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상상하며 끊어진 것들 잇는 게 제 역할" 미술가 강익중

이은주 2022. 11. 6. 17: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갤러리현대 신관, 두가헌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3개 층 주요 연작 200여점
'달'과 '달항아리' 신작부터
달무지개 담은 '달이 뜬다'
500개 사발 설치 '한식구'
강익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이번 전시에 새로 선보인 '달이 뜬다' 연작이 보인다 [사진 갤러리현대]
강익중, 달항아리, 2018-2022, 나무에 혼합재료, 187x187x10cm. [사진 갤러리현대]
두가헌 전시장에 설치된 '달항아리' 연작. [사진 갤러리현대]


같이 먹어서 한식구/같이 울어서 한식구/같이 웃어서 한식구/같이 아파서 한식구/같이 품어서 한식구/같이 나눠서 한식구/같이 꿈꿔서 한식구".
최근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시청 인근의 분향소를 찾았던 강익중(62) 작가는 4일 자신의 SNS 계정에 '우리는 한식구'란 제목의 시를 올렸다. "분향소에 찾아와 묵묵히 슬픔을 함께 나누던 이들을 보며 울컥해 이 시를 썼다"는 그는 "제 작업의 중요한 주제가 '잇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모두 한식구임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강 작가의 개인전 '달이 뜬다'가 서울 삼청동 갤러리 현대 신관과 두가헌에서 4일 개막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꿈의 다리'(2013)와 광화문 광장의 '광화문 아리랑'(2020) 등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매달려온 그가 12년 만에 국내 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엔 형형색색 달무지개를 표현한 신작 '달이 뜬다' 연작과 더불어 30여 점의 드로잉, '내가 아는 것' 연작이 지하 1층~2층 3개 층에 걸쳐 펼쳐졌다. 제작 기법은 각기 다르지만, 200여 점을 관통하는 주제는 '연결'이다. 그에게 '연결'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그에게 물었다.

지하 1층의 두 벽면을 가득 채운 '내가 아는 것' 연작. [사진 갤러리현대]

Q : '달항아리'에도 '연결'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A : 달항아리는 굉장히 깨지기 쉽다. 그래서 아랫부분을 먼저 만들고 위를 만들어 이어 붙인 뒤 구워야 하나가 된다. 남과 북,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도 서로 이어져야 비로소 하나 되고 풍요로워진다. 그동안 제가 수많은 아이 그림을 모아 작업해온 공공미술 설치 작업도 '함께 모여 완전해진다'는 뜻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Q : '달항아리' 연작은 어떻게 시작했나.
A : 2004년 일산 호수공원에서 거대한 원형 구조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일부가 손상돼 형상이 기울어졌다. 그때 문득 어릴 때 매혹된 달항아리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내가 끊어진 남북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때였다. 달항아리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 조화와 융합, 풍요의 주제가 담겼다."

Q : 신작 '달이 뜬다'는 이지러진 달이 겹친 형상이더라.
A :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달과 달에서 반사된 형형색색의 무지개를 표현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일체가 된 순간의 직전 혹은 직후의 모습이다. 여기에 흐르고 연결되는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달이 뜬다' 드로잉 연작 30점이 나란히 수평으로 걸린 2층 전시장. [사진 갤러리현대]
2층 전시장에 선보인 '달이 뜬다' 드로잉 연작. 종이에 먹, 오일스틱, 76x57cm. [사진 갤러리현대]
설치작품 '우리는 한식구'. 산처럼 쌓인 밥그릇 사이로 DMZ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사진 갤러리현대]

2층 전시장엔 전통 산수화를 그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30여 점의 '달이 뜬다' 드로잉 과 4.5m 높이의 '산' 연작이 함께 걸렸다. 2층에서 눈길을 끄는 의외의 작품은 500개의 낡은 밥사발을 엎어 산처럼 쌓아놓은 설치작품 '우리는 한식구'다. 그릇들 사이에선 DMZ 지역에서 녹취한 새 소리가 흘러나온다.

Q : 왜 밥그릇인가.
A : 개막을 바로 앞두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갑작스럽게 추진했다. 어릴 때 쓰던 밥그릇이 난 좋더라. 그래서 이런 그릇을 보면 무엇을 할지 모르는 채로 사 모았는데 이번 작품에 썼다. 여기서 '식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우리'를 뜻한다.
충북 청주가 고향인 강 작가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뉴욕으로 건너갔으며,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하철을 오가며 작은 캔버스에 작업한 '3인치' 작업은 후에 그의 대형 공공미술로 확장됐다.

Q :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1932~2006)과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더라.
A : 내 나이 서른 네살 때였다. 뉴욕에서 처음 만났을 때 대뜸 내게 '30세기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으셔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사람들이 오늘, 내일을 생각할 때 천 년을 내다보는 그분은 제게 '낮에 별을 보는 무당' 그 자체였다. 진짜 예술가라면 그림을 파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세계를 끌어안고, 미래를 상상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화두를 제게 주셨다.

Q : 서로 다른 것, 서로 끊어진 것, 작은 조각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공공미술 작업을 해왔다.
A : 수많은 사람과 함께 완성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사람은 '섹시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순천시민 6만5000여 명과 함께 만든 '현충정원'(2018) 등이 주는 감동은 그 무엇과 바꾸기 어렵다. 2015년에 남과 북을 잇는 '임진강 꿈의 다리' (2015년 구상) 구상을 발표했는데, 아직도 그 꿈이 실현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올해 시화집『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를 펴낸 것을 비롯해 『사루비아』(2019) 『달항아리』(2018)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가 지금까지 쓴 시만 3000편에 이른다. 이번에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쓴 시만 30편에 이른다. 인터뷰 말미에 "제 삶의 목표가 딱 세 가지 있다. 단순한 생각, 부지런한 몸, 욕심 없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며 건네준 그의 시화집엔 이런 시가 담겨 있었다.

"아무 일 없으면/ 좋은 날이다/ 괴롭지 않으면/ 좋은 날이다/ 박수를 쳤으면 좋은 날이다. 욕심이 없으면 좋은 날이다/할 일이 있으면 좋은 날이다". 전시는 12월 11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