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자 붙은 모든 것 환영…지금이 K콘텐트 기업 유럽 진출 적기”

남수현 2022. 11. 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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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 플뢰르 펠르랭 인터뷰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스타트업콘(Startup:CON)'에서 기조연설 중인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캐피탈 대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5년부터 매년 개최 중인 스타트업콘은 국내외 창업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콘텐트 스타트업계 트렌드를 공유하는 콘퍼런스로, 올해는 '콘텐트, 경계를 허물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극히 한국적인 드라마까지 해외에서 성공하는 현상은 이제 외국인들이 한국을 깊이 이해하고,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에도 관심 갖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한류 덕분에 한국 스타트업들이 유럽에 진출할 매우 좋은 기회가 열렸다고 봅니다.”

프랑스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문화부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코렐리아캐피탈 대표의 말이다. 펠르랭 대표는 지난달 25~2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2022 스타트업콘’의 2일 차 기조연설자로 나서 한국 콘텐트 기업들의 경쟁력과 약점, 향후 기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행사 직후 대기실에서 만난 펠르랭 대표는 “K팝, K드라마에서 시작된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층 복잡한 한국 콘텐트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며 “요즘은 K자가 붙은 건 무엇이든 환영받을 정도”라고 유럽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자전 에세이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김영사)를 펴내기도 한 펠르랭 대표는 ‘최초의 한국계 프랑스 장관’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하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된 그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중소기업·디지털경제 장관, 통상 국무장관을 거쳐 문화부 장관으로 일했다. 공직을 떠난 후 2016년 코렐리아캐피탈을 창업하며 벤처 투자가로 변신, 네이버·라인으로부터 총 2억 유로를 출자받아 펀드를 조성하는 등 한국과 유럽 스타트업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2022 스타트업콘'에서 기조연설을 마친 후 중앙일보와 만난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캐피탈 대표는 "요즘 유럽 시장은 'K'가 붙은 무엇이든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좋은 제품이나 기술, IP(지적재산)를 지닌 기업이라면 지금이 유럽 시장을 두드를 좋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나를 거부한 나라”(『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중) 정도로 여기고 2013년 전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 없던 펠르랭 대표는 요즘은 1~2달에 일주일 정도는 한국에 다녀간다. 코렐리아캐피탈이 2017년 초 결성한 K펀드 1호에 이어, 3억 유로 규모를 목표로 모금 중인 2호 펀드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1000만 유로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디지털경제와 문화를 오간 이력을 바탕으로 K콘텐트 업계도 누구보다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는 “앞으로 웹3.0, 메타버스 분야에서도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영감을 줄 거라 확신한다”며 “좋은 IP(지적재산)나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면 지금이 유럽 시장을 두드릴 순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한국 콘텐트 업계 전반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A: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박찬욱·봉준호·홍상수와 같은 독창적인 한국 감독들에 대한 애정이 엄청났다. 일부 감독은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유명할 정도다. 최근에는 드라마 산업 쪽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 나타났다. 예전엔 처음부터 해외 관객을 공략한 장르물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까지 사랑받는다. 이런 현상은 세계가 이제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한다. 콘텐트 스타트업뿐 아니라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기업들도 이같은 호의적인 분위기의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2022 스타트업콘'에서 기조연설 중인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캐피탈 대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을 해외 관객을 타겟팅하지 않았음에도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았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Q: 한국 문화계의 어떤 점이 이런 성공을 낳았다고 보나.
A: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펼친 한류 정책의 결과라고 본다. 초창기 한류는 K팝에 집중돼 있었고 드라마도 로맨스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관심이 확대되면서 한국 사회를 보다 비판적·현실적으로 다루는 콘텐트도 주목받게 됐다. 하지만 정부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 문화 수출을 위해 애쓰지만, 한국처럼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조차 패션을 제외하고는 자국 문화 콘텐트가 힘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콘텐트 분야에 대한 정부·민간의 지속적인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영리한 창작자들의 역량 등 여러 요소가 전부 합쳐진 게 비결이 아닐까 싶다.

Q: 한국 콘텐트 산업 및 제작자들만의 특성이 있을까.
A: 오리지널 IP(지적재산)를 기반으로 여러 콘텐트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방식은 굉장히 독특한 한국 특유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예컨대 웹툰 하나가 잘 되면 그걸로 넷플릭스 드라마나 출판 단행본이 나오고, 영화나 게임으로까지 제작된다. 마블 같은 특정 기업의 사례를 제외하면, 이런 구조가 아예 정착된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특성은 창작 행위를 사업과 연계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프랑스의 경우 예술과 돈을 섞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창고나 갤러리에만 존재하고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특정 대상을 열렬히 응원하는 한국 특유의 아이돌 문화도 콘텐트업계의 경제적 순환을 강화하는 물밑 요인인 것 같다.

Q: 투자자로서 눈여겨보는 한국의 콘텐트 분야나 기업이 있나.
A: 웹3.0과 메타버스와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를 눈여겨보고 있다. 한국은 이미 이 분야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다. 대표적으로 제페토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이미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e-스포츠, 모바일 게임의 인기도 이 분야의 성장을 뒷받침할 것이다. 웹3.0과 메타버스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몇몇 한국 펀드와의 공동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아바타들이 구찌 제품을 착용한 모습. 지난해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매장을 그대로 본 딴 가상 쇼룸을 제페토 내에 만들어 실제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판매했다. 사진 구찌 홈페이지


Q: 메타버스, 가상자산 등을 아직 낯설어 하는 사람도 많다. 이 분야가 유망하다 보는 분명한 근거가 있나.
A: 사실 대부분의 시도가 먹히지 않을 것이고 실패하는 사업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상어’ 같은 노래가 전 세계적인 히트가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어디서 큰 성공이 터질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이미 많은 브랜드가 가상자산, 메타버스를 활용한 수익 창출을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바타에게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히고 이를 NFT로 수익화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메타버스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교육·문화 활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콘텐트 기업의 경우 가상세계에서 아이돌을 만들어 상업활동을 시킬 수도 있다. 이런 흐름은 아직 초기에 불과하지만, 점점 가속화될 것이고 여러 흥미로운 아이디어들 중 몇 개는 성공할 것이다.

Q: 해외에 진출하려는 한국 콘텐트 스타트업들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A: 글로벌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많은 한국 기업이 간과하는 부분이 언어적인 측면이다. 실제 내가 만난 많은 창업가들은 영어에 서툴렀는데, 해외 진출을 꾀할 때 투자자들 앞에서 영어로 피칭(Pitching, 비즈니스 아이템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문화를 일부 미디어를 통해 잘못 파악한 뒤 프랑스 고객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기업가도 봤다. 해당 지역을 잘 이해하는 파트너와 함께 현지 시장을 차분히 분석해야 한다. 유럽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ESG를 고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환경(Environment)뿐 아니라 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 이 측면에선 유럽이 한국에 비해 훨씬 앞서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양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투자자들은 남성으로만 구성된 경영진을 둔 기업에는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항상 더 나은 사회적인 영향력과 거버넌스 확립에 대한 고민을 지니고 있어야 글로벌 진출에 유리하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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