권을 5년만 기다리면 금융사들이 다시 사줄 것(콜옵션 행사)’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이러한 믿음에도 근거가 있었습니다. 우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기업의 평판이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콜옵션을 쓰지 않으면 이후부터는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신뢰가 중요한 금융사들이 굳이 더 많은 이자까지 내면서 자신의 평판을 깎아 먹겠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리가 없어’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흥국·DB생명, 관행 깨고 콜옵션 미행사

그런데 지난 1일 보험사 중 한 곳인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증권은 2017년 11월 발행해 만기가 오는 9일로 예정된 5억달러(약 7000억원)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이었습니다. 곧이어 DB생명이 13일 예정돼있던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내년 5월로 미뤘습니다. DB생명은 ‘투자자와 협의해 계약을 변경했다’고 말했죠. 이렇게 국내 금융기관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고 중도상환하지 않은 건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왜 이 보험사들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걸까요? 금융권에서는 금리 인상을 이유로 꼽습니다. 현재 시장의 금리는 2017년 두 보험사가 돈을 빌렸을 때보다 2배 이상 올랐습니다. 콜옵션을 행사하려면(돈을 갚아주려면) 다른 곳에서 돈을 조달해야 하는데 자금시장이 얼어붙어 여의찮은 상황이죠. 그렇다 보니 차라리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좀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새로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서 갚으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방법이지만 쉽진 않습니다. 보험사들은 ‘지급여력비율(RBC)’라는 규제를 지켜야 합니다. RBC란 얼마나 재무상태가 좋은지, 보험금을 얼마나 잘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죠. 그런데 지금 금리가 워낙 높다 보니 신종자본증권을 새로 발행하면 부담해야 할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 RBC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험사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선택입니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콜옵션 행사’라는 관행이 깨진 것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보험업계의 리스크도 작고 자산 건전성도 튼튼하다는 거죠.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내고 “DB생명과 투자자 간 쌍방의 사전협의를 통해 조기상환권 행사 기일 자체를 연기한 것으로서 조기상환권을 미이행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해당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는 소수이며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채권 유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라는 말도 덧붙였죠.

가뜩이나 시장 불안한데…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

하지만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합니다. 신뢰가 깨졌으니까요. 앞으로 투자자들이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해도 한국 금융사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버리면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겠죠. 시장금리는 앞으로 계속 오르는 만큼 또 다른 금융사들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존재하고요. 이러한 불안감이 잡히지 않으면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어려워지고, 금융사들이 어쩔 수 없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들 질의에 답변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금의 현상에 대해 “중요한 건 당국이 아니라 투자자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4일 김 위원장은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우리금융그룹 국제콘퍼런스'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외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보험업계에서 이런 것까지는 생각을 별로 못한 듯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 역시 관리해야 하는 게 시장이라 어떻게 대응할지는 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김진태 발 금융위기에 더해 최근 흥국생명의 콜옵션 포기로 자금시장이 더욱 얼어붙으며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면서 “연쇄 부도 상황을 전제하고 어디가 어떻게 무너질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흥국생명의 콜옵션 포기는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5년 지나면 돈을 갚을 것이란 신뢰가 깨졌다는 점에서는 채권시장 전반에 불똥이 튈 소지가 다분하다”며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우르르 무너지는 살얼음판 같은 위기이기에 땜질식 처방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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